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가 입었던 당의·스란치마에 민족의 아픔 밴 듯
빼앗기고 전쟁중 불법반출됐던 유물
기증받고 사들이고 회담서 돌려받아
'호조태환권 원판' 등 40점 한 자리에
조선시대 '나전 매화, 새, 대나무 상자'
왕들의 글씨 탁본 '열성어필' 첫 공개
◆고국으로 돌아온 유물
서울 종로구 효자로, 경복궁 경내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 같은 환수문화재를 모은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을 최근 시작했다. 문화재청이 환수문화재만을 한데 모아 전시를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설립 10주년을 기념해 지난 10년간 활동을 돌아보기 위해 기획됐다. 환수문화재 약 40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장 각 유물들은 저마다 반출과 환수의 기막힌 서사를 품고 있다. 전쟁 중에 유출, 도난 등 불법거래, 자발적 기증 등 사연이 가지각색이다. 국가지정문화재 국보인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은 일제가 유출했으나 민간과 정부가 힘을 합쳐 2006년에 환수했다.
보물인 ‘국새 황제지보’ ‘국새 유서지보’ ‘국새 준명지보’는 6·25전쟁 때 도난당했다가 한·미 공조로 그 존재를 찾아내면서 2014년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되돌아온 환수문화재다.
‘호조태환권 원판’은 6·25전쟁 때 미국으로 불법 반출됐다가 양국이 수사 공조를 통해 국내로 환수했다. 호조태환권 원판은 사그라진 근대화의 꿈이 담긴 유물이다. 1892년 고종이 근대적 화폐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신식화폐조례를 공표하고 태환서를 신설해 구화폐를 신화폐로 교환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호조태환권은 이때 태환서에서 구화폐를 회수하기 위해 발행한 교환권이다. 비록 유통되지 못했지만 조선이 만든 최초의 근대적 화폐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문인석’ ‘면피갑’은 소장자가 자발적으로 기증하는 방식으로 들여온 환수문화재여서 의미 깊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에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문인석은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해당 유물이 불법 반출된 것임을 확인하고 스스로 반환을 결정해 2019년 3월에 돌아왔다. 면피갑은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이 2018년에 조건 없이 기증했다. 박물관 측은 “매우 드문 사례”라고 강조했다.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게임회사 라이엇게임즈가 한 역할이다.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로 유명한 이 회사가 2013년부터 꾸준히 기부한 누적 자금이 22억원을 넘는다. 이 자금을 바탕으로 유물이 해외 경매에 나왔을 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낙찰받을 수 있었다. 현재 재단은 22억원 중 약 절반을 문화재 환수 및 해외 소재 문화재 복원 지원 등에 사용하고 절반을 기금으로 갖고 있다.
라이엇게임즈 후원으로 환수한 유물은 미국에서 2013년 환수한 ‘석가삼존도’, 독일에서 2019년에 환수한 ‘척암선생문집 책판’, 2019년에 미국에서 환수한 ‘백자이동궁명 사각호’, 2019년 미국에서 환수한 ‘중화궁인’, 2018년 프랑스에서 환수한 ‘문조비신정왕후 왕세자빈 책봉 죽책’으로 총 5점이다.
나라 밖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2011년 대규모 환수로 인해 관심이 환기됐다. 당시 프랑스에서 외규장각의궤 297책을, 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시대 도서 1205책을 환수했다. 이를 계기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012년 설립돼 2013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재단은 지금까지 총 6개국에서 784점을 환수했다. 기증받은 사례는 680점, 재단이 매입한 사례는 103점, 영구대여를 받은 사례가 1점이다.
재단 김계식 사무총장은 “직원들이 지난 10년간 세계 곳곳을 누볐다. 비행거리가 629만㎞, 지구 160바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국외 소재 문화재를 연구해 온 해군사관학교 군사전략학과 김경민 교수는 이번 전시 계기 기고문에서 “국제사회에서 문화재는 단지 약탈이나 훼손 시 문제를 넘어 정체성, 곧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것과 같은 인권 차원의 문제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상대국의 반환 불가 입장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그 문화재에 대한 해당 국가의 높은 관심, 역사적 지식, 이를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환수 노력”이라며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와 그 결과물인 유물에 가치를 부여하고 소중히 여기는 인식이 문화재 환수의 장기적 노력을 이끌어 가는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9월 25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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