[인터뷰]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 "배·보상특별법 희망..해외입양 인권침해 조사 검토"
기사내용 요약
6월 기준 1만4945건 접수, 124건 진실규명…과제도 산적
"조사기구라 보상 기능 없어…관련 과거사 재단 출범 기대"
"해외입양 관련 인권침해 사건 많아…가을 직권조사 예정"
"진실규명, 몰랐던 것 알게 되는 것…서로 아픔 돌아보길"
[서울=뉴시스]전재훈 기자 = "힘들게 과거를 끄집어내 진실규명을 받은 피해자들이 다시 소송에 뛰어드는 일은 이제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피해자들에게 이중적으로 부담을 지우는 일 아니겠습니까."
정근식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은 지난 14일 뉴시스와 만나 진실화해위의 활동이 '배·보상'까지 곧바로 이어지지 않고 '조사'에 그친다는 지적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조사개시 2년 차를 맞은 진실화해위에는 인력 보충, 배·보상 및 권고 이행 의무화, 재단 설립 등 과제가 산적하다. 다만 대부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개정되거나 관련 특별법이 제정돼야 해결할 수 있어 더욱 고민이 깊다.
2기 진실화해위는 1기 진실화해위와 비슷한 규모의 인력으로 출범했다. 신청 기한이 아직 5개월가량 남았음에도 1기(1만1175건) 때보다 많은 1만4945건의 진실규명 신청을 받았다. 다만 접수사건 중 진실규명 된 사건은 124건(0.8%)에 불과하다.
정 위원장은 "조사관 1명당 100건에 이르는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며 "지금 인력으로는 접수된 사건의 40~50%를 해결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진실화해위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재단을 설립하거나, 당장 인력을 보충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진실규명 작업은 진행 중이다. 지난달 21일까지 8800여건에 대해 조사 개시해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에는 삼청교육 피해 사건, 전남 화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 서산개척단 사건, 건설호·풍성호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등 피해 규모가 큰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이뤄지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경쟁이 심해지고 삶이 팍팍해지다 보니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세상이 됐다. 세대의 문제일 수도 있고, 정치적 이념의 차이나 경제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든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위험사회인 만큼, 우리가 몰랐던 역사를 위원회 활동을 통해 배우고 서로의 아픔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실화해위 활동을 통해 피해자의 상처가 치유되고, 구성원들이 서로의 상처를 돌아볼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진실, 화해, 정리 등 위원회 이름에 추상적인 단어가 많은데, 위원회 역할이 무엇인가.
"진실은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역사적 진실과 법원이 보는 진실, 그리고 사회적 진실이 일치해야 한다.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진실의 얼굴이 하나로 통일돼 간극이 없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진실이다. 화해는 당사자들이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해 주는 등 보상까지 이어지는 것이고, 그런 과거사 중에서 부정적인 요소는 극복하고 긍정적인 요소는 받아들여 계승하는 것이 정리다. 추상적인 만큼 위원회의 업무가 광범위하다."
-그간 위원회 활동 중 진실, 화해, 정리가 가장 잘 이뤄진 사례가 있다면.
"지난 2월 진실규명 결정된 건설호·풍성호 납북귀환어부 사건은 한 달 뒤 강원도지사와 협력 방안을 논의해 피해자 지원 예산까지 반영됐다. 춘천지검 속초지원에서도 관련 TF를 구성해 직권 재심 등 협력에 나섰다. 지난 2월 진실 규명한 삼청교육 피해 사건도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깡패나 부랑자에서 국가 폭력의 피해자로 바꾼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위원회 활동이 진실규명에서 끝나고 배·보상 등으로 이어지지 않아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사를 위해 만들어진 독립기구인 만큼 애초에 보상 기능은 없었다. 진실규명을 하면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피해를 구제받고 있는데, 권고가 실효성을 갖고 진실규명이 배·보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과거사 정리 기본법을 개정하거나 배·보상 특별법이 만들어져서 이 문제가 해결되길 희망한다. 지난 1월 관련 문제를 두고 국회에서 공청회를 했다. 8월부터 다시 국회와 협의해 나갈 생각이다."
