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서혜 석유시장감시단 실장 "정유업계 신뢰 잃어.. 지속적 감시 필요"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것은 기름값을 올릴 땐 빨리 올리고, 내릴 땐 천천히 내리기 때문입니다.”
이서혜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연구실장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정유사와 주유소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는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미국 컴럼비아대 통계학 석사, 연세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 실장은 2010년 1월부터 13년 넘게 시민단체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에서 국내외 유가를 감시하고 있다. 이 실장은 정부가 세 차례에 걸쳐 유류세를 37%까지 인하했는데 효과가 미미한 이유도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지속적인 감시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가 급등으로 정유사와 주유소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상당하다.
“정유사와 주유소가 소비자의 신뢰를 잃었다. ‘로켓과 깃털 효과’처럼 국제 유가가 오를 때는 로켓처럼 판매 가격을 빨리 올리고, 내릴 때는 깃털처럼 천천히 내리기 때문이다.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이 감시를 시작한 2010년부터 이런 일이 수차례 반복됐다. 양심적인 공급자들도 많지만, 유가 급등 시기에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이 있어 소비자들이 더이상 공급자를 신뢰하기 어려워졌다.”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개월 동안 정부가 유류세 인하 폭을 37%까지 늘렸는데, 전국 주유소의 99%가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유가가 급격히 오를 때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국제 유가가 수개월에 걸쳐 천천히 오르면 문제가 없는데, 한 달 만에 가격이 급등하면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국제 유가 인상 폭보다 가격을 더 올린다. 소비자 입장에선 국제 유가의 정확한 인상 폭을 모르니 공급자가 정한 가격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정유사들은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이윤을 과도하게 가져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유사가 국내 시장에 공급하는 물량이 상당한 점을 알아야 한다. 오피넷에서는 공급 가격이 1원만 오른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상당한 수익을 거두는 이유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국제유가의 흐름에 맞춰 정유사들의 공급 가격도 오르는 것은 맞는다. 하지만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유사들이 공급 가격을 국제 유가보다 가파르게 올림으로써 그 차액만큼 이윤을 챙기고 있다.”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해도 가격이 즉시 내려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주유소들은 유류세 인하 전 공급받은 재고를 소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유소의 주장도 틀린 것은 아니다. 유류세는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한 뒤 주유소에 출고하는 단계에서 부과된다. 주유소마다 유류 탱크의 크기가 다르지만, 통상 유류 소진에 1~2주가 걸린다. 즉 유류세 인하 당일 주유소들 유류 탱크에 있는 기름은 유류세가 인하되기 전 공급받은 물량들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유류세가 다시 정상화됐을 때는 가격을 빨리 올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석유시장감시간이 2018년 11월 유류세 15% 인하 당시 주유소들의 판매 가격을 조사한 결과, 유류세 인하 첫날 휘발유 판매 가격을 내린 주유소는 25%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듬해 5월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 폭을 15%에서 7%로 줄였을 때는, 전체의 56.09%가 즉시 가격을 올렸다. 가격을 올릴 땐 빠르게, 내릴 땐 천천히 내린다는 지적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유류세 인하 효과를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부의 감시와 관리가 강화돼야 한다. 작년 11월 유류세 20% 인하 첫날, 휘발유 판매 가격을 유류세 인하 폭만큼 제대로 반영한 주유소는 13.7%에 불과했다. 올해 5월 유류세 인하폭을 30%로 확대한 첫날에는 16.46%, 올해 7월 유류세를 37%로 인하한 첫날에는 22.2%가 가격을 제대로 반영했다. 유류세 인하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가 ‘시장점검단’까지 구성해 주유소 점검을 강화한 결과라고 본다.”
-유류세를 더 내리는 것은 효과가 없을까.
“유류세 인하를 계속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는 데 일부 도움을 주는 것은 맞지만, 지금의 방식은 주먹구구식이다. 국제 유가가 얼마를 넘었을 때 얼마를 할인해준다든지 그런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정부 마음대로다. 유가가 오를 때 소비를 줄일 필요도 있는데, 정부가 기준 없이 유류세를 내리면서 소비자들은 국제 유가가 더 올라도 정부가 내려줄 것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잘못된 시그널을 주고 있는 것이다. 유류세 인하 방식에 일정한 기준이 있어야 소비자도 예측을 통해 유류 소비를 합리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유류세 인하 말고 다른 대책은 없는가.
“쉽지 않다. 결국 기름값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인다. 정부가 정유사와 주유소를 지속적으로 감시해 이들이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소비자 역시 비싼 주유소를 피하고, 소비도 합리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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