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러 원유 가격상한제' 득일까? 독일까?..'유가 $380 시나리오'

안상우 기자 2022. 7. 1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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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가격은 낮추고 러시아 이득은 줄이고"

지난달 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가 수출하는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를 도입하겠다는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이는 최근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흐름을 추동하는 원윳값 상승을 제어하는 동시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후로 촉발된 에너지값 상승으로 오히려 러시아가 큰 이득을 챙기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 가격상한제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가격상한제에 동참하는 나라가 러시아 원유를 수입할 때는 이미 정해진 적정 가격 범위(시장에서 유통되는 일반 원윳값보다는 훨씬 저렴한 수준인 배럴당 40달러에서 60달러 사이에서 책정될 것으로 예상됨)에서만 러시아 원유를 구입하는 것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런 방식의 제재가 전 세계 원유 공급 시장을 위축시키지 않는 선에서 가격은 낮춰 결과적으로 러시아가 화석 연료 수입으로 챙길 수 있는 이득을 줄일 수 있을 걸로 내다봤습니다.
 
"We task our teams to work on the details of the price cap on Russian oil to drive down Putin's revenues without hurting Americans and others at the gas pump."
-지난달 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서 바이든 미 대통령 발언 중-
 

한 발 늦은 국제사회

러시아가 수출하는 화석연료의 가격에 초점을 맞춘 제재 방식은 벌써 몇 달 전부터 유럽에서는 논의가 이뤄져 왔습니다. 침공 초기 서방이 전례 없는 금융 제재를 통해 루블화를 종잇조각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화석연료 수출로 '역대급'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며 러시아는 제재를 돌파해냈습니다. 이에 지난 4월부터 서방의 경제학자들은 가격상한제(price cap on Russian oil)나 세금(tariff on Russian oil)이 효과적인 수단임을 주구장창 주장해왔던 겁니다.
가격에 상한을 두거나 수출할 때마다 세금을 부과한다는 건 원유를 수출하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효과적일 수 있다고 판단한 이유는 침공 초기에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새로운 수출 국가를 찾는 게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국외 자산은 이미 동결됐고, 전쟁을 지속하려면 돈줄인 화석연료를 계속 수출해야만 하는 상황이라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제재를 받아들였을 것이란 분석이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4월부터 러시아산 가스나 원유에 대한 세금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던 유럽의 싱크탱크인 Bruegel에선 다음과 같이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A second option would be a tariff on Russian oil imports. This success of this would rely on the assumption that the EU can more easily find alternative oil suppliers than Russia can find alternative buyers."
-지난 4월 29일, Bruegel <How a European Union tariff on Russian oil can be designed> 중-

하지만, 유럽연합은 미국과 일본, 영국에 이어 러시아 석유에 대한 금수 조치를 대신 선택했습니다. 이마저도 한 달 넘도록 러시아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헝가리 등의 반발에 시달리다가 지난달 초에야 '러시아 원유 해상 수입 금지 조치'를 올해 안에 점진적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하는데 그쳤습니다. 문제는 그 사이 러시아는 다른 원유 수출국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겁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서방의 경제학자들, 그 중에서도 유럽의 경제학자들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 자체를 제한하는 금수 조치는 오히려 이득보다는 실이 더 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시장에 버젓이 있는 러시아산 원유를 구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건, 바꿔 말하면 공급량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원윳값은 더 상승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재 조치 이후 유럽은 고유가에 피해를 보는 동안 러시아는 더 큰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죠.


실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약 2주 만에 120달러 선을 돌파했던 유가는 100달러 선까지 내려왔다가 유럽연합의 '러시아 원유 해상 수입 금지 조치' 발표 직후 다시 120달러를 돌파했습니다(브렌트유 기준). 당시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출장을 갔던 저는 전쟁 국가에서 지독한 고유가를 경험한 바 있는데요. 가뜩이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유류 저장고를 폭격해 휘발유나 경유, 가스 공급이 평소보다 더 원활치 않은 상황에서 휘발유 값은 1리터에 2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뭐 이 정도면 우리나라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실 수도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국민 1인당 GNI는 우리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2021년 기준 / 한국 1인당 GNI 35,373달러 vs 우크라이나 1인당 GNI 3,613달러)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당시 유가는 정말 살인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고유가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는 아래 리포트를 참고하시면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2배 값에도, 키이우에서는 기름 구하기 힘들어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784800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가격이 아닌 수입 자체를 제한하려는 제재 방식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국제사회는 고유가에 고통 받았고 러시아는 기록적인 이득을 챙겼습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사이 러시아는 원유 수출 국가 다변화도 상당 부분 이뤄냈다는 부분입니다. 2022년 2월 기준으로 유럽연합의 러시아 원유 수입량은 180만 배럴이 넘었습니다. 반면, 당시 중국과 인도, 터키의 러시아 원유 수입량은 약 76만 배럴에 그쳤습니다. 러시아 원유의 전 세계 수입량 중에서도 유럽연합이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수입량 역전이 일어났고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중국과 인도, 터키가 약 240만 배럴의 러시아 원유를 수입했는데, 유럽연합의 러시아 원유 수입량은 약 124만 배럴로 줄었습니다. 전 세계 수입량 가운데 유럽연합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32%로 쪼그라든 반면 중국과 인도, 터키의 수입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대까지 늘었습니다. 중국과 인도, 터키가 유럽연합을 제치고 러시아산 원유의 최대 고객이 된 것입니다. 특히,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중국과 인도는 지난달에만 각각 111만 배럴(세계 1위), 99만 배럴(세계 2위)을 수입하며 세계에서 러시아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자료 출처 : 원자재 물동량 데이터 및 시장 분석 서비스 제공 업체, KPLER

