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계 노사갈등②]중소병원 근로 개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기사내용 요약
중소 병·의원 노동자들 근로조건 개선 촉구
코로나19 장기화 되면서 근로조건 더 악화
임금삭감·5인 미만 사업장 최저임금 위반 등
의협 등 사용자 측 노동 기본권 교섭 거부
보건의료 관련 단체들 공동전선 구축 예정
사용자 "코로나19로 수익개선된 것 아냐"
"수익은 한정됐는데 인건비 등 지출 확대"
근로조건 더 열악할 듯…정부·국회 나서야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중소 병·의원(동네 병·의원) 의료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용자인 의사·병원을 비롯해 정부와 국회를 향해서다. 2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병원들의 수익은 전반적으로 더 나아졌지만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의 근로조건은 오히려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는 이유다. 중소 병·의원 의료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조가 없다. 특히 사용자가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쥔 건이나 다름 없는 중소병원의 특성상 노동자가 노동 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데 한계가 있어 결국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간호사,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작업치료사, 임상병리사 등 보건의료인력의 절반 가량은 중소 병·의원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보건의료노조)가 중소 병·의원 보건의료 노동자 40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4%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불이익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노동법 위반에 따른 피해유형은 임금 삭감·체불부터 무급·연차휴가 강제 소진, 감염예방조치 미흡 등으로 다양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휴일근무수당 미지급, 육아휴직 미보장 등 노동조건도 열악했다. 특히 일부 근로기준법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최저임금보다 낮은 월급을 받는 등 노동법 위반이 심각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중소 병·의원 의료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자인 대한의사협회(의협), 대한병원협회(병협), 대한치과의사협회(치협)에 노동기본권 교섭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협회는 대화 테이블에 앉길 거부하고 있다.
김정호 보건의료노조 전략조정실장은 “(중소 병의원 노동자들은)보건의료노조에 대부분 가입돼 있지 않고 노조를 만들더라도 규모 있는 사업장처럼 사업장 단위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게 어려워 우리가 나섰지만, 해당 협회들은 협의할 사항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병협에는 요구안까지는 전달한 상태이고, 의협은 요구안을 받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며 "의협 회원의 대부분은 중소병원 원장들인 만큼 사회적 책임이 있는 것이 분명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협, 병협, 치협이 대화 테이블에 나오도록 지속적으로 설득해 중소 병의원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협약 체결이나 법제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작업치료사협회 등 보건의료 관련 단체들과도 손잡고 공동 전선을 구축할 예정이다.
특히 보건의료노조는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국회가 보건의료 노동자의 노동 기본권 보장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보건의료 노동자 중에서도 중소 병의원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특히 열악한 데다 병원장의 권한도 막강하다는 이유다. 김 전략조정실장은 "다른 병원에서 근무한 기간이나 경력이 인정되지 않아 임금 수준이 낮아지는 불이익을 받고 있고, 원장이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둬야 해 임금이나 휴가 등의 문제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면서 "정부와 국회를 움직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관계부처와 국회는 정기적인 조사를 통해 법률 위반 사항을 근로감독해 행정지도 등 조치를 취하고, 특히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도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사용자인 중소 병·의원 측은 노동자들이 대부분 노조가 없기 때문에 보건의료노조와의 노동 기본권 교섭에 나설 법적 타당성을 찾을 수 없고, 노동자 처우 개선의 기반이 되는 병·의원의 수익이 코로나19 사태로 개선됐다고 보기에도 어렵다고 맞서고 있다.
의료수입을 의미하는 건강보험 진료비는 지난해 전년 대비 증가했다. 건강보험 진료비란 국민이 의료기관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대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하는 진료비다. 의료계에 따르면 '건강보험 총 진료비 증감 현황'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과 병·의원, 요양병원 등 국내 전체 의료기관의 전년 대비 진료비 증가율은 지난해 7.6%로, 전년 대비 6.4%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소 병원은 6.0%로, 전년 대비 5.7%포인트 늘어났다. 의원은 10.0%로 전년 대비 9.7%포인트 증가했다.
하지만 중소 병·의원의 주 수입원이 건강보험 급여 수익으로 한정된 가운데 지출은 확대되고 있어 수익 개선은 쉽지 않다는 게 병원계의 입장이다. 병원계 관계자는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시행으로 비급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감염병 대응과 처우 개선 등에 따른 인력과 인건비 운영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결국 수익 악화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급여 본인부담 비율은 2015년 18.8%에서 2020년 13.7%로 5.1%포인트 감소했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노조는 코로나19 장기화 속에서 중소 병·의원의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전략조정실장은 "최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 병원 의사들의 임금수준이 봉직의(페이닥터)보다 높고, 종합병원보다 의원에 근무하는 의사의 평균 임금이 더 높았다"면서 "폐업을 뺀 나머지 중소 병원의 수익이 남지 않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만 368만 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건의료노조가 조사한 중소 병·의원 보건의료 노동자(4058명)규모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근로여건 상 실태조사에 참여할 수 없는 노동자가 훨씬 많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제 근로조건은 더 열악할 수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 대치 국면이 쉽사리 해소될 수 없다면 정부와 국회가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소홀해왔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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