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갑자기 짜증을 낸다고?.. 산후우울증 열쇠는 '배우자' [토닥토닥엄마건강]

김희원 2022. 7. 1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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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 차이 있지만 산모의 70∼80%가 우울감 경험
보통 3∼6개월 내 사라지지만 방치땐 만성화 고통
지치고 자존감 상처.. 증상 심하면 상담·입원 필요
남편 덕에 좋아지거나 '남의편' 때문에 악화되기도
"아내 얘기 들어주기.. '나도 힘들어'는 도움 안돼"
산후우울증을 앓던 산모가 아기를 살해했다는 뉴스는 불행하게도 꽤 자주 전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후우울증이 ‘배아파 낳은 자식까지 살해할 수 있는 아주 무서운 정신질환’이란 사실은 대충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사례로 표출되지 않은 수많은 산후우울증의 모습이 어떤지는 잘 모른다. ‘아내가 아기를 낳은 뒤 짜증을 너무 자주 낸다. 힘들다고, 알아달라고 불평한다. 갑자기 울기도 한다. 항상 기운이 없고 모든 일에 무관심하며 잠을 너무 많이 잔다. 왜 그러지? 예전엔 안 그랬는데?’

모두 산후우울증 증상이다. 아기를 낳은 여성의 70∼80%는 일시적인 우울감을 경험한다. 그 중 10~20%는 4∼6주 이내에 우울증이 발생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3∼6개월 이내 자연스럽게 사라지지만, 그 시기를 잘못 보내면 산후우울증이 악화되고 만성화돼 오랫동안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육아기계’된 느낌에 자존감 ‘붕괴’

회사원 정모(39)씨는 출산 이틀 전까지 회사에 나갔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고 개인적인 일로 회사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

산후조리 기간, 그의 프로젝트가 큰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임신 중에도 치열하게 일해 낳은 자식같은 결과물이었다. 시상식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말렸다. 정씨는 간부들이 상장과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며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뒤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당해 인사고과 ‘B’를 주겠단 내용이었다. 평가 기간은 11월까지였고 그는 11월 중순까지 일했으며, 프로젝트를 이끌어 대외수상까지 해냈지만 A를 받지 못했다. 휴직 중인 사람에게 A를 줄 수 없다는 사내 분위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기엄마가 아닌 다른 자아가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쌓은 성과에 누구 하나 수고했단 말이 없었고, 그가 육아휴직을 함으로써 불편해진 것에만 신경쓰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침 가슴을 풀고 수유 중이었던 그는 자신이 ‘육아기계’처럼 여겨졌다.
그 후로 자존감이 줄곧 바닥을 기었다. 산부인과 산후검진에선 “산후우울증이 의심된다”며 정신과 상담을 권유했지만 홀로 아기를 봐야하는 처지에 병원 상담까지 다닐 여유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 정신적으로 의지할 데라곤 남편밖에 없었지만 남편은 그런 아내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술자리가 잦고 늦게 퇴근하는 직종 특성 때문에 육아 참여도도 낮았다. 부부는 자주 다퉜다. 

복직해 다시 회사를 다니는 지금도 가끔 우울감에 휩싸인다는 정씨는 “회사원, 딸, 아내 등 내 안에 무수히 많은 자아가 있는데 아기를 낳음과 동시에 애엄마 말고 다른 자아는 모두 부정당한 느낌이었다”면서 “그런 환경에서 나는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부정적인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낮은 자존감’은 산후우울증을 겪는 여성에게 흔히 나타난다. 워킹맘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엄마들은 출산과 동시에 ‘나를 위함’은 1도 없이 내 모든 것을 아기를 먹이고 재우는 일에 쏟는다. 여기에 주변에서도 “잘 자야 아기를 잘 볼 수 있다”, “잘 먹어야 젖이 잘 나온다” 등 아기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언행을 자주한다. 아직 ‘환자’인 산모는 이런 상황에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생긴다. ‘이전의 나는 없고 OO이 엄마만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면서 자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행복보다 큰 불안과 죄책감

산후우울증의 신체적 원인은 출산 후 급격한 호르몬 변화에 육아로 인한 피로, 수면장애, 충분치 못한 휴식, 생활의 변화가 더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아기의 기질이 까다롭거나, 주변으로부터 전혀 육아 도움을 받지 못해 ‘독박육아’를 하는 경우 산후우울증이 심해진다.

정신적 원인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간혹 “아기는 보기만 해도 행복한 존재인데 왜 엄마가 우울하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정말 모르는 소리다.

산후 행복감은 아주 복잡한 감정과 함께 온다. 이 소중한 아기가 나 때문에 다칠까봐, 잘못될까봐 걱정이 많아진다. 아기가 이유없이 울거나 잘 안먹으면 내가 잘못한 것 같아 불안하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최선을 다하는데도 늘 부족한 것 같다. 힘들다. 가끔 아기도 보기 싫어진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죄스럽다.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 왜 나만 이럴까. 자괴감도 따라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산모는 몇 없다. 특히 첫째를 낳은 엄마들이 산후우울증에 더 취약한 이유는 자신감 부족에서 오는 불안과 죄책감 때문이다. 이럴 때 주변에서 용기를 주면 부정적 감정을 극복할 수 있지만,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해 심각한 우울증을 앓게되는 산모도 있다.

