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원의 유혹도 '만장일치'로 뿌리쳤다"..겸재 정선 화첩의 '선한 귀환'[이기환의 Hi-story]
“뭔가를 주려면 기꺼이 줘야 합니다.” 2005년 10월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에레미아스 슈뢰더 아빠스(원장)가 <겸재 정선의 화첩>(21점)을 기증하며 언급한 담화문 중 한 구절입니다. 슈뢰더 원장의 담화문을 더 볼까요.
“우리는 한국인과 한국 역사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겸재 정선 화첩’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12명으로 이뤄진 수도원 장로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반환결정은 올바른 것이며,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겸재 정선 화첩>은 1911년과 1925년 한국을 방문한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신부가 가져간 그림첩이었습니다.
화첩은 ‘금강내산전도’와 ‘만폭동도’, ‘구룡폭도’ 등 금강산 그림 3폭과,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가 함흥의 고향집에 심었다는 소나무를 그린 ‘함흥본궁송도’ 등 18폭이 담았습니다.
■선한 반환
이 화첩은 1964년 광부로 독일에 파견됐다가 3년 뒤 뮌헨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던 유준영 전 이화여대 교수가 발견합니다.
겸재 정선의 실경산수화를 연구하던 유교수가 베버 신부가 쓴 책(<한국의 금강산에서>)에서 3폭의 겸재 그림을 본 겁니다.
유교수는 실물을 찾으라 백방으로 뜁니다. 결국 1975년 베버 신부가 오랫동안 아빠스(원장)로 일하던 오틸리엔 수도원의 선교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꿈에 그리던 겸재 그림을 찾아냅니다. 유교수는 겸재 정선 화첩의 발견 소식을 학계에 보고합니다.
다시 10년이 흐른 1985년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경북)의 선지훈 신부가 이 그림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왜관 수도원은 오틸리엔 수도원과 끈끈한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왜관수도원이 중국 옌지(延吉)와 함경도 덕원의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산하 선교사들이 한국전쟁 이후 내려와 정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독일 뮌헨대에서 교회사를 전공하던 선지훈 신부는 막역한 사이였던 예레미아스 슈뢰더 신부가 성 오틸리엔 수도원 아빠스(원장)가 되자 반환을 계속 타진합니다. 게다가 이 무렵부터 예기치못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미국 덴버미술관의 케이 블랙 연구원이 오틸리엔 수도원을 찾아와 이 화첩을 보고 “숨막힐듯한 걸작”이라고 극찬합니다. 블랙은 1999년 미술전문지(<오리엔탈 아트>)에 관련 논문을 실었습니다. ‘겸재 정선 화첩’은 일약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뉴욕 크리스티 같은 세계적인 경매회사가 나서 ‘50억원’을 호가하며 경매를 권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수도원으로서는 돈방석에 오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50억원의 유혹에도…
그러나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가치가 급상승한 것이 오히려 화첩의 귀환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수도원측은 ‘겸재 정선 화첩’을 돈벌이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외려 ‘해외에서 그 정도로 가치있는 유물로 평가한다면 당연히 한국에서는 무가지보(無價之寶), 즉 값으로 칠 수 없는 문화유산이 아니겠냐’고 판단합니다.
오틸리엔 수도원측은 “2009년은 오틸리엔 수도원과 왜관의 성베네딕토회가 한국에 진출한 지 100주년되는 해다. 그길 기념하는 이벤트로 겸재 정선 화첩을 기증하는게 어떠냐”는 선지훈 신부의 간청을 받아들입니다.
결국 오틸리엔 수도원 측은 경매회사 등의 제안을 끝내 뿌리치고 왜관의 성베네딕도회에 영구기증 형식으로 반환합니다. 그렇게 돌아온 ‘겸재 정선 화첩’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이 위탁관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증 환수 과정에서 화첩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유준영 교수와, 기증을 권유한 선지훈 신부 등이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오틸리엔 수도원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기증 의사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수도원내에서 반대한 이가 단 한명도 없었다지 않습니까.
