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많으면 뭐하나요..주 100시간씩 일할 때도 허다하다" [권용훈의 직업 불만족(族)]
'피디병(病)'은 직접 경험해봐야 완치
월급 짭짤해도 쓸 시간 없어 워라밸 '최악'
장맛비가 쏟아지던 지난 13일. 대형 방송국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DMC에서 3년차 방송국 PD를 만났다. 한 손에 움켜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눈 밑에 내려온 다크서클만으로도 그의 업무 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PD라는 직업에 대해 만족하나요.
너무 불만족하죠(한숨). PD는 방송국과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방송국을 너무 사랑했지만 이제는 놓아주고 싶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워라밸이 심각한 수준으로 붕괴됐어요. 제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판단 조차 흐릿하네요.
-주변 사람들에게 PD라는 직업을 추천하는지.
추천 안 해요. 말려야죠.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할 것 같아요. 제 사돈의 팔촌이 한다고 해도 1시간 동안 말릴걸요? 근데 저도 알아요. '피디 병'은 직접 경험해 봐야 완치된다는걸요. 저도 그랬기 때문에...
-일하면서 가장 불편하거나 힘든 점은.
일단 개인 시간이 보장이 너무 안돼요. 심할 때는 일주일에 저녁 약속 한 개도 잡기 어려워요. 매번 약속을 깨야하는데 지인들에게 너무 미안하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촬영 스케줄만이 아니라, 회의, 편집, 시사 등 일정이 언제 생길지 알 수가 없어요. 정말 특별한 사정이 아닌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개인 삶을 포기해야 돼요. 그게 힘듭니다.
-그럼 이번 여름휴가는 갈 수 있나요.
하... 갈 수 있지만 언제 갈지는 몰라요. 제가 정해서 언제 가겠다는 건 꿈도 못꾸죠. 보통 맡은 프로그램 스케줄에 맞춰 휴가가 정해지니까요. 저도 팀 스케줄을 알아봐야겠지만 여름휴가는 잠시 다녀올 계획입니다.
-요즘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요즘에는 보통 오전에 10시쯤 회사에 출근해 새벽 1~2시에 퇴근하는 편입니다. 사실 저희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어요. 기획 단계일 때는 비교적 일반 직장인처럼 출퇴근하지만, 촬영, 편집이 들어가는 순간 출퇴근 구분이 없습니다. 심지어 같은 프로그램을 맡은 팀원 내에서도 출퇴근 시간이 다르고요. 날을 새고 아침에 퇴근하는 동료도 있고, 집에서 3시간이라도 자고 새벽에 다시 나와서 편집하는 동료도 있습니다.
-업무 강도가 높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일이 많을 때는 2~3일씩 집에 못가고 편집기 앞에 앉아 있어요. 그땐 후배들이 사다주는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대충 씹어가면서 커피로 버팁니다. 맛은 딱히 안느껴져요. 살기 위해 먹는거죠.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팀에서 한 두명씩은 응급실에 가기도 해요. 병원에서 링거만 맞고 와서 다시 편집하고, 한숨 자고 나온 뒤에 또다시 모니터 앞에 앉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죠. 매번 이런 경우는 아니지만 심각한 업무 강도에 이탈자도 많아요. 그럼 남은 사람들은 편집량이 더 늘어나요. 그때 회사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이 됩니다.
-대기업 직원들만큼 돈을 번다고 들었는데 연봉이 대략 어느 정도 되나요.
지상파, 종편 등 회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제 연봉을 따지자면 대기업 평균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PD들이 워낙 초과근무를 많이 해서 수당이 많은 편이에요. 기본급은 그렇게 많지 않고요. 이것저것 '영끌'해서 전부 합치면 나쁘지 않습니다. 근데 돈 쓸 시간이 없어요 (웃음).
-PD가 되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준비했나요.
대학 새내기때 KBS 드라마 '프로듀사'를 보면서 PD를 꿈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방송국과 관련된 대외활동을 조금씩 경험했습니다. 3학년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교내 언론고시반에 들어가 공부했고요. 2년 정도 친한 친구들과 연락도 끊고 시험공부에만 몰두했던 것 같습니다.
-PD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단점을 꼽자면.
제일 좋은 점은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거에요. 막상 촬영에 뛰어들면 하는 일이 재밌다는 부분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단점은 워라밸 최악.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할 때도 허다합니다. 아, 가끔 좋아하는 연예인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네요.
-가장 뿌듯했던 경험을 꼽자면.
방송하면서 뿌듯한 경험이라... 즐겁고 보람된 순간도 분명 있었는데 지금은 딱히 기억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 기억이 PD라는 직업의 단점을 상쇄할 만큼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업무 체계가 군대 같다고 들었는데 맞는지.
PD가 나오는 드라마에 그런 장면이 많은 탓에 그런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일단 제가 다니는 회사는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고 업무체계도 군대 같지 않아요. PD에게는 정말 많은 수많은 결정권이 주어지는데 그 결정권을 후배에게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자막 색상까지 전부 선배가 컨트롤 할 수도 있고, 정반대로 후배에게 일임하고 전반적인 체크만 할 수도 있기에 사실상 어떤 메인 PD를 만나느냐가 행복한 회사 생활을 좌우하는 것 같아요.
-방송국이 아닌 일반 회사로 이직할 생각이 있나요.
이직 생각 완전 있죠. 하루에 100번도 넘게 해요. 사실 취준생때부터 대기업을 플랜 B로 염두해두고 언론고시를 준비했었어요. 5년, 6년씩 공부하는 장수생들을 보면서 미래가 두려웠기 때문이에요. 이직할 기회가 생긴다면 완전히 다른 직종으로 시도해볼겁니다.
-개인 유튜브 채널로 부수입 얻는 PD들도 있다는데.
1분짜리 짧은 영상도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지는지 아세요? 저는 더이상 편집하고 싶지 않아요. 부업으로 자기 영상 찍을 시간이 있는 PD가 몇 명이나 될까요. 제 주위에 유튜브 도전한 일반인 친구들은 10명이 넘는 데 성공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솔직히 가끔 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긴 하죠. 그럴 땐 '일 벌이면 넌 죽는다'며 스스로 의욕을 없애요(웃음).
-PD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조언할 말이 있나요.
인생의 우선순위를 잘 생각해자고요. '나는 워커홀릭이다', '내 인생의 우선순위는 성취감이다' 하는 분들은 이 직업을 선택하셔도 후회하지 않을 거에요. 하지만 본인 인생의 우선순위가 가족, 취미생활, 저녁이 있는 삶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선배 PD에게 한마디 하자면.
'나 때는 말이야. 다들 날 새면서 일했으니까 젊은 PD들도 고생하면서 커야지'라는 마인드 좀 버려주세요. 세상이 변했습니다. 방송국도 좀 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직업 불만족(族) 편집자주
꿈의 직장 '네카라쿠배'에서도 매년 이직자들이 쏟아집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이직을 염두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大 이직 시대'입니다. [직업 불만족(族)]은 최대한 많은 직업 이야기를 다소 주관적이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색 직장과 만족하는 직업도 끄집어낼 예정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직장 생활하는 그날까지 연재합니다. 아래 구독 버튼을 누르시면 직접 보고 들은 현직자 이야기를 생생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많은 인터뷰 요청·제보 바랍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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