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하이힐' 신은 남자..반응은 "호모, 저리가" [인생취재]
서울역·광화문 등 인파 속 하이힐 신자..시민 60% "지지한다"
전문가 "우리 사회 편견·차별 사라지면 성별 구분 더 모호해질 것"
“호모OO야. 저 게이OO! 저리가!”
지난 6일 오전 서울역 광장 앞 ‘빨간 하이힐’을 신은 남성을 마주한 한 50대 남성은 대뜸 소리를 지르며 이같이 말했다. 이유를 물으러 다가가자 윽박지르고 분노를 표출해 결국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자리를 옮겨 역사 내부에서 1시간가량 더 머물자 긍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박유진(24·여)씨는 “솔직히 나도 저렇게 높은 구두를 못 신는데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뭘 입든 자유인데 어떠냐. 상관없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생각을 충분히 듣기 위해 광화문, 인사동, 명동, 을지로 등 인파가 몰리는 장소에서 이달 5일부터 닷새간 총 55명의 시민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결과 찬성 60%(33명), 반대 23.6%(13명)로 응답자 절반 이상이 “지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별 생각 없다”, “그런가 보다 했다” 등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이들의 비율은 16.4%(9명)였다.
'젠더리스(Genderless)’ 패션에 대한 세대·성별 유의미한 반응 차이는 없었다. 광화문 앞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렌스젠더)도 인정을 받는 시대인데 패션이 무슨 문제인가. 입고 싶은 대로 입어라”고 격려한 반면 이모(21·남)씨는 “이상하다. 현실에서 보면 피할 것 같다” 등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젠더리스 패션이란 생리적, 정신적 성별의 경계를 허문 옷차림을 말한다.
하이힐을 신은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 명품브랜드 ‘셀린느(CELINE)’ 핸드백을 들고 있는 박보검, 넥타이를 맨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젠더리스 패션을 선보인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발 사이즈 280㎜인 기자 역시 뷔의 패션에서 영감을 받아 하이힐을 신었다. 유명인 사이에서 젠더리스 패션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일반 시민들은 이 같은 패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 부끄러움을 감수한 것이다.
취재 결과 일반인들에게 아직은 이 같은 트렌드가 낯선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시민들 중 1020세대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젠더리스 패션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다행히 인터뷰에 응한 시민 절반 이상이 젠더리스 패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패피(패션피플)’가 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시선도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하이힐을 신은 기자를 행인들이 쳐다보거나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와 질문을 하는 등 뜨거운 시선을 견뎌야만 했다. 이어지는 갑작스러운 욕설, 비방 등의 반응도 당황스러웠다.
하이힐을 신은 기자는 “처음 욕을 들었을 때는 놀랐지만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 괜찮았다”며 “평소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편인데 시선을 견디는 훈련을 한 것 같아 만족했다. 이후에도 자존감이 떨어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 한번 더 신어보고 싶다”고 전했다.
주위 시선을 신경 안 쓴다고 해도 하이힐을 신고자 하는 남성들이라면 또 다른 난관을 넘어야 한다.
젠더리스 패션 체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자 발에 맞는 하이힐을 찾기 어려웠다. 발볼이 커서 285㎜ 하이힐을 신어야 했는데 기성품 중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구두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결국 굽 높이 11㎝, 빨간색 하이힐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단 한번도 신어본 적 없는 굽 높은 구두에 발은 곧 상처투성이가 됐다.
그럼에도 젠더리스 패션에 관심을 보이는 소비자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 관련 시장이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민선 건국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조교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젠더리스 패션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최근 발표된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보면 얼굴 가리고 봤을 때 여성복인지 남성복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착장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젠더리스 패션에 대한 관심이 현재 매우 높아 관련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라 예상한다”며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편견, 차별 등이 사라진다면 디자인 요소나 특성에 있어 성별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고 젠더리스 패션이라는 단어조차 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윤진현 인턴기자 yjh@sedaily.com김지선 인턴기자 kjisun98@sedaily.com김형민 인턴기자 sulu4321@sedaily.com마주영 인턴기자 majuyeong@sedaily.com김후인 인턴기자 huin_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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