■“줄 때는 아낌없이!”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수도원측이 한번 ‘줄 때는 아낌없이!’라는 원칙을 세웠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틸리엔 수도원에는 <겸재 정선 화첩> 외에도 20세기 초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이 수집한 1700여 점의 한국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는데요.
한번 약속한 ‘선한 반환’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2014~15년에는 희귀한 식물표본 420점과 17세기 익산 지역의 호적대장을 돌려주었구요. 2018년 1월에는 국내 최초의 양봉 교재 중 하나로 알려진 <양봉요지>를 돌려주었습니다.
특히 2018년에는 조선 후기 보병이 입었던 ‘면피갑’을 기증 반환했는데요. ‘면피갑’은 면안쪽에 가죽을 겹쳐 만든 갑찰을 이어붙여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든 갑옷입니다. 18세기 쯤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면피갑은 현재 국내외에 10여벌 밖에 남아 있지 않아 유물로서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20년에는 60여 년 전인 1960년을 전후한 시기 사용했던 남성용 혼례복(혼례 용단령)을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의 한국문화재 반환은 ‘선한 반환’의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밀반출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1998년 9월2일 각 언론에 ‘눈 먼 김포세관…안타깝게 유출된 분청사기 상감 묘지(죽은 이의 행적을 기록한 글)’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되었는데요. ‘분청사기 상감 묘지’는 1454년(단종 2) 세종~단종 등 세 임금을 모시면서 사관·관료로 활약한 이선제(1390~1453)의 행적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묘지가 감쪽같이 도난 당했던 겁니다.
그러나 도굴꾼이 도굴의 흔적을 지웠기 때문에 문중에서도 언제, 무엇이 도굴 당했는지 알 수가 없었죠.
어떻게 밝혀졌을까요. 밀매단이 1998년 6월 김포공항의 세관원을 뇌물로 매수한 뒤 감정 절차를 아예 생략한 채 여행용 가방에 넣어 ‘이선제 묘지’를 일본으로 밀반출해버린 겁니다.
그렇게 사라진 이 유물은 사라진지 16년 만(2014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도쿄(東京) 내 한국문화재 유통조사를 실시하던 중 ‘이선제 묘지’의 존재를 알게됐구요. 결국 뒤늦게 불법반출 사실을 확인한 일본측 소장자의 조건없는 기증으로 환수됐습니다.
한편으로는 50억원의 유혹까지 뿌리치고 아무런 조건없이 한국 유물을 보내준 ‘선한 기증’의 사례가 있잖습니까.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남의 집 조상의 무덤까지 파서, 거기서 나온 유물을 해외에 밀반출한 어처구니없는 사례도 있군요.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누군가 슬쩍 해간 외규장각 도서 1책
또 다른 예를 보겠습니다. 국외 소재 문화재 재단 직원이 2017년 경매에 나온 유물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유물이 있었는데요.
<효명세자빈 죽책>입니다. 효명세자(1809~1830)의 부인인 신정왕후 조씨(1808~1890)이 세자빈으로 책봉될 때 대나무를 엮어 제작한 왕실문서인데요. <순조실록> 등 관련 자료에 죽책의 목록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죽책은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빼앗아간 외규장각 도서 중에 포함된 것일까요.
그러나 프랑스군이 본국 정부에 보고한 약탈품 목록에는 이 ‘효명세자빈 죽책’은 빠져있습니다. 사정을 알고보니 이 죽책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 중 누군가 슬쩍해서 시중에 팔아넘긴 자료 중 하나였습니다. 죽책의 소장자 할아버지가 1930년대 파리 골동품상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죠.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도서(의괘) 297책은 지난 2011년 무려 145년 만에 영구대여형식으로 돌아왔는데요.
그러나 그렇게 돌아온 297책은 국보·보물 등 대한민국의 국가지정문화재가 되기 어렵습니다. 영구임대형식으로 돌아왔으므로 297책의 국적은 여전히 프랑스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병인양요 때 개인적으로 슬쩍한 <효명세자빈 죽책>은 경매를 통해 구입했기 때문에 국보 혹은 보물로 지정할 수 있답니다. 아이러니죠.
■속속 환수되는 국새·어보
2014년 4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선물로 가져온 ‘황제지보’, ‘유서지보’, ‘준명지보’ 등도 기막힌 운명을 갖고 있죠.
