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기능 무력화된 국가경찰위..행안부와 권한 충돌 예고
주요 정책은 장관이 보고받아
행안부 “수사 내용은 빠진다”
행정안전부가 15일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등을 담은 경찰제도 개선방안을 공식 발표하면서 행안부와 경찰청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 고위급 인사 결정 과정과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경찰 견제 역할을 맡았던 국가경찰위원회 사이 관계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경찰 고위급 인사다. 행안부는 이번에 총경 이상 인사 권한을 공식적으로 가져갔다. 이전엔 대통령 민정수석실 중심으로 경찰 고위 간부 인사안을 마련했다. 행안부 장관은 형식적으로 인사 제청을 하는 데 그쳤다. 앞으로는 행안부 장관이 실질적으로 경찰 고위 인사 권한을 갖게 된다. 행안부는 경찰과 대통령실의 ‘직거래’를 막고 인사 평가를 구체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본다. 반면 경찰과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장관이 인사를 통해 더 선명하게 통제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사실상 경찰국은 장관 직속으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기존 경찰 견제기구인 국가경찰위와 행안부의 권한이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지금까지 주요 정책이나 인사와 예산을 국가경찰위에 보고한 뒤 심의·의결을 받는 구조로 운영됐다. 앞으로는 행안부 장관이 법령 제·개정이 필요한 경찰 분야 기본계획 수립과 변경 등 주요 정책을 승인한다. 이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가경찰위 사전 심의·의결을 거쳐서 행안부 승인을 받는 형태로 간다”고 했다. 반면 국가경찰위는 현행 경찰법에 따라 경찰 관련 정책, 예산 등의 최종 의사결정권이 여전히 국가경찰위에 있다고 보고 있다. 국가경찰위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경찰청법에는 국가경찰사무에 관한 주요 정책사항 등은 국가경찰위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강행규정이 있다”며 “국가경찰위 권한과 역할이 침해되지 않도록 심의·의결 절차가 철저하게 준수돼야 한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이번 경찰제도 개선방안을 다음달 2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법제처에 따르면 통상 법령의 입법예고 기간은 40일이다. 행안부는 의견 수렴 기간을 최소화하면서 경찰 통제 방안을 마련한 셈이다.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을 ‘속전속결’로 처리한 명분은 경찰 권력의 민주적 통제였다. 경찰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정보경찰의 선거개입 의혹이 일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 국면을 거치면서 경찰 권력은 더 비대해졌다.
행안부는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를 꾸려 경찰국 신설 등의 정책을 급히 내놨지만, 경찰국 신설이 경찰을 통제할 적절한 대안이 아니라는 지적에 부딪혔다. 행안부의 경찰국 신설은 군사정권 시절 내무부(현 행안부) 산하 ‘치안본부-경찰국’ 시스템에 가깝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경찰이 정권에 종속돼 부작용이 많았던 이 같은 체제로는 과거보다 더 비대해진 경찰을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제도개선안에는 주요 정책을 장관이 보고받도록 한 내용이 담겼다. 행안부는 내무부 시절의 체제와는 다르고 “수사 관련 내용은 빠진다”며 선을 그었지만,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경찰을 통제할 여지는 남아 있다.
국가경찰위가 이날 낸 입장문에도 “포괄적이고 불분명한 보고의무를 규정해 장관이 치안사무에 관여할 여지를 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청와대가 직접 경찰을 통제하는 방식, 행안부가 경찰을 통제하는 옛 제도 모두 실패했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91년 출범한 경찰 행정 최고 심의기구인 국가경찰위 실질화는 오랫동안 경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방안으로 꼽혔다. 형식상 경찰 정책의 심의·의결 기능을 갖고 명맥만 이어온 국가경찰위를 정식 행정기관으로 인정해 경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하자는 이 대안은 문재인 정부가 운영한 경찰개혁위원회에서도 권고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경찰이 지난 30년간 국가경찰위 실질화에 미온적이었다. 경찰이 이번에라도 행안부에 국가경찰위에 대한 구체적 인원 확보·조직개편안 등을 적극 제안했다면 행안부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안부는 향후 민간위원 8명, 부처위원 5명으로 꾸린 경찰제도 발전위원회에서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 등을 추가로 논의한다. 경찰제도 발전위에서도 국가경찰위 운영 개선을 다루지만, 행안부가 사실상 국가경찰위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상황이어서 실질화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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