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책배우자' 남편의 이혼 청구, 대법은 받아들였다..이유는?

상대가 소통을 거부하며 말로만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 결혼생활 파탄의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라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민법상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허용되지 않지만(유책주의), 상대 배우자가 사실상 혼인 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없다면 예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이 유책주의 아래서 구체적인 예외 허용 기준을 제시한 것은 처음이다.

17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이혼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남편 A씨는 2010년 아내 B씨와 결혼한 뒤 딸을 낳았다. 이들은 혼인 생활 중 갈등을 겪었으며, 결국 A씨는 2016년 집을 나간 뒤 B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 책임으로 혼인 관계가 파탄에 이른 것이라며 청구를 기각했다. 첫 이혼소송이 끝난 후에도 이들은 별거를 지속했다.

A씨는 딸을 만나고 싶었지만, B씨는 자신을 통해서 딸과 연락해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만나게 해주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A씨는 3년 만에 다시 이혼소송을 청구했다.

1심과 2심은 A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첫 이혼소송에서 패소한 뒤 집에 돌아가지 않는 등 혼인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이유에서다. B씨가 첫 소송 때와 마찬가지로 이혼 의사가 없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가 유책배우자였더라도 이혼소송을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유책 배우자의 이혼소송 청구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물론 상대방 배우자가 혼인관계를 유지할 의사가 없거나, 책임이 사라질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와 자녀를 보호했다면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B씨가 겉으로는 이혼을 원하지 않고 있지만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A씨의 과거 책임을 이유로 전면적인 양보만 요구하고 있어 이들의 혼인 관계가 사실상 회복되기 어렵다고 했다.

이처럼 B씨가 말로만 이혼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첫 이혼소송 때와 달리 지금은 A씨의 책임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혼소송 청구를 배척해선 안 된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다만 재판부는 상대방 배우자가 혼인 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소송 청구를 쉽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했다. 상대방 배우자가 경제·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처해 법적으로 혼인관계가 유지돼야 연금 등 혜택을 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 배우자가 자신과 미성년 자녀의 향후 생활을 우려해 이혼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비록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더라도 유지하는 것이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면 이혼소송 청구를 기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이 유책 배우자의 이혼소송 청구에 관해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 의사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경우와 허용할 수 없는 경우의 판단 기준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라며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 계속 의사의 판단 기준 및 판단 방법을 처음으로 구체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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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연 기자 2counting@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