2013년 9월 23일이었다. 김병연 문화재청 국제협력과 사무관에게 이메일 한통이 접수됐습니다.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한국지부가 보낸 사진첨부 메일이었는데요.
“한국전쟁 참전 해병대 장교의 사위가 고인이 된 장인의 유품을 처분하려 한다. 이 도장들이 도난품인지 알아봐달라.”
미국 내에서는 불법 거래된 문화재의 반입·유통을 형사처벌하는 엄격한 법규정(관세법·연방도난품법)이 존재해왔습니다.
한미 수사당국은 이미 1년 전(2013년), 한국전쟁 때 미군이 덕수궁에서 훔쳐간 ‘호조태환권’(인쇄원판·1892년 구화폐를 신화폐로 교환하려고 발행한 인쇄원판)을 압수한 예가 있거든요. 그런 사례가 있었기에 이번에도 공조수사가 이뤄진겁니다.
전문가 검토결과 대한제국 국새(‘황제지보’) 등을 포함한 9개의 인장임을 확인합니다.
이 인장들을 소장한 참전 미군은 “공산군이 철수하면서 덕수궁 소장 문화재는 모두 약탈해갔으며, 이 인장들은 구덩이에 묻혀있던 것을 가져왔을 뿐”이라고 주장했는데요. 그러나 수사과정에서 이 물품은 명백한 도난품임이 밝혀졌습니다.
미국 수사당국은 2013년 11월18일 대한제국 선포(1897년)를 계기로 제작한 국새(‘황제지보’) 등 9점을 전격 압수했구요. 압수 유물은 이듬해 오바마 대통령(재임 2009~2017)의 한국 방문 때 정식 반환됩니다.
이후 한미 양국간 문화재수사의 신속한 해결을 강조하는 양해각서를 주고받았는데요. 덕분에 한국전쟁 때 미국으로 불법 반출이 된 ‘문정왕후 어보’(LA카운티박물관 소장)와 ‘현종어보’(개인소장)가 환수됐구요. 재미교포가 1990년대 경매를 통해 구입한 한 국새(‘대군주보’)와 어보(‘효종어보’) 등도 도난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2019년 환수됐습니다.
■기막한 환수의 사연들
2017년 구입 환수된 강노(1809~1889·좌의정 역임)의 초상화 또한 재미있습니다.
이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강노의 증조할아버지인 강세황(1713~1791)과 강현(1650~1733·강세황의 아버지), 강인(1729~1791·강세황의 장남), 강이오(1788~1857·강세황의 손자) 등 ‘강씨 4대의 초상화’가 있었는데요. 구입 환수한 강노의 초상화가 어찌 그리 기존의 강씨 4대 초상과 닮았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고 합니다.
2020년 미국경매를 통해 구입 환수된 ‘앙부일구’는 은입사를 포함한 세부문양이 정교하다는 평을 받아 단박에 보물이 됐구요. 전세계에 단 3점 밖에 없는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의 구입환수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1893년에 찍은 주미조선공사관 사진 속에 나와있는 광화문 사진에서 발견한 광화문의 ‘문배도’ 그림을 찾아낸 기막힌 사연도 있는데요. 이 사진을 단서로 국외소재재단 직원들이 백방으로 뛴 결과 마침내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1882년 무렵 촬영된 원본 사진을 찾아냅니다. 그 원본사진을 확대해보니 1882년 무렵 광화문에 붙어있던 ‘문배도’ 그림이 보였구요,
‘문배도’는 정월 초하루에 나뿐 기운을 몰아내고 복을 기원하며 궁궐 정문에 붙였던 그림이죠. 그렇게 찾아낸 1882년 찍힌 사진속 그림을 토대로 복원한 ‘문배도’를 지난해 설날부터 광화문에 내걸고 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140년 전의 사진 한 장으로 그 시대 세시풍속을 완벽하게 복원해낸 겁니다.
