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포커스] 루나 사태 후 2개월.. 여전히 '보여주기' 급급한 정치권
이번 간담회에 중요한 내용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참석했는데 지난 간담회와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정치권이 서로 가상자산 논의 관련해 뒤지지 않으려고 보여주기 경쟁에 나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업비트 투자자보호센터에서 열린 가상자산 관련 간담회에 참석한 A씨의 말이다. 그는 이번 간담회에 ‘알맹이’가 없었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근 루나 등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해 수많은 피해가 발생하자, 정치권도 이에 대한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현장 방문과 간담회 등 요란한 행사만 되풀이된 채 건설적인 의견 교환이나 구체적인 개선안 등은 눈에 띄지 않아 정치권이 여전히 보여주기에만 치중한 ‘쇼’만 벌이고 있다는 따가운 시선이 많다.
더불어민주당 민생우선실천단 가상자산 특별대책 태스크포스(TF)는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업비트 투자자보호센터를 방문해 투자자 보호 현황 제도를 점검하고 업계 건의를 듣는 간담회를 개최했다. 민주당이 가상자산과 관련해 현장 방문에 나선 것은 국민의힘 당·정 간담회가 국회에서 열린 지 약 50일 만이다.
간담회에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병욱 TF 팀장, 노웅래, 백혜련 의원 등 야권 인사 총 8명이 참석했다. 거래소 관계자로는 이석우 업비트 대표, 이재원 빗썸 대표 등을 비롯한 5개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고위 임원들이 참여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눈에 띌 만한 진전된 의견이나 대책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의원들은 하나같이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들에게 투자자 보호에 미흡했다고 질타했고, 자신들 또한 이 점을 살피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말만이 나왔다.
그나마 거래소들이 가상자산 시장 개선을 위해 담긴 제안서를 건넸다는 것이 유일하게 다른 점이었다. 해당 제안서엔 ▲다수 은행 실명 계좌 발급 허용 ▲법인·기관 투자자 시장 참여 활성화 ▲가상자산 과세 유예 ▲가상자산 사업자 해외송금 허용 ▲가상자산사업자 금융 서비스 허용 등 총 5가지 항목이 담겼다.
간담회가 끝난 뒤 5개 거래소는 별다른 논평도, 행사에서 어떤 건설적인 논의가 있었는지 등에 대한 자료를 배포하지 않았다. 당시 행사 참석자들에게서도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렇게 알맹이가 없을 거라면 거창하게 보도자료를 뿌리면서까지 홍보할 필요는 없었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었다. 이전에 진행했던 정치권 인사들과의 만남과 비교해 다른 점이 전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지난 5월 24일 당·정 간담회를 개최한 국민의힘의 경우, 가상자산 거래소들에 자율 규제안 및 최소 코인 상장 기준 등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금융 당국에는 투자자 피해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를 철저히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계류하고 있는 법안 등에 대해선 시급히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가상자산 시장이 과열될 때 별다른 규제나 사고방지 대책을 내놓지 못했던 정치인들이 인제 와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뒷북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지난 5월 알고리즘을 통해 가치를 연동한 스테이블 코인 루나 폭락 사태가 발생했다. 1주일 만에 시총 99%가 증발하며 수조원대의 피해를 야기했으나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이는 없었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의 경우, 루나 사태 발생 후 입출금 제한을 타 거래소보다 늦게 두며 수수료 수익으로 100억원 정도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와중에도 정치권이나 규제 당국은 이렇다 할 규제를 가하지 못했다.
루나·테라 사태는 최소한의 법이나 규제가 있었으면 피해가 이 정도로 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데, 그 역할을 정치권이 해내지 못했다는 의견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현재 가상자산 업자에 대한 규제 체계가 확실하지 않았다”며 “만일 가상자산 관련한 ‘기본법’만 마련됐더라면 루나로 인한 피해가 지금만큼 커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않아도 정치권이 계속해서 가상자산 시장에 관심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가상자산 시장의 건설적인 규제를 위해서는 정치권의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업권법 통과 및 규율 제도화를 위한 원 구성에도 정치권의 문제의식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여야 할 것 없이 초당적으로 투자자 보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긍정적이다”라며 “투자자 보호 제도 마련에 관심을 가져준 점은 업계의 건실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또한 “업계와 소통하며 규제 방향을 정하는 것은 업계와 시장 모두에게 좋은 방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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