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이 된 이준석과 흔들리는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기세를 올리던 정부·여당이 표류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30% 초반까지 떨어졌다. 반면 부정 평가는 최고 60%까지 치솟으며 긍정과 부정 평가가 뒤집어지는 이른바 ‘데드크로스’가 나타났다. 여당 지지율 역시 야금야금 하락하며 더불어민주당과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 7월 4일부터 5일간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2525명을 상대로 정당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민주당 지지율(41.8%)이 국민의힘 지지율(40.9%)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0%포인트)
지방선거 승리를 기점으로 정부·여당의 시대가 열릴 것 같던 상황은 고작 한 달여 만에 변곡점을 맞았다. 이들의 지지율 하락은 모두 ‘내부 요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미묘한 차이도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자신의 발언, 인사, 경제 등 ‘상황적’ 문제에서 비롯됐다. 대통령 스스로 정제된 발언과 정책적 대안을 찾는다면 추세가 반전될 여지가 있다.
반면 국민의힘의 지지율 하락은 권력 투쟁이라는 ‘구조적’ 문제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를 둘러싼 ‘성비위’ 논란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 7월 8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이 대표에 대한 ‘6개월 당원권 정지’ 징계를 결정했다. 문제는 그 사유다. 사안의 본질인 이 대표의 성상납 의혹이 아닌 “당원으로서 예의를 지키고 자리에 맞게 행동해야 하며 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해서는 아니된다”는 당 윤리부칙 제4조 1항을 징계 근거로 밝혔다. 이는 수사결과에 따라 징계의 당위성이 흔들릴 수 있는 부차적 사안이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쪽에서 이번 징계가 ‘찍어내기’ 아니냐는 반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징계 불복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권력 구도는 이 대표를 배제한 채 빠르게 재편됐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대행까지 맡으며 ‘원톱’이 됐다. 차기 당권을 두고 경쟁할 인물들 역시 움직이고 있다.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지낸 바 있는 김기현 의원과 대선 직전 합류한 안철수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행보를 견제하는 세력도 등장했다. 5선 중진인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권 원내대표의 당대표 직무대행을 두고 ‘지나친 권력 쏠림’이라고 비판했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라 불리는 인사들의 향후 움직임도 변수다. 이들은 윤 대통령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활짝’ 열릴 것 같던 국민의힘 시대는 당내 갈등으로 급변했다. 이재명 의원의 당대표 출마 문제로 혼란스러운 민주당과 지지율까지 키 맞추기를 하는 모양새다. 보수의 ‘미래’로 등장한 젊은 정치인이 자신의 행보 문제로 ‘계륵’이 된 상황은 한국 정치의 ‘후진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찍어내기인가, 정당한 징계인가
이 대표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한 중소기업 대표로부터 대전 유성구 일대에서 20여차례 성상납을 포함한 접대를 받았느냐’다. 성상납 대가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의 해당 기업 방문 추진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된다. 이 대표는 일관되게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이 대표가 성상납을 포함한 접대를 받았느냐, 아니냐’를 징계 사안으로 다루지 않았다. 의혹이 불거진 뒤 이 대표가 성상납 의혹 제보자와 접촉해 증거를 없애라고 지시했고,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이 ‘7억원 투자각서’를 써주고 증거인멸을 시도했느냐만 쟁점이 됐다. 결과적으로 윤리위가 징계 결정을 내리면서 성상납 증거인멸 시도는 이 대표가 지시했거나, 적어도 알고 있었던 것이 됐다.
징계대로라면 윤리위는 성상납 역시 발생한 사건으로 보았다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만약 성상납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왜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인지’, ‘해당 사안을 증거인멸로 보는 근거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윤리위는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양희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장은 “이 대표 성상납 의혹의 진위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면서도 “그간 이준석 당원의 당에 대한 기여와 공로 등을 참작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징계가 몰고 올 파장과 논란을 피하려다 보니, 논리가 빈약해지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발생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증거인멸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로 반발했다. 지난 7월 6일에는 “윤핵관이라 지칭되는 분들은 본인들 뜻대로 하고 싶은 게 많아 당대표를 흔들었다”며 “윤리위를 앞두고 가장 신난 분들이 윤핵관”이라며 배후설에 불을 지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윤핵관에 대한 이 대표의 지적이 완전히 근거 없는 의심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며 “당대표를 징계하는 사안을 두고 대통령이나 당 핵심 관계자들이 사전 조율이나 검토가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징계 수위 역시 당에 미칠 영향 등을 최소화하는 선을 고려한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6개월 징계 결정은 이 대표도 당내 세력도 반발하기 어려운 애매한 지점에 놓인 한 수가 됐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징계가 끝나도 대표 임기가 남아 있다. 이 대표에 반대하는 세력은 경찰 수사결과가 ‘무혐의’로 나올 경우 역공을 받을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수위 조절이 필요했고, 그 결과가 6개월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권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징계 결정을 수용해야 한다”면서도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당대표를 새로 뽑는 방향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당헌당규상 ‘궐위’가 아닌 ‘사고’는 전당대회 개최 요건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결국 어느 쪽도 완전히 패배하지 않은 상태에서 6개월이라는 시간이 던져진 셈이다.