■‘아직도 214208’
7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환수문화재 40여점을 출품한 특별전(‘나라밖 문화재의 여정’)을 열고 있는데요. 국외소재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아 열리는 전시입니다. 특별전에는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이 영구기증형식으로 보내준 <겸재 정선 화첩>을 전시하고 있구요. 2021년 일본에서 환수한 <나전 매화, 새, 대나무 상자>와 올해 3월 미국에서 환수한 ‘열성어필’과 ‘백자동채통형병’이 처음으로 공개됩니다. 2018년과 2019년, 조건없이 돌아온 면피갑(2018년)과 문인석(2019년)도 역시 나왔습니다. 얼마 전 언론에 공개한 ‘독서당계회도’(2022년) 등 6건도 처음으로 일반 관람객에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를 공부하다보면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게 되는데요.
2022년 1월1일 현재 21만4208점의 문화유산이 전세계 25개국에 흩어져 있습니다. 설립 10년을 맞이한 국외소재문화재단이 2011~21년 사이에 환수한 유물은 2341점(7개국 61건)에 달합니다. 그중 기증 685점(20건), 구입 103점(21건), 수사공조 12점(4건), 협상 1541점(13건) 등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직원들이 지구 160바퀴(629만㎞)를 돌면서 거둔 실적인데요. 산술적으로 따지면 전체 국외 소재 유산(21만4208점)의 0.11%에 불과하죠.
하지만 그렇게 발품을 팔아 인내력있게 찾아내고, 1점 1점 환수한다면 언젠가는 0에 가까워지겠죠. 한계는 분명 있습니다.
적법·합법적으로 반출되어 기관이나 개인이 소장 중인 문화유산의 경우 “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경우 어떻게 할까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문화유산이 그 자리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겁니다.
■‘해학반도도’의 사례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미술관이 소장한 해학반도도가 대표적인 케이스인데요.
이 병풍은 넘실대는 파도와 함께 복숭아나무, 대나무, 소나무로 꾸며진 선경 위에 백학 6마리가 노니는 장면을 그린 작품인데요. 전문가 감정 결과 16~17세기 중국작품이며, 일본에서 장황(비단 및 종이를 발라 책·화첩·족자 등을 꾸밈)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일 연구자인 김수진 박사(성균관대 초빙교수)와 일본인 이도 마사토(井戶美里) 교토(京都)공예섬유대 교수의 현지조사 결과 ‘한국(대한제국기) 병풍’임이 밝혀졌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이 병풍을 국내에 들여와 1년6개월간 보존처리를 한 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특별전의 형태로 일반관람객들에게 공개한 뒤에 돌려보냈는데요.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뉴욕에 본사를 둔 미술전문 매체(‘아트뉴스·Art News’)가 ‘오랫동안 (중국 그림으로) 오인되던 100년전 그림이 한국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는 제목으로 소개했습니다.
이 기사는 당시 ‘아트뉴스’에서 가장 많이 읽은 기사 1~2위로 화제를 뿌렸답니다. 보존처리 후 미국으로 돌아간 ‘해학반도도’는 데이턴 미술관의 특별대접을 받았다는데요.
피터 되블러 데이턴 미술관 아시아담당 큐레이터는 “보존처리 된 이 작품은 미술관의 아시아 유물 중 톱10에 쉽게 들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6월25일부터 9월까지 데이턴 미술관의 ‘보존처리 유물 특별전’에서 메인 전시품이 되고 있구요. 상설전시를 위한 한국실 개편도 고려한다는군요.
해학반도도 사례는 일례에 불과하구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3년부터 총 9개국 25개 기관을 대상으로 44건의 국외소재 한국문화재의 보존 및 복원과 활용사업을 지원해왔는데요.
저도 이 해학반도도의 사례가 국외소재 문화유산 관리·보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불법 유출되었거나, 미술시장에 나온 유물 중 우수한 것은 환수 추진을 원칙으로 해야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해당 문화유산이 그 자리에서 제대로 된 대접과 사랑을 한몸에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차선책이겠죠.
국외소재문화유산의 투트랙 전략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례로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존처리를 하지 않았다면 해학반도도는 앞으로도 영원히 ‘중국 유물’로 치부되었을 것이 아닙니까.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을 보면서 느끼는 감상입니다.
히스토리텔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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