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칠판 재밌어요" 폐교 위기 시골학교, 유학생도 유치
화순 천태초교의 스마트한 변신
천태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은 박지선 교사의 말이 끝나자 학생들이 태블릿PC를 꺼낸다. 박 교사가 교실 앞 85인치 대형 디스플레이 ‘플립’을 터치하며 수업 자료를 연다. 그동안 학생들은 능숙하게 개인 태블릿PC로 온라인 교실에 접속한다. 플립은 디지털 기기 화면을 연동할 수 있고, 자유로운 판서와 자료 불러오기가 가능한 인터랙티브 디스플레이다. 박 교사가 플립으로 학습 퀴즈를 실행했다. ‘가정 살림을 같이하는 생활공동체를 00라 한다.’ 화면에 문제가 뜨자 학생들이 개인 태블릿PC에 정답을 입력한다. 곧바로 정답과 함께 정답을 맞힌 학생 수가 나왔다.
이어서 발표 시간. 조별 발표 준비 시간에 같은 조 학생들이 각 태블릿PC로 발표 자료를 공유해 보고 있다. 이번엔 가상 회사의 상품개발팀 직원이 되어 제품 개선 방안을 발표해야 한다. “우리 회사는 이전보다 더 가볍고 가격이 저렴한 청소기를 출시했습니다.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학생들이 태블릿PC 화면 속 발표(PPT) 파일을 플립으로 공유해 발표를 시작했다.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 위치한 천태초등학교의 수업 풍경이다. 이곳에서는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수업이 일상이다. 교사와 학생 간 실시간 자료 공유는 물론 필요할 때면 언제든 온라인 콘텐트를 활용할 수 있다.
천태초등학교는 불과 5년 전만해도 폐교를 걱정해야 했다. 이현희 교장은 2017년 9월 부임 당시를 회상하며 “학교가 있는 화순군 도암면은 노령 인구가 많아 학생이 있을 수 없는 지역”이라며 “다음 해 입학 예정자가 한 명도 없어 학교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당시 다른 교사들의 생각도 같았다. 2018년 천태초등학교의 전 학년 재학생은 22명에 불과했다. 통상 학교가 폐교되기까지는 복식학급 운영, 초등학교 산하 분교화 과정을 밟는다. 복식학급은 2개 이상의 학년을 한 학급으로 편성해 운영하는 학급이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복식학급 운영이 불가피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때 ‘삼성 스마트스쿨’ 모집 공고가 한 교사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기회라고 해서 무턱대고 지원할 수는 없었다. 천태초등학교 교사들은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효과적인 수업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수업 모델을 연구한 박지선 교사는 “도에서 지원해준 공용 태블릿PC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스마트 기기를 동원해 수업을 진행하며 수업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제안서를 쓰고 수정하길 반복하며 준비한 기간만 1년이다.
전국 98개 학교에 스마트스쿨 만들어
박 교사는 “저희는 다른 학교에 비해 조금 더 절박했어요. 뭔가 하나의 끈을 잡고 싶었거든요. 마침 절실했던 순간에 삼성 스마트스쿨에 선정되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천태초등학교는 2019년을 기점으로 많은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스마트스쿨 선정을 계기로 여러 교육 환경 개선 사업에 지원해 연속 선정되며 교실 외 학교 공간이 리모델링되기도 했다. 스마트스쿨이 변화의 첫 단추가 된 셈이다.
가장 먼저 학생들의 수업 참여 태도가 변했다. 2019년 하반기 한 교실이 스마트 교실로 리모델링됐고, 해당 학급 내 학생들이 개별로 사용할 수 있는 태블릿 PC가 지급됐다. 이후 소위 ‘무임승차’하는 학생이 사라졌다. 직접 콘텐트를 만들고, 조별 과제를 수행하며 모든 학생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6학년 임성주(12)군은 “연필이 아닌 자판으로 생각을 쳐서 올리니까 훨씬 빠르고 좋다”고 말했다.
개별 태블릿PC를 사용하는 만큼 퀴즈가 있을 땐 정답이든 오답이든 직접 답안을 써내야 하고, 과제를 주면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 임권일 과학 교사는 “참여 여부가 바로 드러나다 보니 일단 다 참여한다”며 “학생이 기록한 결과물을 함께 볼 수 있고, 데이터가 축적돼 변화 양상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장은 “스마트 스쿨이 만든 가장 큰 변화는 조연이 없다는 점”이라며 “모든 아이가 자기 주도적이고 자신감이 넘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디지털 기기 활용 능력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 스마트 스쿨에서는 전담 교사가 교과를 분석해 스마트 기기를 활용하면 더 효과적일 차시를 선별하고, 그 차시에 한정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용 빈도가 이전보다 늘어나며 자연스레 기기 활용 능력이 늘었다. 촬영, 동영상 편집, 작곡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며 정규 교육 과정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잠재력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든 결과물을 온라인으로 공유할 수 있어 국어 시간에 쓴 시를 활용해 음악 시간에 작곡하고, 미술 시간에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등 교과목 간 융합 수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앱을 활용해 6학년 학생이 작곡을 하고 4학년 학생이 작사를 맡고, 전교생이 함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작곡 대장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학교에서 디지털 기기 활용에 능숙해진 학생들이 부모에게 스마트 기기 활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교장 “스마트 스쿨은 미래형 교실 출발점”
현재 ‘농산어촌 유학’ 제도를 활용해 타 지역에서 온 유학생은 13명이다. 이들의 만족도는 높다. 원래 지역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힌 학생이 한 명도 없다. 2년 전 경기도에서 유학 온 6학년 박균형(12)군은 “내가 그린 그림이나 숙제가 바로 전자 칠판에 뜨는 게 재밌고 신기하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유학 온 정다애(12), 손가현(12)양도 전남 교육청의 지원 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부모님 차로 등하교를 하고 있다. 손 양은 “선생님이 한 명씩 봐주니까 더 집중이 잘된다”고 남은 이유를 밝혔다.
2012년부터 전국 98개 학교와 193개 교실에 스마트스쿨이 구축됐다. 올해는 이중 활용도가 높고 디지털 교육 환경 개선이 시급한 10개 학교에 더 많은 지원이 이뤄졌다. 천태초등학교도 포함됐다. 이들 학교엔 기존 스마트교실에 더해 두 개의 스마트교실이 추가로 설치됐고, 다양한 학습 콘텐트가 제공된다. 이로써 천태초등학교엔 과학 교실과 4학년, 6학년 교실 총 3곳에 스마트교실이 생겼다. 바람직한 스마트 기기 활용을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도 제공한다. 이현희 교장은 “2022년 삼성 스마트 스쿨은 미래형 교실의 출발점”이라며 “이곳에서 스마트 기기는 더 이상 게임만을 위한 도구가 아닌 디지털 교과서다”라고 말했다.
윤혜인 기자 yun.hy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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