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서울 생활비가 홍콩보다 비싸다?

유경민 2022. 7. 1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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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이트 넘베오 생활비 통계에서 서울 44위 홍콩 49위
사이트 이용자가 가격정보 직접 입력하는 방식..신뢰성 의문
머서 등 3개 기관 조사에서는 홍콩 생활비가 서울보다 비싸

(서울=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유경민 인턴기자 =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가운데, 서울 생활비가 홍콩 등 다른 주요 도시보다 비싸다는 우울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글로벌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 넘베오(Numbeo)의 2022년 중반 '생활비 지수' 순위에 따르면 서울의 생활비는 세계 510개 도시 중 44번째로 비싸다. 미국 시카고(45위), 호주 시드니(47위), 홍콩(49위), 일본 도쿄(86위), 프랑스 파리(99위), 중국 상하이(297위)보다 높다.

이런 결과는 국내 언론을 통해 보도됐으며,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 시민의 삶을 억누르는 요인의 하나로 거론하기도 했다.

붐비는 서울 종로 식당가 2022년 7월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가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넘베오 통계대로라면 서울의 생활비는 시카고, 시드니, 홍콩, 도쿄보다 비싸다. 서울의 물가가 많이 오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물가가 비싸기로 악명높은 홍콩, 도쿄보다 생활비가 비싸다는 통계는 믿을 수 있을까.

우선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넘베오라는 사이트가 통계를 생산하는 방식을 살펴봤다.

전문 조사원들이 현장조사나 설문조사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이트 이용자들이 관련 정보를 직접 입력해 통계가 생산된다.

이용자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국가와 도시, 화폐 단위를 선택하고 식료품·외식비·교통비·공과금 등을 자유롭게 입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료품 부문에서는 1ℓ 우유, 쌀 1kg, 달걀 10개, 와인 1병 등 19개 항목의 가격을 직접 쓰게 돼 있다.

이 같은 통계생산 방식은 이용자가 부정확한 정보를 입력할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기획재정부 경제구조개혁국 김미진 사무관은 "해당 사이트는 이용자가 입력한 정보의 진위를 가리지 않아 이용자가 실제로 한국에 사는지, 홍콩에 사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넘베오' 사이트 생활비 가격 입력창 [넘베오 사이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사이트 이용자, 즉 가격정보 입력자가 턱없이 적다는 사실도 통계의 신뢰성에 의문을 남기고 있다.

넘베오에 따르면 서울 생활비 조사에는 지난 12개월 동안 193명이 참여했다. 950만 명에 육박하는 서울시 인구를 고려하면 193명이 입력한 정보로 서울시 생활비를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홍콩 생활비 조사에 참여한 이용자는 서울보다는 많은 420명이었다.

넘베오가 생활비 통계를 작성하기 위해 조사하는 품목의 수도 다른 조사에 비해 적다.

일례로 우리나라 통계청은 소비자물가지수를 계산할 때 460개 품목을 조사하고 생활물가 조사는 141개 품목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 넘베오의 조사 대상 품목은 53개에 그친다.

조사 품목들이 생활비를 산정하는 데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점도 눈에 띈다.

넘베오는 양육비 계산을 위해 국제학교 초등학생의 1년 학비를 묻고 있는데, 이번에는 2천5백50만원가량으로 산출됐다. 하지만 이는 외국인들이 서울에 거주하기 위해 지출하는 항목일 뿐 우리나라 국적의 내국인 대부분에게는 지출할 필요가 없는 항목이다.

이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 정부는 넘베오의 공신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은 바 있다. 지난해 5월 기획재정부는 언론보도와 관련한 설명자료를 통해 "넘베오 지표 생성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는 수집 기준도 불분명하고 상품의 종류나 질, 환율 변동 등 다양한 변수도 정확히 반영되지 않는다"며 "넘베오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인용하는 데 신중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넘베오'에서 제공하는 서울 생활비 [넘베오 사이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넘베오의 통계는 유사한 자료를 제공하는 다른 기관의 발표와도 차이가 있다.

미국의 자산관리기업인 머서(Mercer)가 지난달 발표한 '2022 생활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400여 개 도시 가운데 외국인이 살기에 비용이 가장 많은 도시는 홍콩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은 작년 11위에 비해 3계단 떨어진 14위로 조사됐다.

머서는 주택, 교통, 식품, 의류, 생활용품, 엔터테인먼트 등 200개 품목의 가격을 비교했으며, 순위는 227위까지 발표했다. 머서는 1년에 두 번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국제 인력 관리 컨설팅업체인 ECA인터내셔널이 지난달 발표한 '외국인이 살기에 가장 비싼 도시' 순위에서도 홍콩은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서울은 작년보다 두 계단 내려간 10위를 기록했다.

ECA인터내셔널은 120개국 207개 도시에 사는 외국인의 생활비를 비교했다. 조사 항목에는 주택 임차비, 교통비, 전기·가스·수도요금, 음식, 가정용품, 의류, 서비스, 외식비, 여가비, 술과 담배 등이 포함된다. ECA인터내셔널은 2005년부터 매년 생활비 순위를 발표해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자매회사인 경제분석 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작년 12월 발표한 순위에서 홍콩과 서울은 각각 5위, 12위를 차지했다.

EIU는 173개 도시에서 200개 이상의 일상용품과 서비스 가격을 비교했다. EIU는 30년 넘게 각 도시의 물가를 조사해왔으며, 글로벌 연구팀은 매년 3월과 9월에 데이터를 수집한다.

세 기관의 조사 결과는 구체적인 순위는 차이나지만 홍콩 생활비가 서울을 앞서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sungje@yna.co.kr

swpress14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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