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살 vs 저체온사'.. 다시 불붙은 개구리 소년 사인 논쟁
저체온사 "머리카락 없다..두개골 상흔 모두 달라"
타살 "분묘 이장, 가지치기에도 유해 한참 뒤 발견"
1991년 3월 26일 개구리 소년 5명 실종 '영구미제'
역대급 수사 인력을 동원하고도 미제사건으로 남은 대구 '개구리 소년' 사인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점화됐다. 사건 발생 초부터 사건을 추적했던 기자가 자신의 책에서 사인을 '저체온'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김재산 기자가 지난 3월 낸 책 '아이들은 왜 산에 갔을까'는 개구리 소년 변사사건을 다시 소환했다. 김 기자는 책에서 개구리 소년들의 사인을 저체온증이라고 주장하면서 여러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특히 사건 당시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이었던 김영규 전 총경 증언을 통해 "살해돼 방치됐다면 머리카락이라도 발견됐어야 했는데 전혀 없었다"라며 "아이들 집에서 유골이 발견된 장소까지 3㎞가 넘고 비가 내리는 산중에서 기온이 3도 정도면 얼음이 어는 수준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김 기자의 주장을 두고 전·현직 경찰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한 전직 경찰관은 "체온이 일정 수준 밑으로 떨어져 신체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는 게 저체온사"라면서 "범인이 잡히지 않고 범행도구도 발견되지 않아 타살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유골 일부에서 발견된 상흔에 대해서도 '사후 골절흔'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 유골에는 상흔이 25개나 되는데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게 그 증거라는 것이다. 또다른 전직 경찰관은 "당시 타살이라고 결론 내린 경북대병원 법의학팀은 범행도구를 찾지도 못하고, 여론에 떠밀려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타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사건 발생 1년 2개월 후인 1992년 6월쯤 유해발굴 현장 4~5m 위쪽에 분묘 이장이 있었지만, 당시 개구리소년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1년 후에 발견된 유골이 1년 2개월 뒤에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또 1998년 8월 17일~9월 30일 유해발굴 현장 일대에선 수십 명이 공공근로사업에 동원돼 가지치기 작업을 벌였고, 현장 인근 나무 10여 그루도 잘려나간 터라, 당시 발견되지 않은 것은 암매장됐다는 증거라는 주장도 있다. 한 현직 경찰관은 "당시 제시된 타살 정황을 뒤집을 만한 사실이 나오지 않는 한 저체온사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30년이 지나면서 수사 관계자들도 유명을 달리하면서 사인은 점점 미궁에 빠지고 논란만 커지고 있다. "타살이 아니기에 범행도구가 있을 수 없다"는 주장과 "한겨울도 아닌데 동네 뒷산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소년들이 집단으로 저체온사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은 1991년 3월 26일 발생했다. 대구 성서초등학교에 다니던 초등학생 김종식(10) 김영규(12) 우철원(14) 조호연(13) 박찬인(11)군 등 5명이 도롱뇽알을 채집하겠다며 인근 와룡산에 올라갔다가 실종됐다.
경찰은 연인원 30만 명이 넘는 경력을 투입해 5년 동안 와룡산을 샅샅이 뒤지고 종교단체 등 1,000여 곳과 가정집 1만1,000가구를 수색했다. 경찰은 아이들의 주변인과 공단 인부, 전과자, 거동 수상자 등 2만 명 넘는 인원을 대상으로 실체 규명에 나섰다.
경찰은 사비를 털어 부산과 진해 등 타 지역까지 조사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특히 한센인 암매장설도 퍼지면서 취재기자들이 마을 주민에게 폭행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개구리 소년 사체는 사건 발생 11년이 지난 2002년 9월 26일 와룡산 세방골에서 발견됐다. 당시 수사를 맡은 경찰 간부는 발견 당일 사인을 저체온사라고 주장했다가 유족 등의 반발을 샀다. 경북대 법의학팀은 유골을 한 달 넘게 분석한 뒤, 둔기에 맞거나 흉기에 찔려 숨진 것으로 결론냈다.
이 사건은 2006년 3월 25일 범인과 범행도구를 찾지 못한 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19년 9월 20일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이 개구리 소년의 유골 발견 현장을 찾아 "지방청 미제사건수사팀이 수사를 진행 중이고 첨단기술을 활용해 유류품과 증거물을 분석하는 등 재조사하겠다"며 재수사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초동 수사 과정에서 유골 발견 현장 수색을 소홀히 한 경찰의 실수로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대구= 류수현 기자 yv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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