이런 수출국 다변화는 원유 가격에 초점을 둔 국제사회의 제재가 러시아에게 먹히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주요 수입국이 유럽연합이던 시절에는 수출 가격에 기초한 제재를 러시아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였을 테지만, 지금은 중국과 인도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상황에서 가격 상한을 안 받아들이면 그만인 겁니다. 실제로, SBS와의 서면 인터뷰에 응한 KPLER의 원유 분야 선임 연구원 Jane Xie는 중국과 인도와 같은 주요 수입국들이 동참하지 않는다면 가격 상한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걸로 전망했습니다.
 
"If big buyers are not interested in abiding, there's nothing to stop private deals between Russia and these countries, unless the US decides to implement secondary sanctions. So even if abiding countries (like G7) adopt the price cap mechanism, there will still be "leakage" of oil sales to "non-adopters".
- KPLER의 Senior Oil Analyst Jane Xie와의 인터뷰 중-

가장 효과적일 수 있었던 제재 수단이 시기를 놓쳤습니다. 국제사회가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는 지금, 대러 제재는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그 제재가 실기했다는 건 전쟁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단 이야깁니다. 누구의 책임일까요? 지난달 말 IMF의 라이브 세션(<The economic effect of the War and of Sanctions>)에서 발표자로 나섰던 엘리나 리바코바 국제금융협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학자들이 환상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정치인들은 거부한다. 왜냐하면 미국에서조차도 러시아가 아닌 다가오는 선거와 물가 상승을 고려해 (정말 필요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유가 380달러의 시나리오

지금이라도 원유 수출 가격에 기초한 제재가 효과를 보이려면, G7은 물론 아시아의 주요 고객들인 중국과 인도가 동참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재무장관인 재닛 옐런은 지금 열리고 있는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강력하게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우리나라의 추경호 경제부총리에게는 직접 연락해 가격 상한제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러시아산 원유를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많이 수입한 나라입니다.
**자료 출처 : KPLER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향해 떨어지는 러시아군의 미사일만 생각하면, 우리도 동참을 선언하고 다른 국가들의 동참도 이끌어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좀 복잡합니다. 러시아가 유럽연합을 향해 가스 수출 중단하겠다며 위협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를 상대로 '원유 수출 중단' 같은 보복 조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KPLER의 원유 분야 선임 연구원 Jane Xie는 우리나라에게 러시아가 원유 수출 중단 조치를 하더라도 큰 지장은 없을 것이라 설명했습니다. 러시아 원유를 많이 수입하기는 했지만, 서서히 줄여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러시아가 우리나라에만 보복을 하는 게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기록적인 유가 상승 덕분에 전쟁 직후 100일 만에 에너지 자원 수출로 930억 유로를 쓸어 담은 러시아가 원유 가격 상한제와 같은 국제사회의 제재에 반발해 원유 생산 및 수출량 자체를 줄인다면 수급 불균형으로 유가는 요동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JP모건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만들었습니다.
 
#가정 1
기록적인 이득을 챙긴 탓에 러시아에게는
자국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원유 생산 및 수출 규모를 줄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가정 2
하루 생산량 중 300만 배럴을 줄인다면 국제 유가는 19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
만약, 감축 규모를 500만 배럴까지 올리면 국제 유가는 38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
-이달 2일, 블룸버그 <JPMorgan Sees 'Stratospheric' $380 Oil on Worst-Case Russian Cut> 중-

이건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입니다. 일각에서는 가격상한제가 유가 상승을 제어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왜냐하면 중국과 인도 역시 싼값으로 러시아 원유를 사들이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어 그동안과는 다르게 동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나올 때마다 국제 유가는 알아서 100달러 밑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수요가 위축될 것을 우려해 시장에서 선반영하고 있는 걸로 추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의 감소 폭보다 공급량이 더 크게 줄면 가격이 치솟는 건 아주 기초적인 시장의 원리입니다. 380달러까지는 아닐지라도, 러시아가 가스에 이어 원유까지 무기화하며 감산에 나서 유가가 150달러 선만 넘어도 글로벌 경제가 버틸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은 여전히 현실적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전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침공 5개월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우리는 물음표 안에 갇혀 있습니다.

안상우 기자as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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