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아빠가 왜 죽었는지는 알아야죠"
●도박 빚에 월북? 살인범도 월북 안 해
●‘월북 프레임’으로 산산조각 난 유족 삶
●엄연히 피해자 있는데 색깔론이라니…
●政爭 원치 않아…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행으로 봐주길”
●아이들 위해서라도 진실 밝힐 것
가족은 더는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아들과 딸은 아버지를, 아내는 남편을 잃었다. 어업지도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서해에서 북한군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북한군은 시신을 불태웠다. 유해조차 찾을 수 없다. 2020년 9월 22일 일이다.
고인의 이름은 이대준이다. 사망 당시 47세. 이름 대신 '서해 피살 공무원'으로 더 많이 언급된다. 남은 '가족'도 '유족'으로 불리게 됐다. 2020년 9월 24일과 29일 국방부와 해양경찰청은 잇달아 "고인이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2억7000만 원가량의 도박 빚이 있었다는 게 이유다. 유족에겐 '월북자 가족'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월북 진위를 둘러싼 논쟁이 유족의 삶을 난도질했다. 고인이 직장 동료들에게도 수천만 원의 빚을 졌다거나, 사망하기 4개월 전 이혼했다는 등 사생활이 까발려졌다.
1년 9개월이 지난 올해 6월 16일 정부는 "고인이 월북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발표하며 기존 견해를 뒤바꿨다. 유족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상흔은 지워지지 않는다. 스무 살 아들은 직업군인이 되려던 꿈을 잃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독서실에서 홀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5월까지 아빠가 뉴질랜드에서 일하는 줄 알던 열 살 딸은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내 권영미(43) 씨는 사람과 접촉을 꺼려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집에서 프리랜서로 간간이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정도다.
7월 6일 경남 양산시 권씨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권씨는 "남편이 월북 했을 리 없다. 가족이 가장 잘 안다"며 그간의 소회를 털어놨다. 1년 9개월의 시간이 마음에 굳은살을 만든 건지 어조는 내내 담담했다. 딱 한순간만은 예외였다. 자녀들에 대해 말할 땐 가슴이 아리는 듯 눈물을 쏟아냈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을 찾겠다"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한 가정의 불행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충분히 갚을 수 있는 빚인데 월북이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마음고생한 걸 생각하면 참 억울하기도 하고…."
‘월북이 아니다'는 아니어서 아쉬울 듯해요.
"북한 해역에서 발생한 일이라 실체를 밝히기란 솔직히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전 정부는 내내 '자진 월북'이라고 발표했어요. 자진 월북은 스스로 월북 의사를 표현해야 하는데, 월북을 하겠다는 고인의 육성(肉聲)이 없어요. 가족으로서 남편이 월북을 시도한 건 아니라고 확신해요."
근거가 있나요.
"월북은 갑자기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조 증상이 있어야죠. 그런 게 하나도 없었어요. 또 남편의 직장 동료들도 한결같이 월북이 아니라고 진술했고요. 전 정부는 이를 모두 숨겼어요. 그래서 저희(유족)는 정보 공개 청구까지 해야 했고, 그들은 항소까지 해가며 끝까지 감추려 했죠. 저희로서는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지난해 7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해경이 고(故) 이대준 씨의 채무·도박 등 사생활 정보를 공개한 것과 관련해 이씨의 인격권과 명예를 침해한 행위라며 발표 책임자를 경고할 것을 권고했다.
고인의 사망에 관한 의혹을 밝히는 과정에서 채무·도박 사실 등이 밝혀져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불필요한 것들이 의도적으로 언론에 뿌려졌다고 생각해요. 여론을 잠재우는 데 한몫한 것도 사실이라고 봐요. 자진 월북했다고 발표하려면 정확한 증거로 말해야 하는데, 개인사를 결부시키고…. 당시 아이들은 모두 미성년자였어요.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 대한 생각은 전혀 안 한 거죠. 경찰이 국민을 지켜야 하는데, 오히려 죽음으로 내모는 느낌이었어요."
