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에도 사건 척척 해결하는 변호사? '우영우'는 상상일까 현실일까
드라마속 고기능자폐 살펴보니
“엄마 나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읽지? 그렇지만 아마 (꿈인) 변호사는 되지 못할 거야. 자폐가 있으니까. 하지만 증인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증인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진실이 뭔지 알려 주고 싶어.”
영화 ‘증인’의 주인공 지우(김향기)의 꿈이 이뤄진 것일까. 최근 넷플릭스 국내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자폐를 갖고 있지만, 변호사의 꿈을 이룬 우영우(박은빈)의 이야기를 다룬다. 둘 다 문지원 작가의 작품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은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드라마 속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일까. 국내 최고 자폐 전문가인 유희정 분당서울대병원 교수와 분석했다.
◇자폐 가진 변호사, 우영우보단 황시목
먼저, 자폐가 있는 사람도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정답은 “있다”다. 드라마 속 우영우는 일명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불리는 고기능 자폐다. 타인과의 교감 능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장면을 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하는 능력은 타인보다 높은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유 교수는 “물론 팩트와 팩트를 결합해 논리적인 기승전결 형태로 만들어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10%가 안 되긴 하지만 ‘서번트 스킬’이라고 부르는 시각적 메모리를 컨트롤하는 능력은 높게 나타난다”며 “팩트를 연결해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훈련한다면 변호사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자폐 중 50% 정도가 고기능 자폐, 이 중 대학을 다니는 사람은 15% 정도다.
그러나 고기능 자폐를 가진 사람이 변호사가 됐을 때의 모습은 우영우보다는 드라마 ‘비밀의 숲’의 황시목 검사(조승우)에 가깝다고 한다. 우영우가 가진 증상 중 주로 반복적인 문어체로만 말하고, 손을 반복해서 움직이는 모습은 고기능 자폐를 가진 이들에게 흔히 보이는 특징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황 검사처럼 무심해 보이고 표정도 별로 없으며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탁탁 하는 스타일이 많다. 유 교수는 “드라마 속 우영우는 고기능 자폐라는 설정 속에 우리가 알고 있는 자폐 증상을 드라마적인 요소로 조금씩 넣어 놓은 것에 가깝다”고 말했다.
◇정말 자폐는 거짓말을 못하나
“자폐는 거짓말을 못해요.”
영화 ‘증인’에서 검사 희중(이규형)은 자폐를 가진 지우의 증인으로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이 같이 말한다. 이는 드라마 ‘우영우’의 3회 내용과도 연결되는데, 형을 살인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자폐아 정훈의 발언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 이를 변호하는 우영우의 자질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지가 쟁점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 대목의 정답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다. 물론, 자폐를 겪지 않는 사람보다는 덜 능숙하게 하거나, 하더라도 티가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유 교수는 “거짓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마음과 관점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야 하는데, 이 부분이 약한 자폐는 상대적으로 거짓말 스킬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반대로 사기꾼은 다른 사람의 관점을 교묘하게 읽는 능력이 극도로 발달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는 드라마 속 우영우가 4회에서 친구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상대방을 속이고는 다 티나는 표정으로 “증거 있습니까?”라고 묻는 장면이 더욱 진실에 가까운 셈이다.
◇굿닥터는 가능한가
드라마 ‘우영우’ 이전에 고기능 자폐를 다뤄 먼저 인기를 끈 드라마는 ‘굿닥터’다. 우영우처럼 기억력이 좋은 박시온(주원)이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를 졸업한 후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활동하며 좋은 의사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고기능 자폐를 가진 변호사가 가능한 것처럼, 의사도 가능한 설정인 걸까.
정답은 “당연”이다. 또한 “어느 쪽이 더 쉽다”라고 말할 순 없지만, 고기능 자폐를 가지고 있으면서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 중에는 문과보다는 이과가 더 많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의 동물학자이자 콜로라도대 교수인 템플 그랜딘과 미국 채권왕 빌 그로스다.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도 코미디쇼 ‘SNL’에 출연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천재 과학자 아이작 뉴턴도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이 50만명을 대상으로 자폐적 특성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과학자와 수학자는 일반인에 비해 자폐 성향이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미국 드라마 ‘빅뱅 이론’의 셜든(짐 파슨스)이 같은 자리에만 앉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식의 모습도 아스퍼거 증후군의 증상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영화 ‘증인’에서처럼 초인적인 청각 능력을 가지는 건 허구에 가깝다고 한다. 대신 청각이 예민한 건 사실인데, 변기 물 내리는 소리, 응급차 사이렌 소리 등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우영우처럼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헤드폰을 쓰고 다니면서 청각적인 예민함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 우영우가 사람 눈을 잘 못 마주치는 것도 일부 자폐의 특성이다. 오히려 눈을 너무 뚫어져라 쳐다봐서 불편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영우가 사람의 감정을 잘 알지 못해 표정판을 만들어 놓고 외우는 것도 드라마적 설정이라는 것이 유 교수의 분석. 그는 “고기능 자폐를 가진 사람은 좀 더 미묘한 감정을 혼동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 발달과 경험에 의해 중요한 감정은 대체로 잘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교수는 “아무것도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했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증상은 광범위하고,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우영우는 자폐를 가진 사람을 누군가의 짐이나 근심거리로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사회 생활을 하는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동료 변호사 권민우(주종혁)는 우영우를 자신을 위협하는 경쟁자로 받아들이며 경계한다. 우영우가 어디까지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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