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전문] "'남의 전쟁'이란 없다..트라우마 치유에 한국 기술력 필요"
올레나 젤렌스카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과의 인터뷰는 처음 기획한 지 약 2달 만에 성사됐습니다. 40분간 이어진 인터뷰에서, 젤렌스카 여사는 전쟁에 맞닥뜨린 자신의 심정부터 가족 이야기까지 담담히 털어놨습니다. 또, 전쟁 도중이지만 국가와 국민 마음을 재건하는 데 열의를 보였습니다.
인터뷰 중간중간 젤렌스카 여사는 미소를 짓기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추가 질문에도 흔쾌히 답했습니다. 아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젤렌스카 여사는 "물에 빠지면 죽기 아니면 헤엄치기다. 우리는 끝까지 헤엄쳐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비밀병기'라 불리는 젤렌스카 여사와의 인터뷰 전문을 싣습니다.
- 먼저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시작 전에, 이번 전쟁으로 희생당한 모든 우크라이나인에게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인터뷰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알고자 하시는 분들께 설명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 지난달 3일 미국 ABC와의 인터뷰 도중 공습경보가 갑자기 울리는 장면이 한국에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오늘도 우크라이나에 폭격이 계속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지금 계신 곳, 상황은 어떤가요.
"네, 그때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는 일이 있었죠. 오늘 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사실 그때보다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하르키우가 안전하다, 키이우 식당들이 문을 열었다, 대중교통을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안전하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고 선동입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우리 국민은 정상적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우크라이나 경제에 보탬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어떤 도시도 완전히 안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데사, 하르키우, 미콜라이우 등의 도시가 미사일 폭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아침, 낮, 저녁…. 요즘은 시간에 상관없이 민간인 주거시설이 매일 폭격을 맞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 않습니다."
- 참담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시아, 그 중에서도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말씀드린 것처럼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알리고 전쟁에 대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 언론이 이 전쟁을 진실하게 보도하며 한국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실한 보도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군사적 전쟁뿐 아니라, 정보전도 함께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러시아의 정보전에 강렬히 맞서야 합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왜곡해 이용하려고 합니다. 러시아는 프로파간다에 정말 많은 돈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파간다는 자국민들만 겨냥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제게 오늘의 인터뷰는 매우 중요합니다."
- 우크라이나와 7,000km 떨어진 이곳 한국에도 매일 전쟁 상황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길어지고 있어서 우려가 커지는데요. 매일 아침 오늘도 또 하루의 전쟁이 이어진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전쟁이 길어지고 있다는 걸 체감할 때 어떤 생각 또는 각오를 하시나요.
"전쟁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이 전쟁 뉴스에 ‘정보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누구나 전쟁 소식보단 연예인이나 패션 관련 뉴스를 보는 걸 더 좋아할 겁니다. 하지만 이 전쟁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은 비록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전쟁 때문에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가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크라이나 곡식 수출이 끊겨서 세계 곳곳에서 식량난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정보 전선'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지금 정말 어렵고 힘듭니다. 하지만 물에 빠지면 죽거나 헤엄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헤엄쳐 나갈 겁니다."
- 끝까지 나아가겠다. 이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부군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고요. 영부인께서도 세계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데요. 전쟁 초기에 이렇게 역할 분담을 하자, 이런 대화를 젤렌스키 대통령과 나누신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여사님의 역할,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건가요.
"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사실은 저와 제 남편은 가정생활에서도 역할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할 줄 아는 일을 해 왔습니다. 살다 보면 해 나가야 하는 일들이 생기고, 그 일들을 해내게 되잖아요. 영부인의 역할은 보통 인도적·사회적 영역에 집중돼 왔습니다. 전쟁이 발발한 나라의 영부인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행동요령을 가르쳐 주는 매뉴얼도 없습니다. 제 남편이 대통령으로 해야 할 역할을 다하는 동안, 저는 전쟁 첫날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암 병동이 폭격당한 끔찍한 사진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시급히 구조해야 했고, 550명의 어린이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외로 대피시켰습니다. 이처럼 매일 제 도움이 필요한 것이 새로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여성과 아이들에게 특히 집중하셨습니다. 특히 이들에게 지원과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상황에서 가장 취약한 아동에 대해 먼저 답변하고 싶습니다.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지금 겪는 상상해 보세요. 우리 아이들도 한국 아이들처럼 평화 속에서 자라면서, 한국 아이들처럼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랬던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K-POP 연예인들의 사진이 있는 공책에 러시아 점령 하의 생활에 대해 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제 전쟁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아이들이 이 상황을 버틸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줘야 합니다. 이것은 어른의 의무입니다."