당시 정부는 고인의 도박 빚을 자진 월북 근거로 들었는데요.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까.
"그럼요. 살인자도 월북 안 해요. 연쇄살인범도 안 한다고요. 죄가 밝혀지면 교도소로 간다고 생각하지, 벌을 피하려고 북한으로 가나요? 빚이 좀 있다고 월북하는 건 납득이 안 돼요. 빚이 수백억 원도 아니고 충분히 갚아나갈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충분히 갚아나갈 수 있는 수준이라면….
"회생 신청이 받아들여져 실제로 갚을 금액은 1억 원도 안 됐어요. 9600만 원이요. 남편의 일이 위험 직무라 연봉이 6800만 원으로 높은 편이었고, 저도 월 300만 원쯤 벌었죠. 둘이 합쳐 한 달에 700만~800만 원의 수입이 있었는데, 그 정도 빚이 월북할 정도의 문제가 될까요."
가정사도 밝혀졌는데요. 예컨대 고인이 사망하기 4개월 전 이혼했다거나….
"정말 상처 많이 받았어요. '왜 이혼했으면서 나서냐' '순직 보상금 노리는 거 아니냐' 같은 댓글이 달리는데…. 남의 가정사는 당사자 외엔 아무도 모르잖아요. 이혼한 이유는 남편이 빚이 있다 보니 빚쟁이가 제 직장이나 집에 찾아올까 봐, 저를 지키기 위해서였어요. 저희 아이들조차 모르던 사실인데, 언론에 보도되면서 알게 된 거예요. 보상금도 아이들이 미성년자라 제가 나서지 않아도 관리하게 돼 있고요. 이런 일을 겪으며 특히 아이들의 상처가 커요."
‘월북자 가족'이 겪은 삶
권씨는 "언론에 노출되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만나기 전 인터뷰를 두 번 거절했다. 첫 번째는 인터뷰를 제의했을 때, 두 번째는 인터뷰 하루 전 날 "취소하고 싶다"고 알려왔을 때다. "월북자 프레임으로 유족의 고통이 컸다"며 "2차 가해가 더 심해져 아이들이 다시 상처받을까 두렵다"고 했다.2차 가해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아이들한테 '네가 아빠 빚 갚아라' '넌 커서 아빠처럼 되지 마라' 등의 댓글이 달려요. 이런 걸 볼 때마다 '왜 도박을 했을까' 하고 죽은 남편을 원망했죠. 한편으론 불쌍했어요. 남편이 살아온 47년 인생 중 1년 실수한 건데, 모든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요. 남편은 참 가정적이었어요. 한 달에 6~7일밖에 집에 들어오지 못했지만 올 때면 매번 딸을 데리고 나가 놀아줬죠. 제가 허리가 안 좋으니까 항상 마사지해주고, 설거지도 다 하고."
월북자 가족으로 낙인찍히면서 받은 고통이 컸다고요.
"네. 그간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은 정말 많았어요. 주로 아주버님(고인의 형 이래진 씨)이 맡아주셨고 저는 나서지 않았어요. 아이들을 위해서였죠. 남편이 죽고 나서 저희 삶이 어땠는지는 정말…."
권씨의 눈시울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차분하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들이 독서실에 다니며 공부해요. 공무원 준비한다고요. 그런데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방향을 잃어서 갈 길이 없잖아요. 직업군인이 못될 것 같대요. 현 정부는 저희를 도와주곤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다시 배척될지 모른다고요. 딸은 얼마 전에야 아빠의 죽음을 알게 됐어요. 손가락질 당할까 봐 '밖에선 얘기하면 안 돼'라고 했더니 '왜 내가 거짓말해야 해. 왜 아빠가 없는데, 있는 것처럼 굴어야 해'라고 해요. 저는 지인과 연락을 다 끊고 집에만 있어요. 그 '월북자 프레임'이라는 것 때문에 이렇게…."
사람이 죽은 일에 정치 논리 개입시켜서야
고인 사건이 다시 정쟁화되고 있습니다.
