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취임 후 첫 방일..아베 추모 분위기 속 한일관계 성과는 미지수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박진 외교부 장관이 오는 18일부터 사흘 간 일본을 공식 방문한다. 지난 5월 취임 후 첫 방일이다.
박 장관의 이번 방일이 한일관계를 개선할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오지만 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총리의 죽음으로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단 우려도 나온다.
16일 외교부에 따르면 박 장관은 18~20일 일본에 머물며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과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열어 한일관계, 한반도 문제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논의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박 장관은 18일 하야시 외무상과 회담 뒤 만찬을 함께하며, 방일 기간 일본 각계 인사와의 면담을 가질 예정이다.
박 장관은 또 이번 방일을 통해 지난 8일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7월10일) 지원유세 도중 아베 전 총리가 총격으로 숨진 데 대해서도 조의를 표할 예정이다.
우리 외교장관이 양자회담을 위해 일본을 찾는 건 지난 2017년 12월 강경화 당시 장관 이후 4년7개월 만에 처음이다. 박 장관이 취임 후 하야시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박 장관의 방일을 계기로 '악화일로'를 걸어온 한일관계 개선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에 정부 안팎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양국 간 최대 갈등 현안인 일본 전범기업들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와 관련해 어떤 논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일본 정부는 그간 강제동원 피해자 등에 대한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우리 정부에 제공한 총 5억달러 상당의 유무상 경제협력을 통해 "이미 해결됐다"라고 주장해 왔다. 우리 법원의 관련 판결 또한 "국제법 위반"에 해당하는 만큼 우리 정부가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일본 측의 논리다.
우리 정부는 이달 4일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과 지원단체, 학계·법조계·경제계 등 전문가, 전직 외교관 등이 참여한 민관협의회를 구성해 해법 모색에 나선 상황이다. 따라서 박 장관은 방일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일본 측의 협조를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론 해결이 불가능한 만큼 미래지향적 협력과 분리해 '투트랙'으로 접근하며 미래지향적 관계를 추구하자고 촉구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박 장관의 방일로 역사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진 않겠지만 양국 정부가 긴밀하게 협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그렇게 된다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나 수출 규제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미중 갈등 격화, 우크라이나 사태, 북한의 국방력 강화 등의 상황 속에서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을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겉으로는 한미일 협력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한일 간에는 협력이 제대로 되지 않는 구조가 되지 않도록 성과를 내는 게 좋다"라고 조언했다.
이번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첫 정상회담이 논의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지난달 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은 환영 만찬, 한미일 정상회담 등 계기로 조우했으나 정작 양자회담은 열지 못했다.
조 교수는 "윤 대통령도 '조기에 만나자'는 뜻을 피력한 만큼 현재 기준으론 오는 9월 유엔 총회가 한일 정상회담의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며 "정상회담으로 가는 과정에서 양국의 여러 외교 정책을 진전시켜 나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일본 내 정치 상황이 한일관계 개선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당초 한일 양측은 박 장관의 6월 방한을 계획했다가 이달 참의원 선거 등을 고려 이달 중순 이후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일본 참의원 선거 이후 기시다 총리가 리더십을 발휘할 여지가 커지고, 외교 정책 면에서도 자율성을 확대해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박 장관의 방일을 정상회담으로 가는 포석으로 생각한 셈이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 온 아베 전 총리의 죽음에 따라 '아베의 유지를 받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기시다 총리도 과거와 문제와 관련해 우리의 요구에 응하거나 쉽게 타협할 여지가 현재로선 사실상 없다.
현재 도쿄에 체류 중인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박 장관의 방일과 한일관계 개선에 주목하는 현지 보도나 기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아베는 죽었지만 적어도 그의 장례가 치러지는 9월까진 아베파의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히 발휘될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일본은 '한일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강제징용 문제를 깨끗이 처리하고 오라'는 입장인데 현 상태론 관계 개선은 물론 정상회담까지 가기도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아베라는 인물이 사라졌기에 일본 우익의 목소리가 잦아들 수 있고, 기시다 총리도 아베보다 온건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외교가에서는 일본 내 평화헌법 개정이 가속화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일본 헌법 제9조에는 전쟁을 포기하고 정식 군대를 가지지 않겠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는데, 기시다 총리는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최근 발언했다.
이와 관련 우리 외교 당국은 "관련 논의가 평화헌법의 기본 정신을 존중하는 가운데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h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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