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헌법 개정' 산 아베보다 죽은 아베가 세다
2022년 7월8일 오전 11시30분께, 일본 나라현 야마토사이다이지역 광장에서 아베 신조(67) 전 일본 총리가 피격당해 숨졌다. 이틀 뒤인 7월1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유세 연설을 하던 중이었다. 범인은 나라현에 거주하는 해상자위대 출신의 41살 야마가미 데쓰야.
야마가미 데쓰야는 범행 동기에 대해 “어머니가 통일교에 빠져 집안의 전 재산과 아버지 유산으로 물려받은 건설회사의 자금까지 모두 (통일교에) 헌금해 집안이 풍비박산됐다. 처음엔 통일교 지도자를 노렸으나 여의치 않아 통일교가 일본에 퍼지게끔 일조한 아베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가 피격당해 위중하다는 뉴스 속보가 보도되자 일본열도는 큰 충격에 빠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일이 손에 안 잡힌다는 직장인들의 호소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일본 신문사들은 호외를 발행했고, 각 방송사는 모든 정규방송을 중지하고 즉각 긴급 특집방송으로 사건 현장과 총리 관저, 범인이 구금된 나라현 경찰서를 시시각각 생중계했다. 이어 같은 날 오후 5시3분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각 방송사는 아베 전 총리의 일대기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두 차례(2006년 9월~2007년 9월 1차, 2012년 12월~2020년 8월 2차)에 걸쳐 8년9개월 동안 최장기 집권한 절대적 권력자다. 그의 죽음 이후 7월10일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7월12일 장례식을 치른 일본 정가는 겉으로는 ‘태연자약’해 보인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선 벌써 총성 없는 파벌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아베 전 총리는 자민당 내에서 우익 성향 정치인들의 구심점이자 각 파벌을 아우르는 좌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2020년 총리직에서 퇴임한 뒤에도 스가 요시히데 전 정권과 기시다 후미오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내각의 인사권까지 좌지우지하는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6명 중 누가 아베의 후계자가 될 것인가
실제 기시다 현 정부의 얼굴이자 입이라고 할 수 있는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아베 전 총리가 회장으로 있는 세이와카이(清和会)의 사무총장을 지낸,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이다.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아베의 친동생이다. 아베와 성이 다른 것은 동생이 외갓집으로 양자를 갔기 때문이다. 이 밖에 현 내각 각료에 아베 전 총리 측근이 꽤 여러 명 있다. 그뿐인가. 2022년 들어서는 여차하면 아베 전 총리가 다시 제3차 총리로 컴백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일본 정가에 파다하게 퍼졌다. 그만큼 아베는 총리직을 내려놓았음에도 실제적인 권력은 그대로 쥐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피살로 공석이 된 자리를 과연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당연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7월11일치 <마이니치신문>은 자민당 최대 파벌인 세이와카이(93명)의 수장이었던 아베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아베파의 정치적 영향력 저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아베의 부재로 보수 지지층이 떠나 기시다 정권의 지지율도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동안 아베파인 세이와카이를 주축으로 기시다파(44명), 아소파(49명), 모테기파(54명)가 연립내각 형식으로 보수 지지층을 결속해왔지만, 이제 가장 강경파이던 아베가 숨짐으로써 앞으로 일본 정국은 불투명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편, 파벌의 수장을 잃은 아베파의 멤버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7월12일치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니시무라 야스토시 전 경제재생상,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 후쿠다 다쓰오 자민당 총무회장, 시모무라 하쿠분 전 자민당 정조회장, 세코 히로시게 참의원 간사장,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등 아베파 핵심 간부들이 7월11일 모임을 열고 “파벌로서 이후에도 결속해서 행동할 방침”임을 서로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 모임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서로 탐색전을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 6명 중에 아베 전 총리의 후계자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니시무라, 하기우다, 시모무라 셋 중 한 명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한다. 아베 전 총리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이 6명이 본격적으로 후계자 쟁탈전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고 이 정치평론가는 설명한다. 그래서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후계자가 과연 누가 될 것인지 일본 언론의 관심은 뜨겁기만 하다.
개표 상황을 지켜보던 총리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
“될 수 있는 한 개헌 발의를 할 수 있게끔 빠르게 진행하겠다.”