"원하는 방향은 아니에요. 저흰 그저 진실을 알고 싶은 건데, 정치인들은 전 정부, 현 정부로 나눠서 정치 싸움을 하고 있잖아요. 다만 '색깔론'으로 규정하는 건 말이 안 돼요. 엄연히 피해자가 있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하고 있어요. 이게 왜 색깔론인가요. 또 사람이 죽었는데, 이게 별거 아닌 일일 수 있나요? 남편은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적대 국가의 군인에게 사살됐어요. 국가의 가장 큰 역할이 국민 보호잖아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 유족의 마음을 짓밟는 말이에요. 정치인이라면 국민의 편에 서서 싸워주는 게 맞는 것 아닌가요?"
정권이 바뀌며 정부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 아닐까요.
"정답이 없는 문제로 바라볼 수도 있죠. 한쪽에서는 이렇다, 한쪽에서는 저렇다…."
6월 21일 권씨는 조선일보와 전화 인터뷰하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세월호 사건 조사를 9번 진행하는 동안 남편 사건은 제대로 수사 한 번 안 했다"며 비판했다.
세월호 사건과 고인 사건에 대한 전 정부의 다른 태도를 비판했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됐기 때문인 것으로 봅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죠. 세월호 사건은 너무 안타깝죠. 진실을 밝혀야 된다는 건 충분히 공감하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9번 수사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에요. 그만큼의 마음과 열정으로 남편 사건을 한 번이라도 수사했느냐는 거죠."
6월 17일 권씨를 비롯한 유족은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향후 법적 대응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유족 측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고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 정권 인사를 고발하면 부담이 더 커질 텐데요.
"솔직히 전 대통령을 고발하고 싶진 않아요. 그분이 개입했다는 증거도 없고요. 대통령 기록물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대통령 기록물을 지정한 문 전 대통령을 고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대통령 기록물에 진실이 담겼다고 생각하나요.
"아닐 수도 있죠. 구두로 사안이 전달됐거나 어쩌면 이미 폐기됐을 수도 있고요. 그래도 유족으로선 확인할 수밖에 없어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까.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어요. 남편은 끔찍하게 죽었고, 시신조차 찾을 수 없게 됐는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고인은 어쩌다 사망했을까요.
"저로서는 실족사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구명조끼를 입었으니 극단적 선택일 리도 없고. 바다 위에서, 배에서 일하는 사람에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순식간에 물살에 휩쓸려 버릴 수 있죠. 살려달라고 외치기도 어려웠을 테고 가능했다 해도 들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고사'라면 이토록 정쟁화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제 남편이 자진 월북했는지, 아닌지 묻는 여론조사도 나왔더라고요. 반반 정도던데, 그조차 상처로 다가와요. 정치인과 각 지지자들에 따라 정치적 이슈로 번지고 만 거잖아요. 6월 17일 기자회견 때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섰어요. 이젠 저희 가족이 당당히 세상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다시 숨고 있어요. 옳고 그름조차 이젠 불분명해지고 있는 듯해요. 본질만 보면 되는데…. 한 가정이 적대국 군인에 의해 살해됐고, 시신이 태워졌고, 유족에겐 월북자 가족이라는 오명이 씌워진 것. 이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거든요.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불행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남편처럼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에겐 더 그렇고요. 인명 피해 사건에 관해선 정치적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았으면 해요. 세월호 사건도 그랬고, 천안함 사건도 그랬잖아요."
진상이 밝혀진다 해도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지금 가장 원하는 건 진실이에요. 하지만…. 솔직히 진실과 마주하기 두려워요. 누군가에 대한 처벌이 필히 동반될 테니까요. 아마 전 정권의 간부들이겠죠. 아이들이 아직 어리잖아요. 살아가는 과정에서 보복이 있지는 않을까,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같은 상처가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돼요. 그래도 진실을 밝혀야 해요"
어째서입니까.
"결국 아이들을 위해서죠. 아버지가 어떻게, 왜 죽었는지는 알 수 있게 해야죠. 사람이 죽은 일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 없지 않겠어요."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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