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심판대 오른 '사형제'.."생명권 침해" vs "응보적 정의"

김희진 기자 2022. 7. 14. 19:5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사형제 헌법소원 사건 공개변론’에 자리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사형제의 위헌성을 따지는 공개변론이 1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사형제가 위헌 심판대에 오른 것은 사상 세 번째이고, 2010년 이후 12년 만이다. 헌법소원 청구인과 법무부 대리인들, 참고인들은 헌법재판관들의 질문에 답하며 5시간에 걸쳐 열띤 공방을 벌였다.

헌재는 이날 오후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사형을 형벌 중 하나로 규정한 형법 제41조 1호와 존속살해죄에 대해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형법 제250조 2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공개변론을 열었다. ‘부천 부모 살해 사건’으로 2019년 무기징역형이 확정된 윤모씨(34)가 검찰의 사형 구형에 반발해 낸 헌법소원 사건이다.

범죄자의 생명권, 제한할 수 있나

이날 변론에서 청구인 측은 “법·제도와 국가 이전에 사람에게 주어진 생명권을 국가가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해도 사형은 생명권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하는 과도한 형벌이라는 것이다. 청구인 측 김형태 변호사는 “생명이라는 자연이 부여한 현상에 대해 국가가 관여할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국가가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데 (국민은) 누구라도 동의한 적 없다”고 했다.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응보는 현대사회에서 지양되는 형벌 목적인 데다 절대적 종신형 등 기본권을 덜 침해하는 대안도 있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측은 ‘응보적 정의’를 내세우며 생명권 역시 제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맞섰다. 법무부 측 대리인은 “헌재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선 국가는 개인의 생명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이미 설시했다”며 “사형제로 인해 불가피하게 침해되는 (범죄자의) 사익은 선량한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공익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사형이 확정되는 사건은 극악한 ‘반인륜적’ 범죄에 한해 1년에 2건 정도에 그친다면서 유족의 울분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의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형제의 범죄 예방 효과는?

사형제를 유지할 경우 강력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지를 두고도 공방이 벌어졌다. 청구인 측은 사형제의 범죄 예방효과가 실증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1930년대부터 사형집행과 범죄 위하력(두렵고 무서운 형벌로 위협해 일반인을 범죄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힘)에 대해 연구해온 미국도 ‘사형 집행으로 살인사건이 줄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고, 범죄는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아 인과관계 자체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했다.

청구인 측 참고인인 허완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태까지 인류는 사형제의 위하력에 대해 실증적으로 증명한 적이 없다”며 “헌법적 정당성과 관련되는 이런 부분을 국가가 입증하지 못한다면 사형제는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 측 대리인은 “사형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고려한 궁극의 형벌로, 범죄예방 기능이 크다”고 반박했다. 1965년 영국이 사형제를 폐지한 후 20년간 발생한 살인죄가 폐지 이전 20년에 비해 60% 증가했고, 계획적인 살인 비율이 늘어났다는 통계를 근거로 내세우기도 했다.

재판관들은 참고인으로 직권 선정한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형제의 범죄 예방효과를 둘러싼 논의와 연구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고 교수는 해외 연구사례 등을 소개하며 “현재 시점에서 사형제의 범죄억지력에 대해 실증분석에 따른 일반적 결론을 끌어내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사형제의 범죄억지력을 규명하려면 통계적 분석을 비롯해 잠재 범죄자가 처벌강도나 가능성, 처벌사례 등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에 대한 다각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들이 1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재동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사형제’의 위헌 여부 판단을 위해 공개 변론을 열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김창길기자
사형제가 ‘위헌’이 되는 날이 온다면…

“사형제에 대한 위헌 결정이 선고되는 경우를 가정적으로 전제하고 묻습니다.” (이선애 재판관)

이날 변론에서 재판관들은 사형제를 위헌 결정할 경우 불거질 문제와 파급 효과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물었다. 헌재가 이번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사형’이 포함된 법 조항 100여개에 어떤 효력을 미치는지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또 미집행 사형수 55명이 재심을 청구할 경우 구금상태는 유지될 수 있는지, 대체 형벌을 담은 법률이 제정될 때까지 미집행 사형수 구금을 유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달라고 양측 대리인에 요청했다.

사형제 폐지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절대적 종신형’의 구체적 정의와 대체가능성, 부작용도 다뤄졌다. 재판관들은 입법적·사법적 방법으로 사형제 폐지를 결정한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도 양측 대리인과 참고인들에게 물었다.

사형제 존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공개 변론이 열린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사형폐지범종교연합 등 종교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인권법 제정과 함께 사형제를 폐지한 영국, 사형폐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후 헌법에 명문화한 프랑스 등이 입법적 방법을 택한 사례로 소개됐다. 이와 달리 사법적 방법을 택한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는 사형을 규정한 모든 법률 조항을 심판대상으로 확대해 단 한번의 위헌결정으로 사형제를 폐지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대체입법이 마련될 때까지 사형 확정자의 구금 등을 명령했다.

이석태 재판관은 “현재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만큼 다양한 입법을 고려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본다”며 “이같은 부분을 비롯해 종합적으로 고려한 검토의견을 서면으로 내달라”고 말했다. 사형제 위헌 결정의 현실적인 파급력과 대안 등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헌재는 1996년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2010년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사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 사이 정부가 1997년 12월30일을 마지막으로 25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국제엠네스티는 한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한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하려면 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해야 한다.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해 이석태·이은애·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사형제 폐지 입장을 밝히거나 사형제 폐지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