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한스크 피란민들의 힘겨운 생활..공포·생존·죄책감 '삼중고'

김태규 2022. 7. 1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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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자전거에 의존한 피란길…생사 고비 넘기고 새출발
계속된 포격에 공포의 나날…피란길 가족과 생이별도
크름반도 병합 찬성 죄책감…친러, 우크라 떠날 수밖에

[자포리자=AP/뉴시스]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의 난민 센터에 도착한 한 피난민 여성이 손자가 걱정스레 바라보는 가운데 울먹이고 있다.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계속해서 러시아 점령 지역을 떠나고 있다. 2022.05.03.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러시아가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州)에서는 과거 친러 성향의 행적을 보였던 사람의 경우 주변의 따가운 눈을 의식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루한스크주 거주민들은 전쟁 공포와 생존을 위해 폐허로 변한 고향을 떠나 한 달 이상 힘겨운 피란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크름반도 병합 찬성 죄책감…친러 성향 우크라 떠날 수밖에

율리야 네이디쉬(26)는 루한스크 북쪽의 작은 마을 예브슈에서 지역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그녀의 마을도 러시아 군의 포격을 피할 순 없었다. 마을 대부분이 파괴됐고, 휴대전화도 끊겼다. 그녀의 가족이 바깥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러시아 국영 텔레비전 방송 뿐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관한 뉴스가 대부분이었다.

그녀는 8년 전 2014년 당시 19세의 나이로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 참여했다고 한다. 찬성표를 던진 그녀는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의 보복이 두려워 러시아로 이주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로 돌아온 그녀는 1년 만에 벌어진 러시아의 침공을 보면서 상념에 잠겼다. "나는 아직도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지난 2월 전쟁이 시작됐을 때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4월 말 몸이 아픈 아버지 치료를 위해 고향을 떠나 다시 러시아행을 결심했다. 급한 치료 후에는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녀와 아버지는 러시아연방보안국(FSB) 심문 과정을 거쳐 러시아에서 치료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라트비아로 피란에 성공했다. 안정이 되는 대로 다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돌아갈 계획이라 한다.

그녀는 "루한스크 사람들은 지금 전환점에 서 있다. 예전엔 이웃들이 친러 견해를 가질 때에도 용서하고는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면서 "러시아에 협력했던 사람들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데사=AP/뉴시스]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의 기차역에서 사람들이 한 장애 노인의 피난 열차 탑승을 돕고 있다. 2022.03.24.

자전거에 의존한 목숨 건 피란길…죽음 고비 넘기고 키이우서 새출발

세베로도네츠크가 고향인 아리프 바이로프(45)는 러시아 군이 도시를 완전 포위하기 직전에 간신히 피란길에 오를 수 있었다. 작은 가방 하나만을 챙겨 자전거로 급히 고향을 떠났다.

러시아 침공 이후 루한스크 주민들의 대피를 돕는 자원봉사 역할을 했던 터라,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 주변 지리는 잘 알았다고 한다. 오직 살기 위해 앞만 보며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이곳을 지나는 수많은 자동차와 트럭이 종종 러시아 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는 경우는 봤지만 자전거를 겨냥한 공습은 없었다. 그는 "자전거를 탄 피란민을 총으로 쏠 인간은 아무도 없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았다.

5월 말 한창인 더위 속에서 자전거로의 피란이 쉽지만은 않았다. 폭탄 분화구를 비켜가는 것, 들쭉날쭉한 파편 흔적을 피하는 것이 어려웠다 한다. 뒤에서 날아오는 포탄 소리까지 촉각을 곤두세우느라 금새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고향으로부터 32㎞ 가량 떨어진 지점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저공 비행으로 폭탄을 쏟아내는 러시아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자전거를 향해 총을 쐈다. 그는 살기 위해 자전거를 버리고 도랑으로 몸을 던졌다. 불과 90m 옆에서 폭탄이 터졌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는 도네츠크주 바흐무트를 거쳐 수도 키이우에 정착했다. 그는 "배낭에 넣어둔 것이 전부였다. 충분한 음식이 없어 배고팠다. 잠못 이루는 날들도 수없이 많았다"며 "나는 이제 이곳 키이우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속된 포격에 공포의 나날…피란길 가족과 생이별도

[솔레다르=AP/뉴시스]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솔레다르에서 피란길에 오른 한 여성이 손 하트를 그리면서 울고 있다. 2022.05.24.
마리나(가명·27)는 러시아 침공 하루 전날 어머니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루한스크 내 고향을 찾았다. 다음 날 러시아의 전쟁이 시작되며 꼼짝 못하고 발이 묶였다. 피란을 떠날 때까지 한 달 간 아파트에 갇혀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녀는 "집 근처 공업 지대를 포격하는 소리는 아파트 벽을 뒤흔들었다"면서 "무릎으로 포격 소리를 느끼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잠시 포격이 멈춘 틈을 타 부모님을 모시고 인근 식료품점을 찾았다. 떨어진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가게 앞에 도착할 무렵 러시아 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포격이 멈춘 뒤 그녀 부모님 옆에 서 있던 다른 남자가 목숨을 잃었다.

아파트에 갇혀 있는 동안 그녀의 가족들은 거실 소파에서 앉은 채 쪽잠을 잤다고 한다. 포탄이 아파트 근처로 떨어질 때면 복도나 화장실로 피신해야 했다. 빠른 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군이 구출해주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피란 계획을 세웠다.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는 것을 거부했다. 그녀 아버지는 "여기는 내 집이다. 러시아 놈들 때문에 왜 내가 떠나야 하느냐"며 잔류를 택했다. 수도·전기·가스가 모두 끊긴 곳에 아버지만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결국 어머니와 함께 도시를 탈출한 마리나는 아버지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날마다 전화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말 아버지가 보내온 영상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이걸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는 짧은 메시지였다. 그녀는 "아버지를 어떻게 구출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kyustar@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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