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이식 후 딸 얻은 김지은씨..국내 심장 이식인 중 두번째 출산

김성진 기자 2022. 7. 1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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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핀 꽃-장기기증]②심장 이식인의 다짐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편집자주] 장기기증자 유족들은 창작곡 '선물'에서 세상 떠난 기증자를 '꽃'이라 불렀다. 꽃이 지는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누군가는 뇌출혈을 겪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 이들이 남긴 선물에 누군가는 새 생명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 장기 기증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하루 평균 6.8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했다. 장기기증자 유족과 이식인에게 '장기기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었다.

김지은씨(34)는 2016년 7월11일, 자신의 생일 날 쓰러졌다. 이날 밤 9시쯤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은 시내에서 생일파티를 하자고 했다. "옷 좀 갈아입고 올게." 자연스럽게 말하던 중 갑자기 숨이 찼다. 눈앞이 하얘지더니 이윽고 바닥에 쓰러졌다. 친구들은 그를 차에 태워 부산백병원으로 향했다. 김씨는 차에서 몇번이고 구토했다.

처음 쓰러진 건 아니었다. 김씨가 태어날 때부터 심비대증이 있었다. 심장은 뛸 때 이완과 수축을 한다. 심장이 클수록 수축에 힘이 든다. 심장이 무리하면 호흡곤란, 심근경색, 협심증 등을 겪을 수 있다.

김씨는 중학생 때 처음 쓰러졌다. 어머니와 장을 보던 중 이유 없이 숨이 가빠졌다. 옆에 걷던 어머니를 붙잡고 쓰러졌다. 병원에 갔더니 '치료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세 번이나 같은 일을 겪었다.

김씨는 스물 한 살 때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새인가 한달 사이 몸무게가 6kg가량 늘었다. 길을 걷던 중 김씨는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변에 "숨이 차요"라고 했다.

병원에서 복부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폐에 물이 찬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런데 폐가 있을 자리에 심장이 보였다. 그 정도로 심장이 부어 있었다.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았고, 다른 장기들도 무리하고 있었다. 응급치료로 위기는 넘겼다. 하지만 그날 이후 김씨는 일년에 2~3번씩 쓰러졌다. 약이 늘었다. 혈압약, 이뇨제 등 적어도 10종류를 챙겨 먹었다.

김지은씨(당시 28)가 2016년 7월11일 생일날 쓰러진 후 부산백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쓰러진 다음날 병상에서 찍은 사진./사진제공=김지은씨.

생일날 또 쓰러질 때 김씨의 심장기능은 정상 수준의 8%였다. 약물치료를 10여년 받은 시점이었다. 웬만한 약에 내성이 생겼다. 약물에 알레르기도 생겼다. 어느 날 의사는 "약을 주사로 혈관에 직접 주입해도 거부반응이 오니 치료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심장이식 등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심장이식 대기자는 응급도 0부터 3까지 네 단계로 구분된다. 0단계면 이식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김씨는 0단계였다. 혈액형이 AB형이라 A형, B형, O형, AB형 장기를 모두 이식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식까지 8개월이 걸렸다. 대기자는 많고 장기기증자는 적었다.

고통스런 기간이었다. 거부반응 때문에 아파도 약은 먹어야 했다. 간병하는 어머니와 얘기하는 데도 숨이 찼다. 병상 옆 책상에 머리핀을 집으려 손 뻗는 것도 힘들었다. 김씨는 "휴대폰 문자를 보내려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고 했다.

매일 약물 주사를 맞으며 '오늘 밤은 어떻게 넘겨야 하나' 생각했다고 한다. 약 거부반응이 오면 눈 앞이 하얘지고 구역질했다. 초록빛 쓸개즙이 나올 때까지 구토했다. 환자복도 항상 땀에 젖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 응원에 버텼다고 한다. 아침마다 회진하는 교수는 "하루만 더 버텨보자" "이겨내줘서 고맙다"고 했다.

같은해 9월 기증자가 나왔다. 수술 중 사망한 여성이라고 들었다. 수술 당일 아침 면역억제 주사를 맞았다. 몸의 면역 기능이 이식받은 심장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어 멸균실로 옮겨졌다. 침상에 누워서 김씨는 '살 수 있을까' '이식이 잘 될까' 생각했다고 한다.

마취 상태에서 김씨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이식을 마치고 의료진은 긴박했다고 한다. 거부반응이 심했다. 김씨 몸에서 피를 다 빼낸 뒤 의료장비 에크모로 산소를 채워 넣은 후 몸에 다시 넣었다고 했다. 의료진은 가족에게 '김씨의 마지막을 준비해야겠다'고도 했다. 친척과 친구들이 다녀갔다고 했다.
심장 이식 후 얻은 딸...동요 상어가족을 좋아한다
김지은씨(34)과 남편, 딸 라율이./사진제공=김지은씨.
김씨는 이식 5일 뒤 깼다. 심장이 뜨거웠다. 근처 간호사에게 "심장이 너무 뜨겁다" "탈 것 같다"며 얼음물을 달라고 했다.

이렇게 뜨거운 것 빼고 김씨는 '평범한 심장'을 처음 느꼈다. 귀에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게 제일 신기했다. 평소였다면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뛰거나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그랬다. 심장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식을 받은 지 5년이 지난 2020년 9월, 김씨는 딸 라율이의 엄마가 됐다. 국내 심장 이식인으로는 두번째 출산이다. 어릴 때부터 '사랑하는 가족'을 이루는 게 김씨 꿈이었다고 한다.

임신과 출산 모두 쉽지는 않았다. 이식 후에도 면역억제제는 꾸준히 투약해야 한다. 억제제 중 '셀셉트'는 기형을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면역억제 효과가 가장 좋은 약 중 하나였다. 이 약을 임신 기간 먹지 않는 위험을 감수하고 라율이를 낳았다. 김씨는 "사랑을 줄 자녀를 그 정도로 갖고 싶었다"고 했다.

김지은씨(34)가 2020년 9월에 낳은 딸 라율이. 동요 '상어가족'과 '곰세마리'를 가장 좋아한다. 춤, 노래 못하는 게 없다고 한다./사진제공=김지은씨.

출산 후 2년째. 라율이는 춤, 노래 못하는 것 없이 크고 있다. 엄마 김씨를 보면 동요 책을 들고 와 불러달라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아기상어'와 '곰세마리'. 김씨와 함께 율동할 때 라율이는 세상 행복한 듯 미소 짓는다고 한다.

김씨는 이런 삶이 "일년에 한두번씩 쓰러질 때는 꿈도 못 꿨고 포기했던 삶"이라고 했다. '심장 이식이 어떤 의미가 있나' 묻자 김씨는 "제2의 삶, 새로운 삶을 준 것"이라며 "기증자 덕분에 꿈에 그리던 가족을 이룰 수 있었다. 가치 있는 삶을 선물해 준 기증자께 감사드린다. 숭고한 희생 생각해 베풀며 값진 인생을 살겠다"고 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장기기증을 기다리다가 사망한 환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하루 평균 사망자 수를 따지면 2017년 4.8명, 2018년 5.2명, 2019년 5.9명, 2020년 6.0명, 지난해 6.8명이었다. 장기기증이 대기자 만큼 늘지 않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고등학생 때 장기기증을 신청했다. 그는 "자신의 장기를 기증한다는 것은 용감한 일"이라며 "심장을 이식받고 새 삶을 선물받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 의미를 생각해보길 권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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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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