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하여 네덜란드 이끈 '침묵공'

김형민 2022. 7. 1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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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펠리페 2세는 신교도들을 극렬 탄압했다. 네덜란드인들은 스페인에 맞서 '레이던 공방전'을 벌인다. 항복을 고려하는 네덜란드 시민들에게 '침묵공' 빌럼은 외친다. "석 달만 버텨주시오."
네덜란드인들은 흰색, 빨간색 등이었던 당근을 교배해 우리 눈에 익은 오렌지색 당근을 만들어내 퍼뜨렸다. 네덜란드 스포츠 선수와 응원단이 ‘오렌지 군단’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유다.ⓒ연합뉴스

언젠가 이 지면에서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 있지? 매우 성실한 왕이었지만 독실하다 못해 ‘독랄했던’ 가톨릭 신앙으로 신교도들을 탄압하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 화수분 같던 신대륙의 부(富)조차 탈탈 털어먹은 왕. 그래서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면서도 우울한 퇴장의 길을 연 왕. 넘쳐나는 펠리페 2세의 전쟁 이력 가운데에는 ‘네덜란드 독립전쟁’(1568~1648)을 빼놓을 수 없어.

일찍이 상공업이 크게 발달해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높은 수준의 자치권과 정치적·종교적 자유를 누렸던 네덜란드 지역은 스페인에 놓칠 수 없는 알짜배기 땅이었어. 하지만 펠리페 2세의 극렬한 신교도 탄압과 강력한 통제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지. 펠리페 2세의 아버지 카를 5세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신교도들을 못살게 굴긴 했지만 그는 플랑드르 지방의 겐트 출신으로 네덜란드 말을 할 줄 알았고, 그 문화를 이해했기에 네덜란드 사람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었어. 그러나 펠리페 2세는 스페인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 네덜란드 말을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그에게 네덜란드는 그저 황금알 낳는 거위일 뿐이었고 황금알을 더 낳게 하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돼 있었지. 하물며 그가 악마처럼 미워하는 신교도들이 네덜란드에서 세력을 키워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어. 네덜란드 17주 사람들은 고개를 저을밖에. “가톨릭이든 칼뱅파든 루터파든 도시의 법만 지킨다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네덜란드 귀족들은 펠리페 2세에게 네덜란드 주민들의 권리 존중을 호소했지만 그의 주걱턱(합스부르크 왕가의 근친혼이 낳은 유전적 특성)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점차 네덜란드에는 반란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지. 그 지도자로 부상하게 되는 사람 하나가 오라녜(Oranje) 공 빌럼이었어.

빌럼은 독일 한 지역 영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부 프랑스에 있던 오랑주(Orange) 공국을 다스리던 삼촌으로부터 그 영지를 이어받은 이후 오라녜 공으로 불리게 됐지. 빌럼의 부모는 신교도였지만 종교를 까탈스럽게 따지는 편이 아니었다. 빌럼은 펠리페 2세의 아버지 카를 5세의 궁정에 들어가 지근거리에서 그를 보좌하기도 했어. 노쇠한 카를 5세가 펠리페 2세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노라는 연설을 할 때 그를 부축한 것이 바로 오라녜 공 빌럼이었다. 그는 펠리페 2세가 신뢰할 만한 이들을 조직해 만든 ‘황금 양털 기사단’의 일원이기도 했지. “황금 양털 기사단에 임명된 50여 명의 기사는 서로 형제애를 맺고 충성을 맹세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교도 배제를 원칙으로 한 가톨릭 기사단임에도 빌럼의 기사단 가입에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역사에 길이 남을 숨겨진 역사적 사건들〉 조제프 커밍스 지음).”

빌럼의 처신이 그만큼 신중했음을 말해주는 일화일 거야. 빌럼의 별명은 ‘침묵공(De Zwijger)’이었어. 원래 과묵하기도 했지만 당시 사람들이 침을 튀기다 못해 말싸움이 아닌 칼싸움을 벌이기 일쑤였던 종교 논쟁에서 입을 다물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해. 빌럼은 1559년 네덜란드 지역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임명되는데 그는 펠리페 2세의 충신보다는 네덜란드 주민들의 정치적·종교적 자유의 대변자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신민은 폭압적 통치에 저항할 수 있다”