"여성들에 대해선, 굳이 남성들과 특별히 다르게 얘기할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 여성들은 이 전쟁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남성들과 나란히, 국가를 위해 아주 많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우크라이나 군에는 37,000명의 여성이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42,000명으로 늘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지키고자 하는 여성들의 수가 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죠. 여성들은 꺾을 수 없는 애국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에 수많은 여성 장교들이 있고 의료진 50% 이상이 여성입니다. 사업가 중에도 50%는 여성입니다. 교사, 의사 중 여성이 많습니다. 또한, 전쟁 이후 여성들의 책임이 늘었습니다. 이제는 가족, 아이들을 혼자 책임져야 합니다. 6백만 명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해외 피난민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은 여성들과 아이들이죠. 피난 간 여성들은 전쟁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했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 여성들이 이국의 땅에서 안전하고 정상적으로 지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에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요. 그래서 저는 제 외교적 역할을 발휘해서 피난 간 여성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 전쟁 종료를 위한 협상을 시작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나오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게 전쟁을 끝낸다는 것 무엇을 의미합니까? 전쟁 종료의 필수 조건은 무엇입니까?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전쟁의 종료란, 침략자들을 완전히 쫓아내고 포로로 잡힌 모든 우크라이나인을 해방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양보할 수 없는 조건입니다."
- 기존의 우크라이나 영토를 전부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신 거지요.
"한 가지 비교를 해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한 비교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여러분의 집에 강도가 들어왔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 강도는 여러분의 집을 부수고 여러분을 폭행합니다. 여러분은 당연히 저항할 겁니다. 끝까지 저항하려고 하시겠죠. 그런데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강도와 대화를 해 보라”고 하면서, 강도의 기분을 진정시켜 보라고 합니다. 강도에게 거실을 양보해주고 나머지 방에서 지내라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터무니가 없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 식으로는 범죄자를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강도를 여러분의 집에서 쫓아내는 것이 유일한 해답입니다."
- 조금 전 트라우마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그 부분을 좀 더 깊이 있게 얘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여사님의 상황을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전쟁 발발 후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언제 가장 두려우셨나요.
"전쟁이 시작했을 때가 정말 공포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유럽에서 21세기에 이런 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수많은 끔찍한 일들의 순위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부차, 마리우폴 등에서 있었던 러시아의 만행보다 더 끔찍한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만행에는 끝이 없었습니다. 매일 더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제 차시우 야르(Chasiv Yar)라는 마을이 미사일 폭격을 당해 민간인 36명이 숨졌습니다. 그중 1명은 아이였습니다. 구조 작업이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9명을 구조했지만, 잔해 아래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남아 있는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런 일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매일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제 고향 도시인 크리비 리흐(Kryviy Rih)에서 뛰어난 체조 선수였던 소녀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매일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들 뒤에는 실제 ‘사람’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선 이런 끔찍한 일을 경험해 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비극이 없는 가족이 없을 겁니다. 이런 일에 익숙해질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편안하게 잠을 들 수 없습니다."
- 그렇다면,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도 지금처럼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 제가 침착해 보인다고 하시니, 제 노력의 성과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제게 힘이 되는 것은 바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입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단결되는 모습, 포기하지 않고 각자 할 일을 하는 모습들이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저도 우리 국민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함께라면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 서로가 서로한테 힘이 되는 상황이군요. 가족 이야기도 여쭤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두 자녀가 있습니다. 전쟁 전후로 어떤 것이 가장 달라졌는지, 아이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제 가족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제 아이들은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그렇듯이,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이 전쟁을 겪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아이들이 전쟁을 겪은 세대가 되는 것을 바라진 않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전쟁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난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 아이들은 다른 우크라이나 아이들과 똑같습니다. 친구들과 못 보게 되었고 이야기도 나눌 수 없습니다. 2월 이후로 학교도 정상적으로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9월 1일에 새 학기가 시작하는데 정상적으로 학교에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제 딸이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려 하는데요. 딸이 9월부터 대학교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지도 지금은 알 수가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에겐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중요한 시점이 전쟁이라는 아주 힘든 상황과 겹친 것이죠. 이런 생각을 하니 참으로 마음이 너무 무겁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고 우리 나라에 평화가 와서, 가족들이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남녀 노소 관계없이 이 전쟁으로 상당한 트라우마를 장기간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요. 지금 전쟁 후 트라우마는 전쟁 이후의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람들한테 긴 기간 영향을 줍니다. 최근에 이런 트라우마 해결을 위해 WHO(세게보건기구)와 세계 각국에 지원을 요청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의 트라우마를 위해서 어떤 대책이 마련될 예정인가요
"이 질문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문제는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저도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 60%는 만성적인 심리적·정신적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국민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는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미뤄선 안 되며, 지금부터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는 포괄적인 전 국민 정신건강 및 사회생활 복귀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불안감, 두려움, 스트레스를 느끼는 모든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 그 도움을 어디에서 어떻게 요청해야 하는지를 알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빠르고 효과적이며, 정말 ‘도움이 되는 도움’이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경찰, 구조대원, 소방관 등에게 트라우마 환자에게 ‘정신적 응급조치’를 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교사들도 준비되어야 합니다. 학교에 돌아가게 될 아이들은 더는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죠. 아이들이 침착하고 안정된 심리상태를 유지하도록 교사들이 도와줘야 할 겁니다. 부모에게도 교육이 필요합니다. 정신 건강은 중요하며,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꼭 요청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정신 건강은 육체적 건강만큼 중요하다는 교육 말입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힘들어도 참는 것에 익숙합니다. 정신적 문제를 외면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참을성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참고 외면해선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 프로그램은 매우 포괄적이어서 제가 몇 시간 동안 기자님께 설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방금 제가 아주 간략하게 소개해 드린 겁니다."
