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지만 더럽게 맛있다던 '5달러 밀크셰이크'
“젠장, 더럽게 맛있는 셰이크네요. 5달러 값어치는 몰라도 진짜 더럽게 맛있네요.” 인터넷의 ‘인플레이션 계산기’를 돌려 보니 1994년의 5달러는 오늘날의 금액으로 9.86달러, 한화로는 1만2855원이다. 1994년의 최저임금이 1085원이었으니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하루 종일 일해도 사먹을 수 없을 만큼 비싼 밀크셰이크라는 말이다. 마침 대학 새내기였던 터라 1994년의 물가를 대강 기억하고 있다. 학생 식당의 최고급 메뉴인 돈가스가 1500원이었다.
펄프 픽션(1994)은 두 범죄자 빈센트 베가(존 트래볼타)와 줄스 윈필드(새뮤얼 잭슨)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다소 시시콜콜한 이야기이다. 빈센트는 보스인 마르셀리우스 월레스(빙 레임스)가 출타 중인 사이 아내인 미아(우마 서먼)를 보좌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래서 식사를 함께 하는데 미아가 ‘5달러 셰이크(메뉴의 이름이다)’를 시키자 깜짝 놀란다. ‘우유와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셰이크가 5달러예요? 버번 같은 술을 넣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한입 얻어 먹고 납득한다. “진짜 더럽게 맛있는 밀크셰이크네요.” 그런 이야기를 나눈 뒤 둘은 음식점에서 벌인 트위스트 경연대회에 나가 함께 춤을 춘다. 남녀가 V자를 그린 손을 눈가에서 움직이며 춤을 추는, 광고 등에서 수없이 모방된 유명한 장면 말이다.
과연 어떻게 하면 밀크셰이크가 그렇게 비쌀 수 있을까? 밀크셰이크는 문서에 남은 기록만으로도 188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음료이다. 원래 계란과 위스키 등으로 만든 강장제였으나 20세기로 접어들며 초콜릿, 딸기, 바닐라 시럽 등으로 맛을 낸 음료로 변모했다. ‘펄프 픽션’의 밀크셰이크는 영화 속 음식 가운데서도 워낙 유명한지라 인터넷에 정보가 꽤 많다. 하지만 풍요 속 빈곤이라고, ‘비쌈=고급스러움’이라 해석해 영화의 하드보일드함과 어울리지 않는다. 높은 단가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으로 유기농 계란부터 우유, 크림 등 비싼 재료를 쓰다 못해 식용 금박까지 얹어 만든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자막으로 보여주는 펄프 픽션(’질 나쁜 종이에 인쇄하는 선정적인 이야기’)의 정의와도 거리가 멀다.
우유에 아이스크림이 주 재료인 단순한 밀크셰이크에도 나름의 세계가 있으니, 기준은 걸쭉함이다. 일단 평범한 밀크셰이크가 있다. 빨대로 빨아 올리면 살짝 저항이 있고 컵을 기울이면 느릿느릿 흐르는 수준으로 걸쭉하다. 우유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더하는 수준에서 만들 수 있다. 한편 그보다 좀 더 고급스러운 밀크셰이크는 더 쫀쫀한 보통의 아이스크림을 쓰고 교반기로 휘저어 만든다. 교반기의 강력한 힘 덕분에 우유와 아이스크림이 완전히 섞이면서 빨대로 빨아 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걸쭉해진다. 이런 밀크셰이크는 기계를 쓰면서도 수제(hand-spun)라 홍보하며, 걸쭉함을 강조하기 위해 컵을 뒤집어 내주는 경우도 많다. 워낙 걸쭉해 컵을 뒤집어도 내용물이 쏟아지기는커녕 흐르지도 않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선택의 폭이 아주 넓지는 않은 가운데 국내에는 평범한 밀크셰이크가 대세이다. 대표적인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롯데리아와 맥도날드, 그리고 쉐이크쉑에서 맛볼 수 있다. 가격은 롯데리아와 맥도날드가 2000원대, 쉐이크쉑이 6000원대이다. 흐르지 않을 정도로 걸쭉한 셰이크는 거의 없는데, 그나마 아이스크림을 휘저어 만든 쉐이크쉑의 ‘콘크리트’(6000원대)가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펄프 픽션’의 분위기에 최대한 근접한 밀크셰이크를 먹고 싶다면 수제 버거 전문점 브루클린 버거 조인트를 권한다. 영화의 그것과 똑같이 생긴 잔에 빨갛게 물들인 마라스치노 체리마저 얹어준다(6000원대). 그렇다, 2022년의 가장 비싼 밀크셰이크도 1994년 5달러짜리의 절반 수준 가격이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영화에서 5달러 셰이크에는 ‘마틴과 루이스’, ‘에이모스와 앤디’ 두 종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둘 다 1950년대의 코미디 듀오인데 전자는 백인, 후자는 흑인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마틴과 루이스는 바닐라, 에이모스와 앤디는 초콜릿 셰이크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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