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2시간 수색해 찾은 오일 자국..그 끝에 '뺑소니범' 있었다

하수민 기자 2022. 7.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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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경찰서 약수지구대 김권근 경위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34만건(2019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15일 오전 서울 중부경찰서 약수지구대 앞 김권근 경위(46)의 모습/ 사진 = 하수민기자

"폭행을 저지른 취객이 택시를 타고 출발했어요."

지난달 23일 새벽 2시쯤 다급한 목소리로 112 신고가 들어왔다.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폭행을 저지른 취객이 택시를 타고 도주했다는 것. 비슷한 내용의 신고는 각기 다른 신고자에게 연달아 세 차례나 들어왔다.

자칫 하루에도 몇건씩 있는 단순 폭행사건으로 치부될 수 있는 신고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 경위는 신고 내용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신고자의 녹취를 전부 들었다. 녹취를 모두 들은 김권근 경위(46) 머릿속에는 '단순 폭행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19년차 베테랑의 꼼꼼함과 촉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해당 신고를 전달받고 긴급 배치를 명령을 받은 김 경위와 약수지구대 대원들은 취객이 탑승한 택시를 잡기 위해 약수역 인근에서 대기했다.

신고자는 택시 기사였다.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간 택시 호출을 받고 승객을 기다리던 A씨(50대·남)는 택시 문을 열고 들어온 B씨(40대·남)에게 "콜을 받고 예약된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승차 거부를 했다. 술에 취한 B씨는 막무가내로 차를 태워달라며 A씨와 실랑이를 벌이다 A씨에게 주먹을 날렸다. 폭행을 피하려고 A씨가 택시에서 내리자 B씨는 A씨를 쫓아가 폭행을 이어갔다.

이를 목격한 20대 커플이 B씨를 제지하자 폭행을 멈추고 택시를 빼앗아 현장에서 도주를 시도했다. A씨와 20대 커플이 택시 도주를 막아서려 하자 B씨는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위협을 가했다.

택시 기사를 따돌리고 강남 방향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B씨는 약수역에서 대기 중이던 김 경위의 눈에 바로 포착됐다. 택시를 발견한 즉시 약수지구대 순찰차 2대가 바로 따라붙었다. 사이렌을 울리고 여러 차례 정지 명령을 했음에도 B씨의 도주는 논현동까지 이어졌다.

논현로 인근 골목길에서 택시에 가까이 따라붙은 김 경위는 택시 앞에 큰 쓰레기차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김 경위는 순찰차 방송을 통해 길 앞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김 경위는 택시의 후방과 측면을 순찰차로 막은 뒤 하차했다. 경찰은 B씨를 강도 및 음주운전 혐의로 검거했다. 검거 당시 B씨의 혈중알콜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매서운 베테랑의 눈…바닥 위 엔진오일 흔적 보고 뺑소니범 검거
15일 오전 서울 중부경찰서 약수지구대에서 근무 중인 김권근 경위(46)의 모습/ 사진 = 하수민기자

김 경위의 예리함이 발휘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경위는 입직한 지 8년차였던 2010년 뺑소니 사건을 맡았다.

50대 여성이 새벽 배달을 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신호대기를 하는 중 음주 운전 차량에 치였다. 여성은 오토바이에서 날아가 크게 다쳤고 가해 차량은 곧바로 도주했다.

김 경위는 "사고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병원에 찾아가니 자신의 몸 상태보다 병원비 걱정부터하는 피해자를 보며 의지가 불타올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경위는 사고 현장 주변을 2시간 넘게 수색했다. 그러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도로 위 차량 엔진오일 자국을 발견했다. 김 경위는 걸어서 오일 자국을 따라갔고, 자국이 뚝 끊긴 부분을 발견했다. 좀 더 걸어가 보니 주차장 하나가 있었다.

주차장 안으로 들어간 김 경위는 주차장에 있는 차 한 대 앞부분 범퍼가 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김 경위는 바로 플래시로 차 안을 비춰봤다. 그 안에는 의자를 완전히 뒤로 넘긴 채 누워있는 사람이 있었다. 김 경위는 바로 창문을 두드려 나오라고 한 뒤 뺑소니범을 검거했다.

김 경위는 "의지를 갖고 마음먹고 제대로 추적해서 단시간 내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어 뿌듯했다"며 "뺑소니범 검거는 시간이 생명인데 바로 범인을 검거해 피해자가 보상받을 수 있게 돼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웃 경찰'로 산 19년…"무거운 책임감 느낀다"

15일 오전 서울 중부경찰서 약수지구대 안 김권근 경위(46)의 모습/ 사진 = 하수민기자
올해로 경찰 생활 19년째인 김 경위는 '이웃 경찰'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김 경위는 "내가 어떤 일은 사건을 어떻게 접하냐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달라져 버리는 상황"이라며 "항상 따뜻한 경찰이면서도 이성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 경위는 쉬는 날이면 틈틈이 배드민턴과 조깅을 하며 체력을 기르는 '모범생'이기도 하다.

김 경위는 "경찰의 업무는 위험하기도 하고 체력적 한계에 부딪힐 때도 많다. 교대 근무를 하다 보면 나태해지고 바이오리듬이 깨지기도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운동을 통해 체력 관리는 필수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각별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김 경위는 항상 후배가 새로 들어오면 "의지를 갖고 일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김 경위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매 순간순간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다.

새로 들어오는 어린 후배들에게 세세한 잔소리는 지양하는 편이 다 대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이끌려고 노력한다. 김 경위는 "부끄럽지만, 후배 직원들이 인사 발령 나서 지구대를 떠나게 되면 이제 누가 재밌게 해주냐 하면서 아쉬운 소리를 한다"며 "그럴 때면 내심 기분이 좋다"고 웃어 보였다.

끝으로 시민들이 믿을 수 있는 경찰이 되고 싶다는 김 경위는 "국민에게 부여받은 권한과 함께 경찰관으로서 소임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겠다"며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이웃 경찰관이 되도록 항상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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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민 기자 breathe_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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