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제한 풀기 앞서 지역방송 제작 자율성 높여야"

최성진 2022. 7. 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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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한국언론정보학회 세미나
정부·방송사업자 '지상파 소유·겸영 규제 완화' 주장
학계 "지역방송 사주 편향 보도 심각, 대안부터 마련해야"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에스비에스>(SBS) 사옥. 최성진 기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부와 방송사업자를 중심으로 지상파 방송 소유·겸영 규제 완화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규제 완화에 앞서 민영방송의 대주주나 사주 관련 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대주주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지역 민영방송의 경우, 지역민이 참여하는 사장추천위원회 구성과 보도국장 임명동의제 시행 등 편성·제작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이뤄졌다.

14일 한국언론정보학회는 제주대학교에서 ‘지상파 소유 규제 완화와 지역방송 보도의 문제’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 앞서 언론정보학회는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발표한 ‘자산 총액 10조원 이상 대기업의 방송사 소유 규제 완화’와 관련해 “우리는 이미 지역방송의 건설사 대주주 보도를 접하며 보도 편성과 내용에 미치는 자본의 문제를 경험한 바 있다”며 “(정부의 방송사 소유·겸영 규제 완화의 결과가) 대기업의 방송 장악인지 투자인지 현재로써는 그 영향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언론 보도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라고 토론회 취지를 설명했다.

현행 방송법(8조)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2조) 등을 보면 지상파 방송사업자로 참여하는 사업자는 최대 40%까지 지분을 소유할 수 있지만, 자산 총액 10조원 이상의 기업 집단이라면 소유 지분은 10% 이하로 제한된다.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전문채널의 지분도 30%를 초과할 수 없다.

현재 위 조항으로 인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초과 지분 매각에 관한 시정 명령을 받았거나 시정 명령을 앞두고 있는 방송사업자가 <울산방송>(UBC)의 최대주주 에스엠그룹(삼라)과 <에스비에스>(SBS)의 최대주주인 태영(티와이홀딩스) 등이다. 삼라는 울산방송 지분의 30%, 티와이홀딩스는 에스비에스 지분의 36.92%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인데, 두 사업자 모두 지난해와 올해 자산 총액 10조원 이상의 대기업으로 분류됐다.

이들 사례를 근거로 방송사업자와 정부는 방송사 소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으나, 언론·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대기업 등 자본에 의한 방송 장악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계해왔다. 특히 건설사를 대주주로 둔 일부 지역 민영방송의 경우 사주에 대한 편향 보도와 불리한 기사 누락 등의 문제가 꾸준히 지적돼왔다.

이에 김희경 미디어미래연구소 연구위원은 ‘지역방송의 지배주주 및 지배기업 보도 행태 사례 분석’ 발제를 통해 “지역 민방의 지배주주 및 기업 보도는 자사와 대주주 홍보 등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보도를 넘어 상대 기업에 대한 비방 보도로도 나타나고 있다”며 “심지어 대주주의 방송 개입 등으로 보도와 편성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또 김 연구위원은 “민영방송이 보이는 보도 태도의 가장 중요한 대목 중 하나는 자사에 불리한 내용은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울산방송>이 대기업으로 지정된 삼라에 대한 방통위의 지분 매각 시정 명령 건을 전혀 보도하지 않은 사례를 꼽았다.

김 연구위원은 이러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사주 보도’의 문제를 개별 언론사나 언론 종사자의 양심에 맡기는 것보다 제도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 연구위원은 “방송 시장의 침체로 방송사 소유 대기업 지분 규제 완화를 시도하는 시점에서 지역 민방의 보도 태도는 향후 대기업의 자사 이익 보도나 사주 홍보 보도의 행태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기준으로 작용한다”며 “지역 민방과 지상파 방송의 자사 이해관계 및 사주 보도의 행태와 방식을 유형화해 문제가 되는 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보도 작성 매뉴얼 제작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연식 경북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지역 민방의 대주주 편향 보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으로 사장추천위원회 구성이나 보도국장 임명동의제 도입 등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지역 민방이 대주주의 영향력 아래 대주주 기업에 대한 홍보 수단으로 이용되고 대주주 기업의 부정한 사건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여 시청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보도 내용의 자율성을 확보하려면 먼저 지역 민방의 사장과 보도국장 선임에 종사자와 지역민의 의견이 반영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민 참여미디어연구소 소장은 지역 민방에 대한 소유 규제 완화가 지역 민방의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에서 검토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소장은 “지역 민방의 설립 목적은 ‘지역성 구현을 통한 문화적 다원주의 실현’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 상황에서 소유제한을 완화하거나 겸영을 허용하는 것은 지역성 약화를 초래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며 “(소유 규제 등 사전규제 완화 논의에 앞서) 오히려 사후규제를 강화해 지역 민방이 설립 취지에 부합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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