펠리페 2세가 침묵공 빌럼을 꾸짖는 장면을 그린 19세기 그림.ⓒ휴머니스트 제공

19세기 네덜란드 화가 코르넬리스 크루서만은 침묵공 빌럼을 꾸짖는 펠리페 2세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있어. 그림 속에서 펠리페 2세는 한 손으로는 빌럼의 팔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삿대질을 하고 있어. 유럽 최강, 아니 세계 최강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나라의 왕이 “너 때문이야! 네가 문제야!” 이를 득득 가는 상황에서도 빌럼의 표정은 ‘침묵공’ 그대로다. 그는 굳게 입을 닫고 펠리페 2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낸다. 마치 그가 1581년 선언한 ‘철회령’에서처럼 “군주가 신민을 어진 마음으로 통치하지 않는다면, 신민들은 군주의 폭압적 통치에 저항할 수 있다(〈조선일보〉 ‘권력과 얼굴’)”라고 되뇌는 듯 말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오라녜 공 빌럼은 카를 5세와 펠리페 2세 모두의 총신이었고, 열렬한 신교도도 아니었던 만큼 펠리페 2세의 비위를 맞추며 한세상 잘살 수도 있는 사람이었어. 하지만 펠리페 2세가 이단심판관을 파견하여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이 조처의 완화를 요청하던 ‘저지대(땅이 바다보다 낮은 곳, 네덜란드·벨기에 지역을 통칭하는 말)’ 가톨릭 귀족들까지 죽여버리기에 이르자 저항에 나서게 된다. 독립전쟁 과정에서 그는 몇 번이나 당대의 강대국 스페인 군대에 절망적인 패배를 당했고 네덜란드 17주 가운데 가톨릭 세력이 강했던 10개 주(오늘날의 벨기에 지역)는 저항 대열에서 떨어져 나갔으며, 장남은 스페인에 납치돼 영영 만나지 못하는 개인적 비극을 겪었지. 그러나 그는 네덜란드 사람들과 함께 포기하지 않는다. 1579년 네덜란드 북부 7개 주가 스페인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며 선언한 그들의 ‘자유’를 위해서 말이야. “누구나 종교의 자유를 가지며 어느 누구도 종교에 의해 심문을 받거나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치열하게 저항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항전이 벌어졌지만 레이던 공방전은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상징과도 같은 전투라고 할 수 있어. 1574년 스페인 군은 레이던을 포위하고 맹공을 퍼붓는다. 레이던 시민들은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들의 결의. “우리의 왼손을 잘라먹으면서 오른손으로는 우리의 부녀자와 자유,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외적의 압제로부터 지켜낼 것이다(〈사이언스 타임즈〉 ‘기후와 전쟁’).”

너무나 압도적인 기세 앞에 레이던 시민들은 마음이 약해져 항복을 고려하기도 했다. 이때 오라녜 공 빌럼의 전갈이 날아들었지. “석 달만 버텨주시오.” 시민들은 다시 용기를 되찾고 무려 5개월 동안 스페인의 포위를 견뎌냈어. 도시의 나뭇잎까지 다 먹어치울 만큼의 굶주림과도 싸워야 했던 네덜란드인들은 마침내 목숨을 건 반격작전을 시도한다. ‘저지대’의 생명선이라 할 제방을 파괴하고 도시를 물바다로 만든 뒤 함대를 투입한 거야. 얕은 수심에도 운용 가능한 평저선들이 바다로부터 몰려들었고 마침내 레이던을 해방시킨다. 이때 네덜란드 함대는 굶주린 시민들에게 빵과 청어를 나눠주었다. “오늘날에도 이날의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일(10월3일)에는 시청에서 흰 빵과 청어를 무료로 나누어주는 관행이 있다(〈조선일보〉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레이던의 승리는 감격적이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못 되었고, 그 이후 승기를 잡은 것도 아니었어. 오라녜 공 빌럼 역시 가톨릭교도에게 암살당한다. 그러나 네덜란드인들은 오늘날 우리가 공기처럼 자유롭게 누리는 ‘종교의 자유’를 비롯한 시민의 권리를 위해 물러서지 않았지. 네덜란드인들은 흰색, 빨간색 등이었던 당근을 교배해 우리 눈에 익은 오렌지색 당근을 만들어내 퍼뜨렸다고 해. 오라녜 공을 기리기 위해서였지. 오늘날의 축구 강국 네덜란드 선수들이 ‘오렌지 군단’이라 불리는 이유도 마찬가지야. 그들에게 오라녜 공 빌럼은 곧 자유와 독립의 상징이었고, 지배자가 아닌 대표자였으며, 군주가 아닌 동지였다. 그렇게 빌럼과 네덜란드인들은 세계사의 거대한 진전을 이뤄낼 시민혁명의 서막을 함께 열어젖힌 거란다. 미국 독립보다, 프랑스 대혁명보다 200년이나 앞서서 말이다. 오늘날 네덜란드 국가의 가사는 말 그대로 빌럼의 고백이자 네덜란드인들의 다짐이야. “나사우 가문의 빌럼, 나는 네덜란드인의 혈통이다. 조국에 충성을 다함을 죽을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오라녜 공으로서 나는 자유롭고 두려움이 없다.”

김형민(SBS Biz P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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