30대 산모 A씨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기질이 예민한 아기를 키우고 있다. 도움받을 곳이 없어 늘 높은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홀로 24시간 아기를 본다. A씨는 우울정도가 심해 자주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기를 보면 미안해 그럴 수 없고 괴롭기만 하다.

그는 남편에게 이런 자신의 상황을 털어놨지만 돌아온 건 면박이었다. 남편은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느냐. 왜 정신력이 그리 약하냐”고 말했다.

숨통 틀 곳 없던 A씨는 ‘이러다 정말 큰 일 나겠다’ 싶어 정신과를 찾았다. 약물의 도움을 받아 상태가 조금은 나아졌다. 하지만 남편이 부부상담을 완강히 거부해 적극적인 개선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족 모두를 위해 필요한 치료…핵심 역할은 ‘남편’

산후우울증은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까. 병원에서는 ‘에딘버러 산후우울 검사’를 진행해 점수가 높을 시 치료를 권한다. 아래의 검사지를 통해 스스로 산후우울증 정도를 알아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산모의 10∼20%에서는 치료를 요하는 정도의 우울증이 나타나는데, 특히 아이에게 해를 끼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위험이 있을 경우엔 입원치료도 필요하다.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산후우울증을 적극 치료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아이에게 후유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앓는 엄마의 영향을 받은 아이들은 기질적으로 부정적인 정서를 보이고,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며 학업수행 능력이나 지적능력의 저하를 보일 수 있다. 또 또래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집중력저하, 문제행동 등으로 인해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보일 수도 있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은 산후우울증의 치료에 대해 “무엇보다 산모에 대한 가족의 지지와 관심, 도움이 중요하며, 특히 배우자가 치료 과정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배우자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는 실제로 배우자가 산후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체료제가 되기도 해서다.

13년간 여성·아동 상담을 해온 임지영 정신건강전문의는 “산후우울증 환자의 경우 남편 때문에 증상이 악화하는 경우가 반, 남편 덕에 극복하는 경우가 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편의 무관심한 태도와 언행이 산후우울증을 심화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그 경우엔 치료에도 비협조적이어서 아내의 상태가 쉽게 호전되지 못한다”면서 “반면 적극적으로 부부상담에 임하고 변화하려 노력하는 남편의 도움으로 산후우울증을 이겨낸 희망적인 케이스도 많다”고 말했다. 본인의 의지는 물론 가족들, ‘특히 배우자’가 노력해야 산후우울증을 극복하고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 본인은 자신의 감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히 표현하고 친한 사람들과 자주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어야한다. 배우자의 육아 참여도를 높이고 아기가 잘 때 휴식을 잘 취해야 한다. 지역 산모 지원 시스템을 활용해 육아 부담을 더는 것도 중요하다.

배우자는 어떻게 노력해야 하나. 보건의학계에선 △산모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격려하기 △산모가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가질 수 있도록 건강 지켜주기 △신생아 돌보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등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의와 육아맘들의 의견을 종합해 ‘산후우울증 극복을 위한 남편의 구체적 행동방침’을 몇 가지 정리해 본 바, 다음과 같다.

1. 퇴근 후 집에서 마냥 쉬려하지 말자. 집에 들어가기 전 ‘오늘은 아내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지’ 생각하자.
 
2. 아내가 오늘 힘들었던 일을 얘기하면 들어주자. “우리 여보 많이 힘들었구나, 고생했어.”(+토닥토닥)란 반응이 좋다. 공감 없이 “나도 힘들어”란 말은 금물. 육아 고통을 혼자 감당하라는 말밖에 안된다.
 
3. 아내를 안마해주자. 아이를 안거나 씻길 때 많이 쓰는 근육들, 주로 목, 어깨, 등을 눌러주면 시원하다.
 
4. 아내가 잠들었을 때 TV부터 켜지 말고 집안을 둘러보자. 마무리되지 못한 집안 일(아이 장난감 정리, 설거지 등)이 있으면 하자. 다음날 ‘할 일이 또 산더미구나’ 싶어 우울할 뻔했던 아내가 ‘내가 결혼은 참 잘했지’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5. 주말엔 아내에게 휴식할 시간을 주자.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리프레시할 수 있다. 남편들은 어린 아기를 혼자 보기 두려워하는데, 육아도 연습해야 는다. 단 몇시간이라도 아내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아이와 애착형성 기회를 가져보자. 
 
산후우울증 극복을 위해 배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밖에도 많다. 아내가 기분이 좋아질 만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모를 경우엔 물어보자. 아내가 먼저 얘기해줘도 좋다.
임 전문의는 “보통 남성들은 집에서 자신이 뭘 해야할지 잘 모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산후우울증이 없거나 아이가 어느정도 자랐더라도 남편의 이런 노력은 필요하다. 엄마가 기분이 좋으면 아이가 즐겁고 가족이 행복하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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