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무함마드 '카슈끄지 암살 책임 공방'에도.. 원유 증산 합의한 듯
악수 대신 주먹 인사.. "사우디 왕따 시대 끝냈다"
사우디 원유 증산 약속한 듯.. 미국 "몇 주 내 조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두고 책임 공방을 벌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암살 배후로 무함마드 왕세자를 직접 지목했고,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양측 간 날선 신경전에도 원유 증산 관련 협의에선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CNN방송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사우디를 방문 중인 바이든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무함마드 왕세자와 회담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살인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직설적이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했다”며 “나는 사건 당시 어떻게 생각했는지, 지금 어떻게 생각하는지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초반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카슈끄지 암살 책임을 물었고, 무함마드 왕세자는 “암살 사건에 개인적 책임이 없으며 책임져야 할 이들에 대해선 이미 조치를 취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이 인권 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모순된다는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며 “나는 항상 우리의 가치를 옹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사우디 왕실을 비판해 온 카슈끄지는 2018년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사우디 요원들에 의해 살해됐다. 미국 정보 당국은 암살 배후로 무함마드 왕세자를 지목했고, 바이든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사우디를 국제사회에서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면서 미국과 사우디 사이는 냉랭해졌다.
그러나 올해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하며 경제적 타격이 커지자 바이든 대통령은 원유 증산을 요청하기 위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로 날아갔다. 인권 문제를 외면한다는 비판에 “국익을 위한 방문”이라고 반박하며 결국 무함마드 왕세자와 마주앉았다.
이날 사우디 제다에 도착해 알 살람 왕궁으로 향한 바이든 대통령은 차량에서 내린 뒤 마중 나온 무함마드 왕세자와 악수 대신 ‘주먹 인사’를 나눴다. 로이터통신은 “양국 관계 재설정에 본질적인 의미를 규정하는 장면”이라고 했고, 블룸버그통신은 “사우디 왕따 시대를 끝냈다”고 평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카슈끄지가 소속됐던 워싱턴포스트 프레드 라이언 발행인은 성명을 내고 “주먹 인사는 부끄러운 일”이라며 “무함마드 왕세자가 원했던 ‘부당한 구원’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애덤 쉬프 민주당 하원의원도 “석유가 풍부한 독재자들이 미국의 중동 외교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앞서 백악관은 코로나19 재유행을 이유로 바이든 대통령이 신체 접촉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와 만나더라도 악수를 하거나 친밀함을 표현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 방문 이전 이스라엘에선 정부 인사들과 악수를 하고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아 생존자들과 포옹까지 했으나, 무함마드 왕세자와는 거리를 뒀다.
회담 시작 직전 취재진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사우디가 여전히 왕따인지’ 물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답하지 않았다. 무함마드 왕세자도 “카슈끄지 유족에게 사과할 것이냐’는 질문에 미소만 지어 보였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비록 양국 정상이 카슈끄지 암살 문제를 두고 대립했으나, 사우디는 원유 증산을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사우디는 광범위한 녹색 에너지 이니셔티브에 협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한 “글로벌 석유 공급을 늘리기 위해 사우디가 몇 주 이내에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기대감도 내비쳤다.
이와 관련해 사우디 국영통신(SPA)은 미국과 사우디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에너지 시장과 관련해 장ㆍ단기적 협의를 정례화하고, 기후ㆍ에너지 전환 문제에서도 전략적 파트너로서 협력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미국은 원유 시장의 지속가능한 성장 노력을 지원하겠다는 사우디의 약속을 환영했다고 사우디 언론은 전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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