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민이 성공은 오롯이 그의 것" 세대 초월한 손웅정의 이유있는 신드롬

배준용 기자 2022. 7. 1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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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월클' 손흥민 선수 키워낸 손웅정 '강한 리더십' 돌풍
지난해 10월 손웅정 감독의 자전 에세이 출판으로 공개된 손웅정·손흥민 부자의 사진. 지인들은 두 사람에 대해 “평소엔 서로 격 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친구 같은 부자 관계”라고 말한다. /수오서재

전 세계가 아들을 ‘세계 최고’라고 치켜세우는데, 한사코 “절대 ‘월드클래스’가 아니다”고 반박하는 아버지가 있다. “솔직히 아들을 많이 팼다”고도 고백했지만, 사람들은 그 영상을 보며 웃고, 패러디하고, 열광한다. 토트넘 홋스퍼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30)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60) 손축구아카데미 감독의 이야기다.

손 감독은 줄곧 대외 활동과 언론 노출을 가능한 한 피하고 있지만, 그가 숨어들수록 아들을 세계 최고 반열의 축구 선수로 성장하게 도운 아버지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손 감독이 과거 인터뷰에서 “흥민이 절대 월드클래스 아닙니다”라고 말한 영상은 조회 수가 300만회를 넘었고, 이를 코믹하게 패러디한 영상들도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심지어 손 감독이 현역 시절 프로축구 선수로 활약한 옛 모습이 담긴 영상도 조회 수가 200만회를 넘었다.

지난해 10월 그가 출간한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수오서재)는, 손흥민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른 지난 5월부터 판매량이 3~5배가량 늘었다. 각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역주행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저자 사인회는 1시간으로 예정된 소규모 행사였지만, 팬들이 잔뜩 몰려들면서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학계와 비평가들 사이에선 “손웅정 감독이 마음만 먹으면 강연·출판·방송계에 엄청난 파급력을 미칠 것”이란 말이 돌고 있다. 손 감독의 리더십과 철학이 성별·세대를 초월한 호소력을 가졌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인파출명저파비#손흥민아빠로나대기싫다

그러나 손 감독은 그럴 뜻이 전혀 없어 보인다. 오래전부터 언론과 강연계의 섭외 요청이 쏟아졌지만, 수락한 횟수는 손에 꼽는다. 그나마 속내를 보인 건 직접 쓴 책과 2019년 케이블채널에서 방영된 손흥민 다큐멘터리에 관여한 정도가 전부다. 지난 12일엔 신경호 강원교육감이 “춘천에 손흥민 거리가 조성됐으면 한다”고 제안하자 손 감독은 “몇 년 전부터 그런 얘기가 있었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단호히 선을 그으며 “은퇴하면 누가 이름이나 불러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왜 이렇게 몸을 사릴까. 손씨의 지인들은 “원래 지나칠 정도로 겸손함이 몸에 밴 사람에다 아들에게 폐 끼치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며 “‘손흥민 아빠라며 나댄다’는 말을 듣는 것을 가장 꺼린다”고 입을 모았다. 어느덧 60대지만 어딜가든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도 축구팬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된다.

“‘얼마나 뿌듯하냐, 얼마나 자랑스러우냐, 얼마나 기쁘냐’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속으로 삼키는 감정이 있다. 바로, 두려움이다. 나는 흥민이가 어린 시절부터 상 같은 걸 받아 올 때면 ‘축하한다, 고생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서 그 상장과 상패는 분리수거하고 들어와라’라고 말했다. 자신이 이룬 성과에 만족하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중에서

손 감독의 끝없는 겸손과 저자세는 단순한 겉치레나 리스크 회피가 아닌 삶을 지탱하는 철학이다. 그가 말하는 삶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인파출명저파비(人怕出名豬怕肥)’다. ‘사람은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팬들은 “월드 스타가 된 손흥민이 한결같이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다 이런 아버지의 철학 덕분”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한 문화평론가는 “조금이라도 유명해지면 그 유명세로 돈이나 인기를 얻으려는 풍토가 강하지 않으냐”며 “손 감독과 손흥민의 겸손한 행보는 이와는 정반대인 데다 그런 태도가 한결같이 이어지다 보니 더 큰 호응을 얻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나는삼류축구선수#냉혹한자아성찰

1962년 충남 서산 출생인 손 감독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상무축구단, 현대호랑이(현 울산 현대), 일화천마(현 성남 FC)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하다 28세였던 1990년 심각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은퇴했다. 프로 통산 37경기 7골. 자신의 현역 시절에 대해 손 감독은 ‘삼류 선수’ ‘천둥에 놀라 뛰는 개처럼 뛰었다’며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축구계 평가는 다르다. 1983년 10월 18일 자에 조선일보는 제38회 청룡기쟁탈 전국 중·고교 축구선수권대회에 춘천고 선수로 출전한 손웅정이 영광고와의 시합에서 생애 첫 공식 해트트릭이자 대회 첫 해트트릭을 한 사실을 전하며 “소양중을 거쳐 춘천고에 입학하면서부터 손(孫)의 스피드와 발재간은 정평이 붙었다”고 썼다. 또 “1m72㎝에 63㎏. 축구선수로는 비교적 단신이지만 문전에서의 순발력과 슈팅 처리, 드리블이 고교 정상급인 반면, 100m를 12초로 뛰는 스피드를 순간적으로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라는 전문가들의 평도 전했다. 손웅정은 당시 해트트릭을 한 소감에 대해 “축구를 하고 첫 기록이기 때문에 기쁘다기보다는 얼떨떨한 기분”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내가 했던 축구의 내용이 부끄러웠다. 기본기가 없어도 성적은 내야 했다. 죽기 살기로 뛰었고 몸은 금방 망가졌다. 유소년 축구 지도자의 꿈을 품게 되면서 우리가 그간 해왔던 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싹텄다.”

