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기업 사외이사 교수나 前공무원 일색, 해외 글로벌 기업의 CEO를 영입하라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화두다. 특히 환경(Environment)과 사회적 가치(Social)는 한국에서도 기업 경영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많은 기업이 자체 생산 공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고, 스팀과 전기 사용량을 줄이거나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바꾸려고 노력 중이다. 본인들의 구매 품목이나 고객들에게 공급한 제품의 탄소 배출까지 신경 쓰는 기업도 많다. 또한 법적 절차뿐 아니라 사회적, 윤리적 가치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기업 의사 결정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지배구조(Governance)만은 유독 변화가 느리다.
지배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사회 구성과 역할이다. 이사회의 역할은 크게 4단계로 진화한다. 1단계는 절차적 정당성의 보장, 2단계는 신의와 성실에 기반한 감독과 통제, 3단계는 리스크 관리, 4단계는 가치 창출이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기업은 아직 1단계에 머물러 있다. 대기업 오너 또는 최고경영자(CEO) 마음대로 의사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절차적 정당성’을 제공하는 데 그친다. 아직 2단계인 실질적인 감독과 통제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경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통찰력을 요구하는 3단계나 4단계는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다.
국내 일부 대기업은 오너 스스로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의지에 따라 이사회의 역할을 강화하려 하지만, 의지만으로 실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능력 있는 사외이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스타벅스 사외이사에는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앤디 캠피언 나이키 최고 재무책임자(CFO), 이사벨 게 마헤 애플 중국 총괄 임원 등이 포진해 있다. 업종은 다르지만 글로벌 산업 현장에서 경험하고 성과를 낸 최고경영자들이 스타벅스의 가장 중요한 경영 안건에 대해 의사 결정을 한다. 인텔은 사이버 보안이 중요한 기업 위험 요인으로 대두되자 아마존 출신의 관련 임원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미국의 생활용품 기업 P&G는 이사회 산하에 ‘혁신과 기술 위원회’를 설치해 소비자 가치 중심의 미래 지향적 포트폴리오를 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비교해 국내 대기업 사외이사 풀은 전직 공무원, 대학교수, 언론인이 대부분이다. 근래 들어 이사회의 역할이 커지고 실질적인 권한도 늘어나면서, 많은 사외이사들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배워서 하기에는 국내 대기업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가 너무 복잡하다. 국내 이사회의 역할이 가치 창출에 이르지 못하고 기껏해야 1, 2단계인 절차적 정당성과 감독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사외이사 풀을 국내에 한정 짓지 말고 해외로 확대해야 한다. 기존 국내 대기업 이사진들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역할을 수행하려 노력하고 있으나 이사회가 1, 2단계에서 4단계로 빠르게 도약하려면 전문성을 가진 이사진으로의 ‘급격한’ 교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적과 관계없이 해외에서 폭넓은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을 영입해야 한다. 기업 오너와 최고 경영자들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글로벌 기업들의 최고 경영자를 사외이사로 초빙해야 한다. 온라인 미팅이 활성화된 오늘날 공간적인 거리는 더 이상 제약이 아니다.
일본의 히타치와 미쓰이, 대만의 TSMC, 중국의 레노보 등 일본과 중화권 글로벌 기업들은 해외 글로벌 기업의 최고 경영자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면서 이사회의 역할을 업그레이드했다. 이러한 사외이사들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해 직접적이고 객관적인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한 대답을 요구함으로써 기존의 폐쇄적인 이사회 논의와 의사 결정의 품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일례로, 적자 기업에 관행적으로 계속 투자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업 매각 결정을 유도하기도 했다.
국내 기업들 간에 사외이사 품앗이를 하는 것도 방안이다. 국내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은 이미 글로벌 최고 수준이다. 이들이 경쟁 관계에만 머물지 않고 서로 다른 기업의 사외이사로 활동한다면 개개 기업들의 이사회 수준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사외이사 선임 규정을 고쳐야 한다. 또한 다른 대기업의 사외이사직을 맡지 않으려는 기업들의 관행 또한 신속히 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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