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개혁도 민생도 여성도 안 보인다
환노위 1지망 선택 의원 없어
새 시대에 맞는 가치 모색해야
오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당대회준비위원회 ‘당헌·당규·당무 발전 분과위’에 당헌·당규 개정안을 제출했다. 전당대회는 당 지도부 선출 외에도 크게는 당 강령 개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노선을 제시하고 작게는 당헌·당규 제·개정 등을 통해 당의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다. 정 의원은 개정안에 광역단체장 여성 공천 10% 이상·기초단체장 여성 공천 20% 이상을 의무화하고, 상설위원장 등의 정무직 당직자에 여성 30% 이상을 임명하는 등의 조항을 담았다. 당이 좀더 다원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장치들이다.
■전당대회, 당헌·당규 개정 기회이기도
“제안은 한 상태인데, 통과되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지난 전당대회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당헌·당규 개정이 쉽지 않으리라고 전망했다. 정 의원은 2020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두가지 목표를 세웠다. 당규에 공직선거후보자추천위원회와 공직선거후보자추천재심위원회 구성 시 여성 위원을 정원의 50% 이상 두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었다. “네 번의 회의를 했는데, 이 두가지를 통과시키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지방의 경우 후보추천위원회에 50%씩 채울 여성이 없다는 게 주요 반대 이유였다. 지방의 여성 정치인들은 이런 반대논리에 말도 안 된다고 반응한다.” 당헌·당규개정위원회를 통과하자 당무위 논의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무위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정 의원은 다선 여성의원들에게 요청해 이들이 당무위 회의에 배석하도록 했다. “죽기 살기로” 싸운 결과, 공직선거후보자추천재심위원회에 여성 위원 50% 이상을 두도록 하는 조항 하나를 관철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떨까. “여성이 광역·기초단체장 후보가 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다. 당선은 그다음 문제다.” 광역·기초자치단체장에 여성 후보를 내는 것조차 ‘사람이 없어서’라는 반대논리에 번번이 막힌다고 했다. 정 의원은 민주당이 ‘성평등’을 저출생·고령화 위기를 극복할 해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평등을 ‘여성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저출생·고령화와 성평등은 맞물려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저출생 문제,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 노인빈곤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성평등’을 핵심적인 가치로 두고 있다.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여성들의 인권을 향상시킨다는 측면에서 우리 당이 성평등의 가치를 주도하고 우리 당의 대표들이 성평등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향후 민주당을 이끌겠다는 후보들은 한목소리로 ‘개혁’을 외치고 있다. 당의 현실은 그러나 당헌·당규에 광역자치단체장 여성 후보를 10% 이상 공천하는 ‘성평등’ 조항을 담아내기도 쉽지 않다.
■민주당, 환노위 지원자 0명
전당대회를 둘러싸고 ‘세대교체’, ‘친명 대 반명’ 등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당내 권력구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만,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에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떨어지지만 우리는 버틸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주류 사회에 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경제력 등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민주화, 도덕성, 명분 등으로 경제력을 눌러왔는데, 이번에 그 가치가 사라졌다는 게 증명돼 지지율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으로서는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과 맞닥뜨렸다는 얘기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세대균열을 강조해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계급, 젠더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이슈 중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면한 이슈들을 대하는 민주당의 현재 모습은 오히려 과거보다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연이어 패배한 민주당은 ‘유능한 민생정당’을 주창하고 나섰다. 국회 후반기 상임위 배정을 앞두고 ‘민생’과 직결된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를 1지망으로 선택한 의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다수의 의원이 2년 후 치러질 총선에 대비해 지역구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국토위 등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는 보수여당에 맞서 노동정책에 관심을 기울였던 민주당의 과거 모습과도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부른다. 