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마늄·니호늄..다음은 코리아늄? 한국 노벨상 탄생 요람 될 중이온가속기[김진원의 머니볼]
민족과 나라의 이름을 딴 원소들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독일에서 발견된 원소 게르마늄(원소기호 Ge·원소번호 32), 일본에서 발견한 니호늄(Nh·113) 등이 대표적 입니다.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150년전 원소 주기율표를 내놓을 때 원소는 63개. 이후 과학의 발달로 원소 주기율표는 118개까지 채워졌습니다.
과학계에서는 아직도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며 실제 찾아내지 못한 원소가 수없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면 발견자에게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명명권이 주어집니다.
새로운 원소의 발견은 과학계를 혁신적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산업적 가치도 무궁무진하죠. 우라늄(U·92)의 원자핵을 충돌시켜 발견해 낸 플루토늄(Pu·94) 처럼 말이죠.
한국에서도 한국 이름을 딴 ‘코리아늄(Ko·원소번호 미정)’ 발견을 위한 노력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총 사업비 1조5183억원. 부지면적 95만2000㎡(축구장 약 137개 너비)의 중이온가속기 사업을 통해서 말이죠.
대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위치한 중이온가속기가 10년 넘는 공사 끝에 완공돼 시운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이온가속기 연구소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중이온가속기 설비 개요
부지 면적 / 95만2066㎡(축구장 137개·여의도 1/3)
가속기동 건물 면적 / 7만7636㎡(축구장 11개 너비)
가속기동 최대 길이 / 550m (롯데타워 555m)
가속기동 건설 투입 철근량 / 2만282t (에펠탑 1개=7300t, 약 3배 분량)
가속기동 건설 투입 레미콘량 / 26만4864㎡(30평 아파트 1개=220㎡, 약 4414세대 분량)
전체 건설 투입 인력 / 67만2743명 (대전시 인구 46% 수준)
전체 건설 투입 철근 길이 / 2만5532㎞(서울 부산 왕복 32회 분량)
10월, 아르곤 빔 인출하며 시운전
오송역에서 택시를 타고 30분 가량 이동하면 대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중이온가속기연구소에 도착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회색 직육면체 가속기동의 두꺼운 철문을 열면 깊은 계단이 이어집니다.
깊이 13m 지하로 내려가자 두께 7m의 두꺼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가속기동이 나옵니다. 영하 270도의 극저온 액체헬륨을 이용한 냉각작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지상의 냉각기동에서부터 이어지는 ‘웅웅웅’하는 굉음이 연구소를 울렸습니다.
사과 1개 직경의 진공 파이프는 콘크리트 벽을 뚫고 이어집니다. 파이프 총길이는 약 800m에 달합니다. 파이프와 연결된 초전도가속관은 106개로, 순간 걸리는 전압의 크기는 600만V(볼트)에 이릅니다.
권면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장은 “설비 냉각 작업이 완료되면 지하로 통하는 철문이 모두 굳게 닫히고 본격적인 ‘빔 인출’ 시험 가동에 들어간다”고 설명했습니다. 빔 인출 예상 일정은 오는 10월.
시험 가동에서는 아르곤(Ar·18) 원소로 만든 이온 빔을 가속기의 한 쪽 끝에서 발생시킵니다. 파이프를 따라 반대쪽 끝에서 최종 검출되는 이온의 양을 확인할 예정입니다.
대략 100개의 이온을 보냈을 때 98개 이상을 받으면 성공적으로 가속 및 검출 작업이 완료됐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빔 인출에 성공하면 중이온가속기는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설비 증축해 광속 50%까지 가속
중이온가속기는 이온(전자를 얻거나 잃어 전기적 성질을 가지는 입자)을 빛의 속도에 근접하게 충돌시켜 깨뜨린 뒤 세상에 없는 원소를 찾아내는 장비입니다.
현재 원소주기율표에 존재하는 원소는 1번 수소(H)에서 118번 오가네손(Og)까지 있습니다.이 중 자연계에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원소는 94번 플루토늄(Pu)까지입니다.
