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대법원과 헌재의 '한정위헌' 싸움에 '등 터지는' 국민

CBS노컷뉴스 송영훈 기자 2022. 7. 17.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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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연합뉴스

최근 법조계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 중 하나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한정 위헌' 갈등입니다. 사실 한정 위헌을 둘러싼 갈등은 최근 '툭' 튀어나온 문제가 아닙니다. 내용이 어렵다 보니 대중적 관심을 끌지 못했을 뿐, 한정 위헌을 둘러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갈등은 1990년 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행 중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파워 게임'입니다.

오늘 법정B컷은 도대체 한정 위헌 갈등이 무엇인지, 그리고 독특한 우리나라 사법 구조 체계에서 수십 년 간 이어진 갈등을 방치하고 있는 입법자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헌재가 취소했다… 근거는 '한정 위헌'


박종민 기자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의견으로 하나의 대법원 판결을 취소합니다. 우리나라 최고 법원으로서, 모든 재판에서 최종 판단을 내리는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한 겁니다.

헌재 결정의 근거가 바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정 위헌'입니다. 천천히 살펴보겠습니다.

통상 헌재는 어떠한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안 되는지에 대해서 판단합니다. 헌재가 어떠한 법률에 대해 헌법에 위배됐다고 판정을 내리면, 해당 법률은 효력을 상실하게 되고, 국회는 해당 법을 바꿔야 합니다. 최근 헌재가 위헌 판정을 내린 '윤창호 법' 등이 그 예입니다.

하지만 한정 위헌은 다소 다릅니다. 법률은 놔두는 대신 '이렇게 해석하거나 적용하면 위헌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이 한정 위헌입니다. 헌재는 이를 근거로 법원의 판결을 취소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법률 해석 과정에서 위헌 요소가 발생했으니, 해당 재판도 취소돼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에 논란이 됐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003년 제주도 통합영향평가심의위원회 위원에 위촉된 A씨는 평가 과정에서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확정됩니다. 그러자 2011년 헌법 소원을 냅니다. 자신에게 적용된 형법 129조 1항은 뇌물을 받거나 요구한 '공무원'을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자신은 공무원이 아닌 위촉위원이므로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2012년 헌재는 A씨의 손을 들어줍니다. "형법 129조 1항에 있는 공무원 부분에 위촉위원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면 헌법에 위배된다"라고 한정 위헌 결정을 내린 겁니다. 해당 법률에 있는 공무원을 잘못 해석했으니 그 또한 위헌이라는 겁니다.

헌재로부터 한정 위헌 판단을 받아낸 A씨는 곧장 2013년 대법원에 재심을 요구합니다. 다시 판단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고, A씨는 대법원이 헌재의 한정 위헌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고 다시 헌법 소원을 냅니다.

그리고 2022년 6월 30일 헌재는 대법원이 한정 위헌을 따르지 않았다며, 다음과 같은 이유로 대법원의 재심 거부 결정을 취소합니다.

2022.6.30 헌법재판소 결정 이유 요지 中
"헌법재판소가 법률의 위헌성 심사를 하면서 합법적 법률 해석을 하고 그 결과로써 이뤄지는 한정 위헌 결정도 일부 위헌 결정입니다"
"헌법이 법률에 대한 위헌 심사권을 헌법재판소에 부여하고 있으므로,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 기속력(구속력)을 부인하는 법원의 재판은 그 자체로 헌법재판소 결정의 기속력(구속력)에 반하는 것이고, 헌법의 결단에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입니다"