특히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 등 정부의 친기업 반노동적 정책 기조에 입법 대응을 할 책임을 진 제1야당이 되레 외면했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김윤철 교수는 “환노위에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현재의 민주당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이다. 2013년 경제민주화 논의가 한창일 때만 해도 당시 이인영 의원 등이 적극적으로 환노위를 가겠다고 하면서 노동계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랬던 민주당이 지금은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산적한 노동현안들을 처리해야 하는 환노위에 민주당 의원들의 관심이 사라진 건 대안정당으로서의 위상 추락과 궤를 같이한다. 민주당이 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김윤철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7월 5일자)에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표 차이 0.73%와 최근 증가한 노조조직률 14.2%를 비교하며 “0.73%보다 14.2%가 더 중요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선 득표율 격차의 감소는 양극화와 혼전 상태의 유지를 뜻하고 실제 그리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반면에 노조조직률의 증가는 정치를 에워싸고 있는 사회적 변동과 힘의 관계 구조와 관련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가령 정치를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는 조짐이기 때문이다.” 노조조직률이 최근에 와서 높아진 이유는 정치가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못하다 보니 스스로 나서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20년 집권론’이 빠뜨린 ‘민생’
불과 몇년 전만 해도 ‘20년 집권론’의 청사진을 그릴 만큼 높은 지지를 받았던 민주당이 연이어 선거에서 패배한 것도 ‘민생’ 이슈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발표된 논문 ‘5년만의 정권교체와 탄핵정치연합의 해체요인분석’(정한울)은 2018년 ‘20년 집권’을 말하던 민주당이 불과 몇년 사이에 정권교체의 대상으로 전락한 원인을 분석한다. 논문은 탄핵 이후 더불어민주당 우위의 새로운 정당지지연합이 등장했다고 보고 이를 ‘탄핵정치연합’이라고 이름붙였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압승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 민주당 지지층으로 유입된 소위 ‘뉴민주 지지층(뉴민주)’이 기존의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올드민주)과 연합해 정부 여당의 지지기반을 확장했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총선 승리 이후 ‘적폐청산’, ‘검찰개혁’ 등에 힘을 쏟으면서 민생 이슈에 소홀하게 됐고, 이러한 기조가 지지층 이탈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180석 의석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과 친여 매체들은 총선 승리를 적폐청산, 촛불 개혁 완수에 대한 권력 위임으로 이해하며 강한 적폐청산, 권력기관 개혁 드라이브를 본격화했다. 추미애 장관 주도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를 강행하는 등 초강수 행보를 이어갔다. 정책적으로는 ‘6·17’, ‘7·10’, ‘8·4’ 부동산 대책 등 24차례 이상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 전세 물량 급감, 부동산 세제 강화, 대출억제의 부작용이 가시화됐다. 이는 올드민주층과 뉴민주층 간의 균열을 유발했고, 더불어민주당 우위를 뒷받침하던 뉴민주층을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탈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무능한 여당, 야당의 준비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에 대한 부정 평가가 50%를 넘고 있는 지금,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대안세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대통령지지율은 바닥을 찍고 있지만, 이탈한 지지층이 아직 민주당 지지로 돌아서지는 않고 있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연구위원은 이탈한 ‘뉴민주층’과 국민의힘으로 지지를 옮겨간 ‘뉴보수층’에 대해 “민생 이슈에 굉장히 민감하다”라며 “이들은 탈이념적이고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목소리를 낸다. 이 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공존시켜야 할지가 정당의 숙제”라고 말했다. 정당이 ‘민생’ 이슈에 실력을 보여줘야 하고 정치공학을 앞세워 단일화를 강요하지 않는 ‘당내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이 쇄신의 한 방법으로 약속한 정치개혁도 민주당의 의지와 혁신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국회 의석 과반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정치개혁을 추진한다면 2024년 총선을 앞둔, 앞으로 1년이 국회의원 선거제 개혁과 개헌 등 정치개혁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민주당이 과연 정치개혁의 의지가 있는지 회의적인 평가가 많다는 점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기초의원 3인 중대선거구 도입이 무산되고 일부 지역에 도입해 시범 실시하는 데 그쳤다. 그마저도 30곳의 시범 선거구에서 거대 양당이 모두 정수와 같거나 많은 후보를 내며 중대선거구제의 취지를 무력화시켰다. 당대표 출마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이재명 의원은 출마 메시지에서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의 정치개혁 논의는 이 의원의 당대표 출마로 급물살을 탈 것인가, 아니면 시늉만 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말 것인가.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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