7월11일, 기시다 총리가 돌연 기자회견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인 개헌을 서두르겠다고 발표했다. 자위대를 전쟁 가능한 육해공 군대로 격상하고 그것을 헌법에 명기하고, 전장에서의 교전권 불인정을 교전 가능케 하고, 더 나아가 탄도미사일 같은 공격에 자위대가 선제공격할 수 있는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다. 사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내에서도 대표적인 온건파로 알려진 정치인이었다. 아베 전 총리가 생전에 공공연히 개헌해서라도 일본을 군사대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극우적인 야심을 드러낼 때마다, 기시다 총리는 “검토해보겠다”는 말로 아베의 압력을 비켜 갔다. 그런 기시다 총리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이른 시일 내에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가장 놀란 것은 일본 내 진보언론과 국민이다. 불과 수시간 전만 해도 과연 아베의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한 보도가 부각되고 있었다. 개헌 문제는 아베의 장례식이 끝나고 충격 여파가 어느 정도 가라앉을 때쯤 대두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이 있었다. 7월10일 밤 자민당 본부에서 참의원 선거 개표 상황을 지켜보던 기시다 총리는 기자단에 앞으로의 일정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선거 결과를 받아들여서 이후 정치 일정을 생각하고 싶다. 그 위에 내각 인사 등의 타이밍을 생각해나가겠다. 개헌에 대해서는 당이 거론하는 네 항목을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하면서 다른 당의 찬동을 얻기 위한 부분으로부터 발의해나가겠다.”
그러면서 이르면 8월 초반에 내각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개헌론에서 지극히 원론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기시다 총리를 믿은 이유는 또 있었다. 기시다 정부가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잃어버린 30년’ 병을 앓는 일본에서 2022년부터 물가가 급상승했다.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따른 에너지 파동으로 인한 물가 상승은 국제적으로 겪는 공통 사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저물가 지속으로 서민의 생활이 꽤 안정적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 국민은 별다른 사회적 불안 없이 그럭저럭 ‘잃어버린 30년’을 버텨올 수 있었다. 그런데 2022년 들어 슈퍼에 가기 무서울 정도로 생활필수품 가격이 올라 국민의 불만이 점점 커지던 참이었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최근 급증하는 코로나19 감염 대책까지, 기시다 정부 앞에는 당장 해결해야 문제가 가득했다.
개헌에 필사적인 강경파의 압력?
일본 언론은 앞으로 3년간 전국적인 선거가 없어, 기시다 총리가 ‘황금의 3년’을 확보했으며, 이는 곧 기시다 총리의 정치 색깔과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시간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군사대국을 꿈꾸며 방위비 증강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내각 인사까지 자신의 측근을 기용하라고 압력을 넣었던 아베 전 총리가 숨졌기 때문이다. 대기업 성장 중심의 ‘아베노믹스’ 정책을 계승하고, 기시다 총리의 의지대로 정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한껏 기대를 나타내는 언론도 있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 느닷없이 기시다 총리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개헌 이야기가 튀어나온 것이다. 일본 국민의 65% 이상이 기존 평화헌법 개헌을 반대해왔다. 2015년 일본 자국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집단적 자위권 법안’을 통과시킬 때는,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일본 전역에서 10대부터 70~80대 노년층까지 동시다발로 100만 명 넘는 시민이 항의시위를 했다. ‘전쟁과 무력 위협 및 행사 영구 포기’ ‘육해공군 미보유 및 국가 교전권 불인정’을 명시하는 일본 헌법 제9조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결국 당시 아베 정부가 추진한 대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평소 자신의 의견을 잘 피력하지 않는 일본인의 성향에 비춰볼 때 전국에서 100만 명 넘는 시민이 동시다발로 시위했다는 사실은 일본 국민에게 ‘평화헌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을 확실하게 심어준 계기가 됐다.
그래서 개헌을 반대하는 일본인들은 아베 전 총리의 집요한 개헌 압력에 ‘검토해볼 사항’이라는 말로 개헌을 회피해온 기시다 총리에게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다. 이제 그 ‘희망’마저 사라진 것이다.
일부에서는 아베 전 총리의 비극적인 피격 사건이 국민에게 연민을 사는 점을 들어, 아베의 유훈을 받들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자민당의 강경파가 기시다 총리에게 압력을 가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평화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국민이,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 아베에게 애틋한 감정에 빠져 있을 때, 그의 생전 필생의 염원이던 개헌 작업을 밀어붙이자고 압력을 가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에서 거론한 아베파 6명의 모임도 예사롭지 않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아베파의 영향력 저하와 동력을 막기 위해서라도 개헌 추진에 필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기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헌을 추진할 경우, 일본은 자위대가 아닌 육해공 군대를 가진 국가로서, 만에 하나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동해로 발사해 일본 해상에 근접하게 떨어질 경우, 일본 정부의 판단에 따라 북한에 군사적인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 즉, 한국 정부의 의사와 관계없이 얼마든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잖아도 자민당 내 일부 극우 정치인과 극우단체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경제불황을 한 번에 끝낼 수도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해왔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일본이 군수물자 조달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한 사실을 그리워해서다.
한반도 전쟁으로 경제불황 끝낸다는 극우
결국 아베 전 총리의 예기치 않은 죽음이 역설적이게도 개헌을 앞당기는 명분이 될 조짐이 보인다. 이런 현상은 한-일 관계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의욕을 가지고 손을 내민다 해도 진정한 한-일 관계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역사문제뿐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느냐 마느냐 하는 군사문제가 될 테니까. 한국인도 일본 헌법 개정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쿄(일본)=유재순 JP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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