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계 노사갈등①]팬데믹의 청구서..의료 파업 현실화하나?
기사내용 요약
"코로나19 3년, 보건의료 노동자 소진 심각"…불만 표출 본격화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진행…"결렬시 8월25일 총파업 돌입"
임금 인상, 인력 확충, 근로여건 개선 등 요구…병원 측은 난색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도 보건의료계 핵심 요구로 부상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코로나19 팬데믹이 3년차에 접어들면서 인력 부족과 근무 여건 악화에 대한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노조는 지난해 총파업 돌입 직전 정부·사측과 극적 합의를 이뤄냈지만 1년이 지나도 합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다시 청구서를 꺼내들었다. 의료 노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악화된 근로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8월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코로나19 재유행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8월 총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현장에서 상당한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9·2노정합의를 이뤄내며 총파업을 철회했지만 인력 충원과 근로여건 개선, 공공의료 확충 등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와 사용자 측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일하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은 지난 2년간 소모품처럼 소모된 채 고통과 절망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소진을 버티다 못해 사직으로 탈출하려는 비극 같은 현실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 8만명의 조합원이 소속돼 있는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5월부터 지방의료원, 공공병원, 민간중소병원 등 77개 병원 사용자가 참여한 가운데 산별 중앙교섭을 진행 중이다. 올해 산별 교섭의 주요 요구는 ▲임금 총액 7.6% 인상 ▲최저임금 1만1141원 ▲코로나19 인력기준 준수, 불법의료 근절, 주5일제 전면 시행 ▲야간근무 제한, 대체 간호사 운영, 1인 근무 금지, 야간간호료와 휴일근무수당 지급, 상시지속업무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이다. 또 노조 소속 120여개 지부는 사용자 측과 개별 교섭을 진행 중이다.
보건의료노조는 8월3일 7차 교섭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8월9일 전 조직이 동시 쟁의조정신청을 하고 8월25일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순자 보건노조위원장은 "코로나19 시기 웬 파업이냐며 우려를 많이 하실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대응에 인력을 갈아넣는 방식으로 가서는 더이상 안된다. 보건의료인력, 공공의료인력 확충 없이 우리 사회가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노조와 병원 측은 지난 6일까지 5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입장은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국립중앙의료원 등 공공병원들은 공무원 임금인상률(1.4%)을 따르기 때문에 그 이상 임금을 올리기 어렵다는 점을 토로했다. 이에 따라 보건의료노조는 임금인상률을 산별 중앙교섭에서 다루지 않고 지부별로 다루기로 했다. 하지만 병원측은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로 경영 사정이 악화됐다며 인력 확충, 근로여건 개선, 수당 지급 등에도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은 "사용자측은 코로나19 상황에서 환자가 많이 줄어 경영이 어렵다는 점을 호소하면서 비용이 들어가는 내용들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 강하다"며 "우리가 볼 때는 병원별로 차이가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 지원과 손실보상도 많이 이뤄졌고 경영이 크게 어려운 곳은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코로나19 6차 대유행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의료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현장에서는 상당한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8월 총파업을 선언했다가 9·2노정 합의를 타결하고 파업을 철회했었다. 올해도 노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노조와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게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9·2노정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노동계의 불만이 큰 상황이고, 윤석열 정부 들어 바뀌고 있는 정책 기조에 노조가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어 노정 교섭도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현재 보건의료노조는 의료민영화 저지,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공의료 확대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어 새 정부에서는 노정 협상이 쉽게 타결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나 기획실장은 "6월부터 교섭을 시작해서 지금 중반 정도 가고 있는 상황이고 8월 초 정도 되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올 것 같다"며 "아직까지는 요구안을 전반적으로 한번 심의하고 있는 단계여서 상황을 예측하긴 어렵다"고 언급했다.
이어 "올해는 대정부 교섭·투쟁보다는 사업장별로 교섭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 지켜보려고 한다. 다만 정권이 바뀌고 의료민영화 쪽으로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 그런 정책이 가시화된다면 우리도 저지 투쟁에 나서겠다는 방침은 정해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를 위한 보건의료·노동계의 투쟁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의료연대본부와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28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4일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연대체인 '간호인력기준 법제화 시민행동'을 출범시켰다.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에 제한을 두는 '간호인력인권법(간호인력 인권 향상을 위한 법률)'은 지난해 국회 국민동의청원 10만명을 달성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아직 처리되지 않고 있다.
간호인력기준 법제화 시민행동은 코로나19 이후 소진된 간호사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고 있다며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김민정 운영위원은 "겉으로는 '코로나 영웅이다' '간호사들의 노고를 잘 알고 있고 처우 개선에 힘쓰겠다'고 하면서 '간호인력인권법의 취지가 간호법으로 달성될 수 있다'며 폐기될 뻔한 상황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며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통해 간호사가 담당할 수 있는 적정 환자 수를 법으로 정해야 병원에서의 근무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행동은 향후 전국 곳곳에서 선전전, 서명운동, 토론회 등을 열고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위한 적극적인 투쟁을 벌여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의료 현장의 인력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는 만큼 간호인력인권법은 올해 의료계 투쟁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ah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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