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m 마라톤도 뛰던 아인데.." 6명에게 새생명 주고 떠난 기석이
[편집자주] 장기기증자 유족들은 창작곡 '선물'에서 세상 떠난 기증자를 '꽃'이라 불렀다. 꽃이 지는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누군가는 뇌출혈을 겪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 이들이 남긴 선물에 누군가는 새 생명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 장기 기증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하루 평균 6.8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했다. 장기기증자 유족과 이식인에게 '장기기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었다.
2011년 11월29일 김태현씨 아들 김기석군(당시 16)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김씨는 '녀석이 공부를 무리해서 했나' 생각했다. 평소 몸이 약한 아들이라면 걱정했을 것이라고 한다. 50여일 전까지 경기도 파주에서 10km 마라톤을 뛰었던 기석이었다.
3일 뒤 오후 5시쯤이었다. 김씨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집에 있었다. 기석이가 전화를 했다. "아빠 지금 수업 마치고 학원에 가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요."
평소 엄살 한번 부리지 않던 아들이었다. 김씨는 아들에게 "택시 타고 바로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김씨도 재빨리 병원으로 향했다. 기석이는 응급실 8호 침대에 누워있었다. 옆에 담당 간호사가 있었다. 간호사는 'CT 촬영 오더를 했고, 촬영실에서 연락이 오면 검사할 예정'이라 했다. 한숨 돌렸다고 생각했다. 기석이는 "조금 괜찮아졌어요"라며 휴대전화로 친구들과 카톡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기석이가 "악" 비명을 질렀다.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구토를 했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CT 촬영을 해보니 뇌출혈이었다. 상태가 심각했다. 기석이는 CT실에서도 토하며 발작을 일으켰다고 했다. 주치의는 기석이 뇌동맥이 부푼 것을 보더니 피 나는 혈관을 막는 코일 색전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해당 수술은 병원 시스템상 3일 뒤 정규스케쥴로 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지인이 신경외과 과장으로 있는 병원으로 전원(轉院)하기로 했다.
병원이 부른 구급차는 30여분 지나서야 도착했다. 12월이었다. 병원 밖에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응급차에 오르기 전 기석이는 추운지 이를 부딪치며 떨었다. 다른 병원에 도착했을 때 기석이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응급실 의사는 기석이 눈꺼풀을 열고 빛을 비췄다. 기석이의 눈은 움직이지 않았다.
기석이가 쓰러지기 며칠 전 김씨는 방 청소를 하다가 책장에 십자수를 찾았다. 기석이가 쓰러진 후 다시보니 십자수 옆에는 열쇠고리 재료가 있었다. 기석이가 어머니 생일을 며칠 앞두고 만들던 자동차 열쇠고리였다.
기석이가 수술받는 동안 김씨는 '기석이가 이대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생각했다고 한다. 김씨 머리에 불현듯 '장기기증'이 스쳤다고 한다. 김씨는 "워낙 착하고 남에게 베풀기 좋아했던 아들"이라며 "기석이도 원하는 일일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한 대형병원의 뇌사판정위원회가 소집됐다. 두 차례 심의 끝에 최종 뇌사 판정을 내렸다. 학교 친구들과 친구 부모님, 학교 선생님들이 기석이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중환자실을 찾았다. 병상에 누운 기석이는 금방이라도 일어나 안길 것 같았다. 김씨는 허리 굽혀 기석이 볼에 마지막으로 입을 맞췄다.
김씨는 기석이 장기가 누구에게 이식됐는지 모른다. 그래서 새 마음가짐으로 살게 됐다고 한다. 길거리에 전단지 돌리는 사람에게도 미소를 짓는다. 김씨는 "사람들을 보면 '기석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세상을 더 사랑하도록 내게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2017년 장기기증자에 관한 예우가 미흡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한 병원에서 기증을 마친 시신 수습을 유족에게 미뤘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보도 직후 장기기증 신청을 취소한다는 문의가 빗발쳤다. 장기기증은 꾸준히 줄어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6.8명이 장기기증을 기다리다 죽었다.
김씨는 "장기기증은 축복"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축복을 받아야 남에게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장기기증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한다"고 했다.
김씨는 장기기증자 유족, 이식인들이 모인 생명소리합창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는 11월에 정기공연을 앞두고 있다. 대표곡은 '선물'이다. 열두살 승훈 군을 보낸 문두연 할머니 사연을 가사로 썼다. 김씨는 이 곡이 기석이 노래이기도 하다고 한다. 그는 "사랑하는 내 아들 기석이를 위해 오늘도 기석이를 노래할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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