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세의 마하티르 전 총리가 이태원 모스크 찾은 까닭은
"이웃종교와 사이좋게 지내고, 자녀들의 본보기가 돼야"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국이슬람 중앙성원. 말쑥한 정장 차림과 단정하게 뒤로 빗어넘긴 은발에 선글래스를 낀 훤칠한 키의 노신사가 나타났다. 아흔 일곱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의 이 노신사는,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고속 경제 개발 시대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인 마하티르 빈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였다. 조선일보 주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차 방한해 국가리더십에 대한 강연을 한 그가 서울을 떠나기 전에 들른 곳이 이슬람성원이었다.
ALC에서 불특정 다수의 청중들과 정치와 행정 리더십에 대한 경험을 공유했던 그가 이번에는 독실한 무슬림의 한 사람으로 한국에서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격려하고 경험과 지혜를 함께 나누러 온 것이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재임 시절부터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한국의 모스크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ALC 참석을 결정한 뒤 직접 한국이슬람교 측에 연락해서 강연을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1981년 총리직에 올라 22년간 말레이시아를 이끌며 고도성장기를 구가한 그는 2018~2020년 두번째로 총리직을 맡으며 세계 최고령 행정 수반으로 활약했다. 그는 퇴임 뒤에도 정치·사회·건강 등 각 분야에서 체득한 노하우를 전수하며 ‘세계의 멘토’로 활동해왔다. 모스크 내 회의실에 마련된 소박한 연단에 선 그는 시종일관 또랑또랑하면서 부드러운 말로 한국 무슬림 커뮤니티에 대한 격려와 조언을 이어갔다.
그가 우선 강조한 것은 ‘이웃종교와의 공존’이었다. 그는 한국에 오기전에 한국의 이슬람교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요청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한국 같이 소수 무슬림 국가의 경우 여러 이웃 종교들과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여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슬람교는 아랍·아프리카·동남아시아 등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믿고 있지만, 한국에는 자생 신자가 많지 않고, ‘외국인들의 종교’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또 예전보다는 덜하다지만 극단주의 테러 등과 연관지어지면서 부정적 인식이 만연한 것도 현실이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그런 사실을 이미 파악한 듯 “이슬람은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일부 무슬림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이슬람이 과격한 종교로 오해받는다”고 아쉬움을 표하면서 “무슬림이든 비무슬림들이든 누구도 해치거나 살해해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어 무슬림으로서의 생활자세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강연 참석자들을 보면서 “무슬림으로서 아주 정의롭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녀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모범적으로 행동하라”고 당부했다. 이슬람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국제뉴스의 단골 메뉴중 하나인 종파 간 갈등이다. 사우디아라비아·터키·이집트 등 대다수 이슬람권 국가에서 신봉하는 수니파, 그리고 이란·아제르바이잔 등 일부 국가에서 다수가 믿는 시아파가 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이 종파갈등이 격화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수니파, 시아파 등 종파를 구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꾸란과 하디스 등 이슬람의 핵심 경전의 말씀을 따라 생활의 기본으로 삼을 것도 당부했다.
그는 한국 이슬람교 관계자들과 함께 모스크 본당 건물을 배경으로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등 시종일관 밝은 모습을 보였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소셜미디어를 활발하게 이용하며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생각을 알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ALC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소감을 전하면서 자신의 저서를 ALC 현장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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