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프리랜서 아닌 노동자" 법원 첫 판결
MBC가 방송작가와의 고용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방송작가를 ‘프리랜서’가 아니라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정용석)는 14일 MBC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와 B씨는 2011년부터 MBC 뉴스투데이’의 방송작가로 일했다. 9년 뒤인 2020년 6월 MBC는 ‘프로그램 개편을 위한 인적 쇄신’을 이유로 이들과의 ‘프리랜서 위탁 계약’을 해지했다. 아무 때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한 계약서 조항을 근거로 삼았다.
이에 A씨 등은 2020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이들은 “매일 고정된 장소로 출퇴근하며, 사내 보도시스템에 접속해 데스크의 업무 지시를 받으며 일했다”고 했다. 실질적으로 MBC에 종속돼 일한 만큼 고용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한 것은 ‘부당해고’라는 것이다.
서울지노위가 신청을 각하하자 A씨 등은 중노위에 재심을 요청했다. 중노위는 서울지노위의 판단을 뒤집고 A씨 등의 구제신청을 인용했다. ‘계약의 형태’가 아닌 ‘고용의 실질’을 기준으로 노동자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노위는 A씨 등이 프리랜서 위탁 계약을 맺고 근무했지만 실질적으로 MBC의 지시·감독을 받고 일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날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선고 직후 A씨 등은 “사회의 부조리를 보도하는 언론사로서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했다. A씨 등의 대리인은 “그간 방송사 비정규직을 다투는 소송이 꽤 많았는데, 판결의 경향은 방송사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프로그램 제작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정규직 근로자와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밖에 없는 업무 특성과 무엇보다 방송사가 최종 결정권자임을 감안하면 방송사의 비정규직 태반이 방송사의 직원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프리랜서 위탁 계약’ 형식을 통해 일하는 아나운서, PD, 작가 등 비정규직 종사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서부지법 민사11부(재판장 함석천)는 YTN과 프리랜서 위탁 계약을 맺고 일하는 컴퓨터그래픽(CG) 디자이너 12명과 편성 PD 3명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계약서에 ‘근로계약이 아니다’라는 명시적인 문구까지 있었지만 재판부는 “근무시간과 장소의 구속과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 일했으며, 업무 실수나 지각 등에 대해서 경위서를 제출하는 등 회사의 복무규율을 따라야 했다”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 노동자’라고 판단했다.
전북지노위도 같은 달 한국방송(KBS) 전주총국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지난달 3일엔 YTN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일하다 계약 해지를 당한 막내 작가가 중노위에서 ‘부당해고’임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지상파 방송 3사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한 경과 방송작가 363명 중 152명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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