그는 자신의 축구 이상에 미치지 못한 현역 시절을 합리화하는 대신 처절한 성찰을 통해 아들에게는 철저히 기본기를 중시하는 축구 교육을 했고, 그 결과 아들은 세계 최고 반열의 선수로 성장했다. 손흥민은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흥민이가 함부르크에서 처음 계약했을 때, 분데스리가 데뷔 골을 넣었을 때 사람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선수’라고들 표현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 혜성같이 나타난 선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기본기가 그때 비로소 발현된 것일 뿐이다.”

손웅정 감독이 지난 7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열린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저자 사인회에서 한 팬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솔선수범#책임감#혹독한교육

팬들은 손웅정의 매력으로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꼽는다. 손 감독은 어린 손흥민을 가르칠 때도 항상 시범을 먼저 보이고 훈련을 똑같이 했다. 그가 손축구아카데미 선수들에게 팔굽혀펴기를 시키면서 자신도 똑같이 팔굽혀펴기를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에는 “살면서 저런 스승은 본 적이 없다” “정말 존경한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려있다.

손 감독은 책에서 “아이들과 ‘함께’ 운동하는 게 나의 훈련 철칙이다. 아이들에게만 시키고 팔짱 끼고 서 있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손흥민도 어린 시절 혹독한 훈련에 대해 “아버지가 옆에서 똑같이 훈련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정말 혹독하게 키웠다. 낙숫물이 떨어져서 바위를 뚫는 듯한 반복. 그 꾸준함과 끈질김이 필요했다. 그곳에서 기본기가 시작된다. 아비가 무서우니 말은 못했겠지만 지루하고 지쳤을 테다. 흥윤이와 흥민이를 훈련시킬 때 ‘의붓아버지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 혹독한 시간을 돌아보면 아이들에게 너무도 미안하다. 아직도 혼자서 가슴속으로 울 때가 많다.”

◇#자식은부모의소유물이아니다

손 감독은 “흥민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축구를 하면서 축구 선수로 성공하거나 프로 선수가 돼서 어느 정도 돈을 벌 것이라는 생각은 결단코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손흥민을 엄하게 가르친 이유가 결코 자신의 욕심이나 부모로서의 욕심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 “축구 선수로 경기장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게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하게 가르쳐 제대로 된 선수가 되어야 축구 선수로서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 해도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또 다른 인생이 있다.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가만히 들여다보라. 그건 다 부모의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훈련 때 엄한 아버지였지만 부자 사이가 돈독한 이유에 대해 손 감독은 “혼을 내고 반드시 사후 수습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감정에 휘둘려 혼을 내거나 인격을 훼손하지 않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을 지키려 노력했다”고도 했다.

“부모가 냉정해야 아이가 강해진다.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를 컨트롤할 힘을 길러주어야 했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면 어떤 상황도 통제할 수 없다. 통제하지 않으면 통제된다. 공도, 삶도 스스로 컨트롤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못말리는부자케미

손 감독의 매서운 인상 탓에 일부에선 손웅정·손흥민 부자를 권위적인 관계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훈련할 때 한정이다. “축구를 벗어나면 두 사람은 서슴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절친한 친구 같은 모습”이라는 게 두 사람을 지켜본 주변인의 얘기다. 축구계에서는 “두 부자의 성격적 케미가 좋다”는 평가가 있었다. 손 감독이 매사 진지하고 엄격한 반면 손흥민은 낙천적이고 붙임성이 좋아 서로 성장의 시너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손 감독을 두고 팬들은 “무서워 보이지만 아들밖에 모르는 ‘츤데레’ 같다”고도 한다. 손 감독은 늘 경기에 나서는 아들을 안아주며 “오늘도 마음 비우고 욕심 버리고 승패를 떠나서 행복한 경기 하고 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날 제대로 밥 한 끼 먹지 못한다.

“흥민이 경기가 있는 날이면 나는 밥 먹는 것을 포기한다. 흥민이 경기하는 날 뭘 먹었다 하면 체하지 않는 날이 없기 때문이다. 관람석의 나는 굳어진 얼굴을 한시도 펼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를 보는 내 마음속 소리는 오직 ‘오늘도 흥민이가 부상 없이 행복한 경기를 마쳐야 할 텐데…’이다. 한번도 마음 편히 경기를 관람한 적 없는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 선수의 경기를 마음 편히 볼 수 없는 운명이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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