- 지금부터 이런 노력을 시작하시는 건, 전쟁이 끝난 다음에 이런 노력을 시작하면 늦기 때문이겠죠.
"사실 이런 프로그램은 전쟁 전에도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나라에 포괄적인 정신건강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가 이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다른 국가들의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우리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전 세계는 코로나 때문에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국가가 자국민들의 정신건강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죠. 우리는 이번을 계기로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국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힘들고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시범으로 개발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 전쟁이 끝나고 나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끔찍한 일들이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는 언제나 미리 해야 합니다.
- 그 노력에 많은 국민이 도움을 받을 거라 믿습니다. 지금까지는 심리적 재건을 이야기한 것 같아요. 이제는 국가의 재건에 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달 초 스위스 루가노에서 우크라이나 재건을 논의하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재건 시 어디에 가장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루가노에서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가 대규모로 열렸습니다. 다양한 재건 프로젝트 제안도 많았습니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재건이든 개발이든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재건 과정에 우리 국민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지뢰 등으로 장애를 입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우크라이나에 장애인들이 많아질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로 재건해야 합니다. 전쟁 전과 똑같이, 아니 그보다 더 잘 살 수 있도록 우리나라를 재건해야 합니다. 그래서 재건과정의 중심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해외로 피난 간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일하고 성장하며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그런 우크라이나로 피난민들이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물어보신다면 제 대답은 바로 ‘사람’입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 그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나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질문 감사합니다. 우크라이나에선 한국이 ‘경제적 기적’을 일으킨 나라라고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매우 발전했고 잠재력이 높은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 발전의 노하우와 경험을 공유해 주시다면 우크라이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제가 담당하고 있는 정신건강 지원 프로그램의 경우에 모바일 앱 개발이 필요합니다. 앱을 통해 스트레스 상황에서 도움을 신속히 요청하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요. 한국이 이런 앱을 개발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 이번 전쟁을 계기로 우크라이나라는 나라 우크라이나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도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까 지정학적 상황이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지금 상황을 남 일처럼 보지 않는 경향도 있는데요. 한국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흥미로운 질문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단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단결되어, 함께 서며, 자신의 것을 소중히 하고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가짜 뉴스에 흔들리면 안 됩니다. 가짜 정보와 진실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모든 나라는 미래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그 나라의 국민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도 이 사실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대한민국이 늘 평화롭게 살 것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저의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통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전해주시죠.
"한 가지를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쟁에 익숙해지지 마세요. ‘남의 전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전쟁은 항상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전쟁을 정당화하는 이야기는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민간인과 아이들을 죽이는 행위를 정당화해서 안 됩니다. 러시아가 시작한 이 전쟁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벌써 식량 위기가 닥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에만 영향을 미치는 전쟁이 아닙니다.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전쟁입니다. 윤리적인 면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지금 전 세계의 윤리 기준을 바꾸려고 합니다. 우리가 러시아의 ‘윤리’를 받아들이면, 세계가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세요.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우리가 이러한 만행들을 받아들이고 정당화하는 세계를 생각해 보세요. 저는 그런 세계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국적에 상관없이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러시아가 저지르고 있는 만행은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 생각하실 거로 믿습니다."
- 오늘 준비된 질문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언어는 서로 다르지만,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감동적이기도, 인상적인 부분도 있었습니다. 보도를 잘 준비하도록 하겠고요. 마지막으로, 따님이 이제 대학교 입학하신다고 하셨는데. 여사님도 대학교 신입생이던 시절이 많이 떠오르실 것 같아요. 그때와 상황이 너무 다르다는 게 슬프기도 하실 것 같고요. 번외 질문으로 본인의 신입생 시절과 따님의 대학 입학을 비교해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딸이 지금 매우 힘들 거로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하고 잠이 안 왔는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제 삶은 입학시험에 맞춰서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우선 합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후에 일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합격은 저에게 유일한 목적이었고 제 삶의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딸을 생각하면 저보다 지금 얼마나 더 힘들까 라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우리 딸은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내일 무엇을 할 건지, 어떻게 그 다음 하루를 살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딸은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계속 입학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딸을 항상 지지하고 딸이 잘되기를 기원하죠. 우리 딸은 탈락할 걱정은 안 하는 것 같습니다. 대신 다른 고난을 극복해야 합니다. 바로 전쟁이죠. 정상적인 젊은이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딸이 참 안쓰러워요. 18살 여자아이가 데이트도 못 하고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같은 학번 동기들을 만나지도 못 하는 상황이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아마 9월 새 학기는 다시 온라인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딸이 사회진출을 좋은 상황에서 했으면 좋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이렇습니다."
신지혜 기자 (ne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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