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과방위 쟁탈전'은 지루한 '방송 장악 10년 공방전'의 연장전이었다
여야가 최근 국회 원구성 협상 과정에서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직을 놓고 격돌하면서 ‘방송 장악’ 논쟁을 벌이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KBS·MBC·EBS 등 공영방송사의 지배구조 개선 입법을 놓고 이미 10년에 걸친 지루한 공방전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핵심은 현재 공영방송사 사장과 이사진을 선출하는 데 있어서 정치권이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돼 있는 방송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편향성 보도 시비가 일어나는 원인이 정치권의 사장·이사진 선임 권한에 있다고 보고 이를 투명성 있게 바꾸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야 모두가 제각각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며 10년 가까이 해결을 미뤄오다가 이제는 다시 과방위 위원장직을 놓고 대결하면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원구성 협상 과정에서 과방위원장직을 놓고 ‘방송 장악’ 논쟁을 벌이고 나선 것은 방송 매체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을 보여준다. 종합편성채널의 탄생과 가짜뉴스의 범람, 유튜브 등 새로운 형태의 보도의 등장 등으로 인해 방송의 역할과 위력이 커지면서 정치권 입장에서는 방송사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졌다.
현재 방송법상 KBS 이사진 11명은 여야가 7 대 4로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9명은 여야가 6 대 3으로 추천하면 정부가 임명하도록 돼 있다. 사장은 이들 이사회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한다. 사실상 정권을 잡은 정부·여당에 편향적인 인사가 사장·이사진이 될 가능성이 큰 구조다.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느 방송사는 어느 당 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 편향 보도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이 최근 과방위원장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14일 국민의힘을 향해 “방송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국민 기본권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언론 장악 시도를 결단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정치권이 이 같은 방송법의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10년 가까이 개정 논의만 한 채 법을 바꾸는 것은 스스로 미뤄오거나 번번히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이던 2013년 민주통합당(민주당 전신)이 공영방송 3사 이사회를 여야 5대 5 추천과 노사 합의 2명 등 12명으로 구성하고, 사장 선출은 이사회 3분의 2 찬성을 거치도록 하는 개정안을 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건 2016년 7월이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이 예상되던 상황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입법을 전면에 들고 나왔다. 당시 민주당은 공영방송사의 이사회를 여야 7대 6 추천으로 구성하게 하고 사장은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선임하는 ‘특별다수제’ 방안을 제시했다. 이른바 ‘언론장악방지법’이다. 과방위 전신인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미방위) 공청회를 거치고 안건조정위원회까지 열었지만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막아서면서 파행 사태를 빚었고 20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법안들은 자동 폐기됐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입법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대선 이후 관련 논의는 멈춰섰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인 2017년 8월 방통위 업무보고에서 “개정안이 시행되면 온건한 인사가 선임되겠지만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법안 재검토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인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등은 “언론 장악 음모”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집권 세력이 바뀌자 공수가 뒤바뀐 셈이다.
논의는 다시 지난 3·9 대선을 앞두고 재개됐다. 정필모·전혜숙 민주당 의원 등이 각각 국민과 노조 참여형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개정안을 냈다. 하지만 당내에서 적극적인 논의가 없다가 지난 4월27일 당론으로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영방송사 이사회를 대신해 특정 성이 70%를 초과하지 않는 25명의 운영위원을 임명토록 한 방식이다. 운영위원 추천 권한은 국회(교섭단체 7명, 비교섭단체 1명), 방통위가 선정한 방송 및 미디어 관련 학회(3명), 시청자위원회(3명), 한국방송협회(2명), 종사자 대표(2명), 방송기자연합회(1명), 한국PD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1명)가 갖도록 했다. 사장은 시청자평가위원회가 복수의 사장 후보자를 추천하면 운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했다. 정치권 몫을 3분의 1 이하로 축소한 점은 진일보한 점으로 평가되지만 여전히 정치권의 영향력은 유지한 내용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원구성 협상 문제로 한 달 넘게 ‘개점휴업’ 중인 국회에서 해당 법안은 논의 없이 잠들어 있는 상태다.
언론계와 시민사회는 정치권의 느린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지난 5월4일 언론현업 6단체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양만희 방송기자협회장은 “민주당이 사실상 이 법안에 대해 어떤 논의를 할지 일정이나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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