■‘계륵’인가, ‘보수의 미래’인가
상황에 대한 고려는 이 대표의 태도에도 변화를 만들었다. 윤리위가 징계를 결정한 직후 이 대표는 “당대표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며 “(징계에 대한) 가처분이라든지 재심이라든지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이후로 일주일여를 특별한 활동없이 잠행했다. 지난 7월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당원 가입하기 좋은 월요일이다”는 메시지만 남겼다. 7월 13일에야 이 대표가 광주를 방문한 사실이 그의 SNS를 통해 알려졌다. 이 대표는 “원래 7월에는 광주에 했던 약속들을 풀어내려고 차근차근 준비 중이었는데 광주시민들께 죄송하다”며 “조금 늦어질 뿐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결국, 윤리위 징계를 수용하는 수순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나온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이 대표의 고민은 ‘이준석답게’ 윤리위 결정을 공격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일 것이냐, 본인에게 더욱 불리한 상황을 막기 위해 타협할 것이냐에 있을 것”이라며 “경찰 수사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이 도움이 될지 따져보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원 가입을 독려한다는 것은 결국 징계를 적당히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다시 당권에 도전하려는 행보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반발이 잠잠해진 건 여론조사결과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 대표 징계 이후 발표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거의 변동이 없다”며 “이 대표를 징계하면 국민의힘이 2030세대로부터 외면받으리라는 우려가 틀린 쪽으로 증명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 역시 이러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대표 징계 직후 진행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는 7월 13일 기준으로 모두 5개다. 이중 4개가 이 대표 징계에 대한 의견을 직접 물었다. 모두 징계 찬성이 반대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TBS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7월 8일부터 9일까지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이준석 대표 징계가 ‘적절하다’, ‘미흡하다’는 의견이 전체의 60.7%에 달했다. 31%만이 ‘과도하다’고 답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해당 여론조사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2030세대에서조차 징계가 ‘적절하다’, ‘미흡하다’는 의견이 ‘과도하다’를 앞섰다는 점이다. 신 교수는 “공정에 민감한 2030세대가 이 대표 징계가 ‘적절하다’고 보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며 “결국 2030세대의 이준석 지지는 같은 세대가 거대 정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지지일 뿐 이준석에 대한 환호는 아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 돌아오는 것이 과연 당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 교수 역시 “결국 국민 사이에는 ‘이준석 피로감’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자신을 비판하면 참지 않고 공격하는 것이나 갈등을 유발하는 화법은 젊은 남성층 일부를 제외하면 선호되지 않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여론조사결과를 두고 상반된 의견도 나온다. 주로 2030 남성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중심이다.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30대 A씨는 이 대표 징계를 두고 “2030세대의 표가 필요할 때는 이용하더니 이제 망신을 줘서 쫓아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A씨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여론조사결과를 분석한 내용을 보여주며 징계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여론조사는 쿠키뉴스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7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진행한 여론조사다.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17명을 조사한 결과로 해당 여론조사도 이 대표에 대한 징계를 ‘잘했다’는 응답이 47.5%, ‘잘못했다’는 응답이 42.5%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그런데 A씨가 주목하는 것은 전체가 아닌 지역별·연령별 여론조사결과다. 모두 8곳으로 권역을 나눈 지역별 조사에서 대구·경북과 호남권에서만 이 대표 징계가 ‘잘못했다’는 응답이 더 높았다. 또 전 세대 중 30대 응답자만 징계가 ‘잘못됐다’는 응답이 48.4%로 ‘잘했다’는 응답(41.6%)을 앞섰다.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사람 중 48.5%가 이 대표 징계를 ‘잘했다’고 지지한 만큼, 호남에서 역선택이 발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A씨는 “이 대표는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지지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호남에 대한 확장성을 가진 유일한 국민의힘 정치인”이라며 “국민의힘은 지지기반이 약한 호남, 2030세대에 대한 강점을 가진 이 대표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상납 의혹에서 시작된 사태는 정치인 이준석에 대한 가치 평가 국면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정치혁신의 실상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정치혁신을 내세운 젊은 당대표가 성상납 의혹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정치혐오를 키운다”며 “적당히 타협점을 찾는다고 해도 이 대표가 청년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웠다는 점은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징계 수용이냐, 거부냐
징계에 대한 수용도, 특별한 대응도 없는 상황 속에 이 대표는 ‘정중동’의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 14일에는 SNS에 당원들과의 만남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이후 “밤사이 4000명 정도 만남신청을 해주셨다”며 “20인이상 신청해주신 기초자치단체부터 먼저 찾아 뵙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당내 민심확인 및 지지세 확보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징계에 반발하더라도 ‘당원의 뜻’, 징계를 수용하더라도 ‘당원의 뜻’으로 명분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 대표의 징계기간인 6개월을 채우기 전에 변곡점이 생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 교수는 “이미 경찰 수사가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결과 발표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현재는 이 대표와 당내 반대세력이 전쟁을 앞두고 임시 휴전을 한 상태 정도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만약 경찰 수사결과가 무혐의로 나온다면 그때가 당이 최고로 흔들리는 시점이 될 것”이라며 “역공하려는 이 대표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내 세력 간 생존을 건 치열한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이 대표가 복귀하면 더욱 시끄러워질 것이 분명한 만큼 차라리 빨리 끊어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성상납 의혹에 대해 분명히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당 윤리위는 성상납 의혹의 증거인멸 시도를 인정하고 징계를 내렸다. 만약 이 대표가 윤리위 징계를 수용한다면 무엇에 대한 ‘인정’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자신을 둘러싼 성상납 의혹마저 당의 결정, 당원의 뜻에 따른다고 하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변했다. 이는 그동안 보여준 이 대표의 행보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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