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없어 1층에서 '피의자' 장애인 조사하겠다는 경찰..전장연 "경찰이 법 지키면 다시 오겠다"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벌인 출근길 지하철 시위 등으로 경찰 수사를 받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이 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으려다 취소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있는 경찰서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이 법을 지키면 다시 오겠다”고 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14일 오후 서울 혜화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인 경찰서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며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관이 불법을 저지르고 장애인 차별행위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장연 등 장애인단체 활동가 50여명은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사법처리하겠다’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발언 이후 서울지역의 6개 경찰서(혜화·종로·용산·남대문·영등포·수서)와 지방 경찰서의 출석 요구가 매일 쇄도하고 있다. 우리는 지구 끝까지 도망갈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했다.
박 대표 등은 이날 경찰에 자진 출석해 조사받을 예정이었지만 경찰서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뒤 ‘시설이 갖춰지면 다시 경찰서를 찾겠다’고 했다. 전장연은 혜화경찰서 경무과장에게 관련 서한을 전달했다.
당초 경찰은 경찰서 3층을 조사 장소로 고지했지만, 휠체어를 탄 활동가들이 이용할 엘리베이터가 없어 1층 로비 한쪽에서 조사를 진행하려 했다는 게 전장연 측 주장이다. 피의자 조사는 통상적으로 사무실 안에서 한다. 이에 대해 혜화경찰서 관계자는 “1층 로비가 아니라 1층에 있는 별도 조사실에서 조사하겠다고 안내했다"고 해명했다.
장애인등편의법 제6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법 시행령에 따르면 국가 또는 지자체 청사는 장애인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계단 또는 승강기 의무 설치 대상이다. 파출소, 지구대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박 대표는 “편의증진법상 혜화경찰서는 공공기관으로, 엘리베이터 등 장애인편의시설을 의무로 설치해야 한다”며 “공공기관인 경찰서가 정당한 장애인 편의시설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우리를 불러서 조사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문애린 활동가는 “서울 지역 경찰서 대부분이 장애인 화장실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경찰에게 양해를 구하고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건물을 찾아다녀야 한다”고 했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소한의 시설과 요건도 마련해놓지 않고 조사받으러 오라고 하는 경찰이 정말 21세기 대한민국의 공공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했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오는 19일에는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박 대표는 “불렀으니 (자진해서) 갈 것인데, 거기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으면 또 항의하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부르라’고 공식 전달하고 나올 것”이라고 했다.
서울경찰청은 전장연 관계자 25명을 수사 중이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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