-진실화해위가 배·보상 기능을 갖게 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세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째는 1기 진실화해위 당시 진실규명을 받았지만 민사 소송 소멸시효(진실화해위 결정 이후 3년)를 놓치거나 소송에서 패소해 배·보상을 받지 못한 이들도 구제돼야 한다는 것. 그들이 영원히 피해 구제 대상에서 배제될 순 없다. 둘째는 국가가 아닌 적대 세력(북한 등)이나 미군에 의한 피해자들도 구제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 셋째는 고민 중인데, 인권침해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다. 일괄적인 보상보다는 일반 국민도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보상 수준을 정해야 하는데, 많은 토론과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다."
-진실화해위 조직 내에서 배·보상 기능이 어떻게 구현될까.
"법률대리인을 연결해 주거나 진실화해위 내부 법률 전문가를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규명을 받은 피해자들이 다시 법원으로 찾아가 처음부터 소송을 시작하는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 그건 안 했으면 좋겠다. 힘들게 진실규명을 받았는데 다시 법원으로 가 변호사를 고용해서 소송에 뛰어드는 일은 그들에게 이중적으로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1기 진실화해위가 활동을 종료하면서 과거사 재단 설립을 권고했는데.
"당시 여러 차례 공청회와 연구 용역을 통해 설계해놨는데,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 설립에 착수하지 못했다. 내년에 설립이 가시화돼 2024년에는 출범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과거사 재단을 만들 수 있다'고 쓰여 있는데, '만들어야 한다'고 법률을 고치면 수월하게 진행될 일이다. 장기적으로 진실규명이 필요한 사건이 많다. 유해 발굴 사업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업인 만큼 진실화해재단이 설립돼 관련 업무들을 상시로 이행했으면 좋겠다."
-유해 발굴 사업은 성과가 있나.
"군인 유해 발굴은 국방부에서 하고 있지만, 민간인 유해 발굴은 우리가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유해 발굴 사업을 해야 한다는 근거 법률이 없다. '진실 규명 차원에서 유해 발굴을 할 수 있다'고 모호하게 규정돼있고 예산이나 인력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는 없는 상태다. 그러다 보니 예산이나 인력에 한계가 많다. 전국 380곳에 유해가 있다고 파악됐는데 7곳, 8곳 정도 발굴한 상태다. 현재 유해 발굴 5년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것도 재단이 설립되면 장기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롭게 들여다보고 있는 인권침해 사건이 있나.
"아직 진실규명 신청이 들어오진 않았지만, 해외 입양과 관련한 인권침해 사건이 많다. 해외로 입양된 사람 중 본인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 가을쯤에 직권조사할 수 있는 부분을 특정하는 등 윤곽이 잡힐 것이다."
-올해 12월이면 임기를 마친다. 떠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나는 9명의 위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위원회 구조라서 한 사람이 마음대로 이거 하겠다 저거 하겠다고 할 수 없다. 조사관들이 열심히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고, 잘못된 게 있으면 고치고, 그 과정에서 조사관들을 배려하고 독려할 뿐이다. 내가 뭔가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월권이다."
-남의 상처나 슬픔에 피로를 느끼고 혐오까지 일삼는 시대에 진실화해위의 역할은 무엇일까.
"경쟁이 심해지고 삶이 팍팍해지다 보니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세상이 됐다. 세대의 문제일 수도 있고, 정치적 이념의 차이나 경제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든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위험사회인 만큼, 우리가 몰랐던 역사를 위원회 활동을 통해 배우고 서로의 아픔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그래서 피해자의 상처가 치유되고, 구성원들이 서로의 상처를 돌아볼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웃으며 잘 지냈는데, 나와 같은 나이의 어떤 사람은 어딘가로 잡혀가서 평생을 잃어버렸더라. 동시대인,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내가 모르고 살았던 것을 마주하면 충격이고 부끄럽다.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피해자였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적인 인정이 더 활발히 일어났으면 좋겠다."
☞공감언론 뉴시스 kez@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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