대법원 "법 해석은 법원의 것, 간섭 불허"…25년 만의 파워게임


대법원 청사. 연합뉴스

대법원은 헌재가 근거로 들고 있는 한정 위헌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헌재가 25년 만에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자 대법원은 이달 6일 입장문을 통해 강하게 반발합니다. 우리나라 사법부 양대 산맥의 충돌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리스크가 있음에도 입장문을 낸 것인데, 그만큼 물러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겁니다.
대법원 주장의 핵심은 '법률 해석 권한은 온전히 대법원을 중심으로 한 법원의 것이지, 헌법재판소가 법을 해석하고 그에 따르라고 할 권리가 없다'는 겁니다.
2022.7.6 대법원 입장문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원의 권한에 대해 다른 국가기관이 법률 해석 기준을 제시해 법원으로 하여금 적용하게 하는 등 간섭하는 것은 우리 헌법에 규정된 국가권력 분립 구조의 기본 원리와 사법권 독립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습니다"

"(헌재의 결정은)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하는 심급제도를 사실상 무력화함으로써 국민이 대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을 받더라도 여전히 분쟁이 해결되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는 등 우리 헌법이 전혀 예상하지 않은 상황을 초래할 우려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현행 헌법재판소 법을 근거로 헌재가 권한에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현행법에도 법원 재판 자체는 헌재의 심판 대상이 아니라고 돼있다는 겁니다.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은 헌법소원 범위를 설명하며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법원의 재판에 대해선 헌법 소원을 낼 수 없다는 겁니다. 다만 헌재의 해석은 다릅니다. 기존 헌재 결정례를 거론하며 아래와 같이 한정위헌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죠.
헌법재판소법  제5절 헌법소원심판 中
제68조 (청구 사유) ①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 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 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중략)

[한정위헌, 2016헌마33, 2016. 4. 28., 헌법재판소법(2011. 4. 5. 법률 제10546호로 개정된 것) 제68조 제1항 본문 중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부분은,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


독특한 구조 속 수십 년 갈등… 싸움 방치한 국회

대법원과 헌재의 관계는 오묘합니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최고 법원으로 사법부의 우두머리 격으로 통하죠. 헌재는 우리나라에서 헌법을 다루는 최상위 기관이란 점에서 높은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더욱 존재감을 키우기도 했죠. 딱 잘라서 누가 높고 낮냐를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정 위헌'을 둘러싼 두 기관의 파워 게임이 하루 아침에 끝날 리는 없어 보입니다. 앞서 본 것처럼 우선 두 기관 모두 양보할 마음이 없습니다.

헌재는 지난 2013년에도 '헌법 소원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넣어야 하고, 또 한정 위헌 등의 기속력을 명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헌재의 숙원이라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대법원 입장에선 그럴 경우 헌재가 대법원의 상위 기관이 되는 격이라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일선 법원 한 판사는 "법원의 판결 자체를 건드리는 아주 근본적 문제인데, 법원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며 "헌재의 위헌 심판 대상에 법원 판결이 명시적으로 있지 않은 이상 수용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합니다.

'한정 위헌'을 둘러싼 두 기관의 파워게임에 결국 입법부가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연합뉴스


결국은 입법부가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법조계 내에서도 대법원과 헌재가 서로 양보하고, 둘이서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한 변호사는 "입법적으로 명확하게 해결돼야 할 문제인데, 정작 국회는 관심이 없다"라고 지적합니다.

두 기관의 파워 게임이 방치될 경우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옵니다. 위에 등장한 A씨의 경우만 봐도 그렇습니다.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 A씨는 재심만 신청하면 대법원에서 확정된 자신의 유죄가 뒤집힐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한정위헌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으며 재심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A씨가 그래서 다시 헌재에 위헌 소송을 내니 헌재는 대법원이 재심을 해야 한다며 다시 공을 대법원에게 넘긴 겁니다. 대법원의 입장은 앞서 나온 입장문에서 보듯 바뀐 부분이 없습니다. A씨가 또다시 재심 청구를 한다 한들 또다시 기각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소송을 자신이 수행하지 않는 이상 변호사를 고용해야 하고 많은 비용이 듭니다. A씨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걸까요?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이론상으로 A씨는 대법원과 헌재 사이를 쳇바퀴 돌듯이 계속해서 오가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것이 온당한지 입법부와 사법부가 답해야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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