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이름들을 쓰다듬는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수천 가지 상품 가운데 계산을 치를 때마다 왠지 숙연해지는 상품이 있다. 부의(賻儀) 봉투. 누군가 삶이 스러졌으니 구입하는 상품일 텐데 하는 생각에 매번 경건해진다.
살아가는 일은 죽음에 대한 기억이 쌓여가는 과정 아닐까. 어제까지 함께했던 사람 이름 앞에 오늘부터 고인(故人)이란 어색한 수식이 붙고, 누가 문득 떠올랐다가 지금은 세상에 없다는 부재(不在)의 각성에 순간 망연해지기도 한다. 이젠 제법 익숙해질 법도 한데, 누구의 이름인들 부음을 듣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픈 경험이다.
어설픈 글줄깨나 쓴다는 이유로 글을 쓰거나 고쳐달라는 사적인 부탁을 받곤 한다. 그중엔 계약서나 소송장이 많다. 계약서는 대체로 써주는 편이지만 소송장은 거의 거절한다. 억울한 사정이야 팔 걷고 도와야 마땅하지만, 내가 법률가도 아닐뿐더러, 쌍방이 원만히 대화로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을 굳이 법으로 해결하겠다고 씩씩거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나름의 중립주의라고 변명하곤 한다.
고소장을 써달라는 선배가 있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이라서 써줄까 했지만, 내가 볼 땐 전혀 가망 없는 송사였다. 몇 번 편의점에 찾아와 써달라고 재촉하기에, 내용도 내용이지만 일하는 사람 옆에서 그러는 것이 마뜩잖아, 그거 해봤자 소용없다고 잘라 말했다.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가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오른다. 며칠 지났을까, 그의 전화번호로 밤중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고 한승민 님께서 숙환으로 별세하셨기에 부고를 전해드립니다.” 정신이 아뜩해졌다. 살아있던 자의 전화번호로 그의 죽음을 듣는 일은 여전히 익숙잖은 일이다.
중국 동북지방 심양(瀋陽)이라는 도시에서 잠깐 식당을 운영한 적이 있다. 마침 그 지역을 담당하는 언론사 특파원이 안면 있는 선배였는데, 자꾸 인터뷰를 하자고 졸랐다. 북한인권단체에서 일했던 사람이 남북 첩보기관이 은근히 맞붙는 도시에서 식당 주인으로 변신한 모습이 다소 이채롭게 보였나 보다. 운동 현장을 떠났을 뿐더러 생업에도 지장 있을 것 같아 “맛있는 고기는 서비스로 많이 드릴 테니까 인터뷰는 물러요”라고 웃으며 거절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선배는 “어차피 드러날 일이니까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게 어때?”라고 역시 웃음으로 되받았다.
그런 선배가 취재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북중(北中) 국경 지역을 오가다 눈길에 택시가 미끄러졌다. “갔다 돌아오면 북한산 꽃게나 한 솥 푹 삶아 잔치를 벌이자”고 했던 선배의 순박한 웃음이 잊히지 않는다. 뭐든 꼼꼼해서 사소한 것 하나 놓치는 법 없는, 타고난 기자였다. 선배랑 마지막 식사를 콩나물국밥집에서 했다. 밥을 먹다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김을 한 뭉치 사 들고 오길래 어리둥절했다. “전주식 콩나물국밥에는 김이 들어가야 정석”이라며 김을 잘게 부숴 넣어주던 미소가 서럽게 기억에 남는다. 소주라도 한 잔 더 따라줄 걸.
돌아보면 허망한 죽음이 많았다. 고교 시절 학생회장 할 때, 친구 녀석에게 학생회 활동을 같이하자고 꼬드겼다. 공부를 꽤 잘하는 친구였는데, 학업에는 지장 없게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문예부장을 맡겼다. 대학에 들어가 여름방학이 막 시작했을 때, 친구 부고를 들었다. 목욕탕을 철거하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건물이 무너지며 사망했다. 국립대학에 갔으면 학비 부담을 조금 덜었을 텐데 서울의 비싼 사립대학에 가는 바람에 선택한 일이었다. “못난 어미를 둬서 죄스럽고 미안하다”고 농군인 부모는 영정 사진 앞에 엎드려 오열했다. 학생회 활동이 아니었으면 국립대학에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안함에 차마 장례식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낼모레가 친구 기일이다.
군대에서 나 대신 보직을 맡게 된 동기가 근무 중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한동안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심하게 다투고 절교한 후배가 희귀병으로 운명을 달리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우리가 무슨 일로 다퉜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나 자신이 미련하게만 느껴졌다. 그리운 이름의 죽음 위로 그리운 이름이 하나 더 쌓이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 담담히 오늘을 산다.
얼마 전엔 페이스북으로 알고 지냈던 분의 부음을 접했다. 본인 계정에 본인이 부고를 올린 것을 보고 처음엔 어리둥절했으나 이내 사태가 파악됐다. 자신도 투병 생활을 하면서 아내 간병까지 하는 사연이 늘 애잔했는데,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뒤따라가셨다. 숱한 애도의 댓글 가운데 조용히 ‘슬퍼요’를 누르며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인연과 이별의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한 줄기 별이 하늘을 긋는다. 별 가운데 그리운 얼굴을 찾는다. 십여 년이 흘렀지만 오늘이라도 찾아와 국밥 먹자며 웃을 것 같은 연합뉴스 심양 특파원 고 조계창 기자의 명복을 빈다. 한 번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따뜻한 댓글과 메시지로 늘 다정했던 고 박민균 님의 명복을 빈다. 억울한 사연을 안고 세상을 떠난 고 한승민 형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편의점 진열대에 있는 부의 봉투를 단정히 진열하며 그리운 이름들을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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