이후 순번의 원소들은 인위적으로 찾아낸 원소들입니다. 일본의 이(理)화학연구소가 2012년 아연(Zn·30) 원소를 충돌시켜 발견한 뒤 일본 영문 국가명을 따 이름 지은 113번 원소 니호늄(Nh)이 대표적입니다.
원소의 발견은 이온을 가속 충돌시키면서 일어납니다. 플레밍의 왼손 법칙(전기를 흘리면 물체가 힘을 받는 법칙)이 기본 원리입니다.
전기가 잘 통하는 극히 낮은 온도(초전도상태)에서 아주 가벼운 물체(이온)에 강한 전기를 걸어주면 물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합니다.
한국의 중이온가속기는 현재 광속(시속 10억8000만㎞)의 15%까지 가속이 가능합니다. 설비 증축을 통해 광속의 50%까지 도달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ISOL·IF 복합 충돌 방식은 세계 최초
가속기의 이온 충돌 방식은 크게 ISOL과 IF 두 가지가 있습니다. ISOL 방식은 가벼운 원소를 무거운 원소에 충돌시키는 방식입니다. 당구공을 던져 볼링공을 깬 뒤, 깨진 볼링공 조각을 분석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IF 방식은 반대입니다. 무거운 원소를 던져 가벼운 원소에 부딪힙니다. 볼링공을 당구공을 향해 던진 뒤 역시 깨진 볼링공 조각을 연구하는 방식입니다. 세계 각국의 가속기는 두 방식 중 하나만으로 가동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중이온가속기는 두 방식을 연속적으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시설입니다. 당구공을 먼저 볼링공을 향해 빠르게 던져 볼링공을 깨뜨린 뒤(ISOL), 여기에서 나온 볼링공 조각을 다시 2차 가속해 또 다른 당구공과 충돌(IF)시켜 깨진 조각을 연구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세상에 없던 원소 ‘코리아늄’ 발견 기대
◆중이온가속기 주요 일지 및 계획
2011년 12월 / 중이온가속기 구축사업 착수 및 기본계획 수립
2015년 12월 / 기본 설계 완료
2017년 9월 / 부지 조성 완료 및 착공
2018년 10월 / 방사선발생장치 사용허가
2018년 12월 / 가속장치·실험장치 등 부속품 공급
2020년 10월 / 건물시공 완료
2022년 6월 / 빔 시운전 준비 및 설비 냉각 착수
2022년 10월 / 최초 빔 인출 (예정)
2023년 3월 / 빔 시운전 완료 (예정)
2024년 10월 / 이용자 활용 (예정)
중이온가속기가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학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가속기를 활용한 연구가 노벨상으로 이어진 사례는 30여건이 넘습니다.
가깝게는 201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피터 힉스가 있습니다. 그는 1964년 일명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 입자의 이론적 배경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이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통해 이를 증명했습니다.
1988년 노벨물리학상의 주제인 ‘뮤온’ 입자도 미국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BNL)의 가속기에서 만들어졌으며, 2009년 노벨화학상 주제인 ‘리보솜의 3차원 구조 규명’도 BNL의 또 다른 가속기에서 비롯됐습니다.
한국의 물리학계는 중이온가속기를 통해 새로운 원소 ‘코리아늄’을 발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원소기호는 ‘Ko’로 잠정 정해져 있습니다. 권 단장은 “원소들 사이의 관계를 보면 빠진 고리(미싱 체인)이 있어 이를 채워 넣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습니다.
중이온가속기를 통한 연구는 반도체부터 바이오까지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중성자를 이용한 핵반응을 예로 들 경우, 심(深) 우주공간의 방사선이 반도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있습니다. 반도체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결과물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양성자 빔을 연구한다면 암세포를 죽이는데 가장 효율적인 원소 종류는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을 전망입니다. 이외에도 새롭게 발견한 원소들을 합성하면 초고장력 섬유 등 기존에 없던 신물질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권 단장은 “2024년부터는 국내 연구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연구진과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 주제를 엄선해 협업할 예정”라고 했습니다.
대전=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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