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영웅→탈주자' 스리랑카 대통령.."국가를 가족기업처럼 운영"
기사내용 요약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족벌주의로 위기 자초
막대한 차입 등 경제 실정도 국민 신뢰 잃는데 한몫
[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이 국가 최고지도자에서 해외로 도피하는 탈주자 신세가 된 것을 놓고, 전문가들은 라자팍사스의 흥망성쇠를 시작으로 마지막 한 번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CNN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고타바야 라자팍사는 한때 유혈 내전에서 분리주의세력을 물리치면서 국가의 영웅으로 여겨졌으나, 13일 이른 시간, 궁지에 몰리자 동이 트기 전 군용기에 올라 서둘러 수도 콜롬보를 떠나 몰디브로 도피했다. 국민들의 신뢰를 잃기 전까지 지난 20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왔던 라자팍사의 출국은 스리랑카에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영국 싱크탱크인 ODI글로벌의 가네샨 비그나라야 선임연구원은 "고타바야 라자팍사가 스리랑카에서 공군기를 타고 탈출하는 모습은 이 가문의 몰락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CNN에 따르면 라자팍사는 가족 중 첫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의 친형 마힌다 라자팍사는 2005년 대통령에 당선돼 26년간 지속된 스리랑카의 무장 반군 단체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와의 내전에서 승리하며 거의 전설적인 지위를 얻었다.
이 승리로 마힌다 라자팍사는 정치적 자본을 무궁무진하게 끌어 모을 수 있게 됐고, 그는 10년 동안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흔히 '아파치'라고 불리며, 그가 지나갈 때 사람들은 종종 절을 하고 그가 아플 때 걱정하곤 했다.
마힌다 라자팍사는 대부분 임기 동안 그의 형제들을 요직에 임명하고 스리랑카 국가를 '가족기업'처럼 운영했다. 예컨대 국방부 장관은 고타바야 라자팍사, 경제개발부 장관은 바질 라자팍사, 국회의장은 차말 라자팍사를 임명하는 식이었다.
족벌주의에 대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라자팍사 형제들은 여전히 인기가 있었다. 스리랑카는 정부가 공공 서비스에 자금을 대기 위해 해외에서 막대한 차입금을 빌린 덕분에 수년간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좋은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전은 마힌다 라자팍사의 전설을 만들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마힌다 라자팍사 몰락의 첫 징후도 담고 있었다.
유엔 보고서(2011년)는 스리랑카의 정부군이 민간인에 대한 의도적인 포격, 즉결 처형, 성폭행, 그리고 피해를 입은 지역사회로의 식량·의약품 접근을 차단하는 등 학대에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다. 유엔 보고서는 "신뢰할 수 있는 많은 소식통들이 민간인 사망자가 4만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고 밝혔다.
마힌다 라자팍사 정부는 이 보고서 내용을 강력 부인했지만, 문제점들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권에 대한 우려는 전쟁을 넘어섰다. 정적들은 마힌다 라자팍사가 극우 불교 단체들을 암묵적으로 승인했다고 비난했고, 스리랑카의 이슬람족과 소수민족인 타밀족은 그들의 공동체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을 두려워했다.
동시에, 경제적 문제의 징후가 나타나면서 마힌다 대통령의 정실주의에 대한 분노도 함께 커졌다.
2015년까지 스리랑카는 중국에 80억 달러의 빚을 졌고 스리랑카 정부 관리들은 중국과 다른 국가에 빚을 져 누적된 외채가 국내총생산(GDP)의 94%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해 대통령 선거에서 마힌다 라자팍사는 낙선했다.
그럼에도 라자팍사 일가는 다시 구사일생했다. 2019년 4월 이슬람 무장세력은 교회와 특급호텔에서 연쇄 폭탄 테러로 최소 29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패닉 상태에 빠진 국민들은 내전을 승리로 이끈, 국가 안보에 관한 입증된 기록을 가진, 라자팍사 일가를 다시 찾았다.
그 해 11월, 고타바야 라자팍사가 스리랑카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그의 형처럼, 고타바야 역시 통치를 가족 문제로 여겼다.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의 재임 시절에도 경제 운용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스리랑카의 경제 문제가 전적으로 정부의 잘못은 아니지만 일련의 실정들이 스리랑카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지적한다.
스리랑카 내 싱크탱크인 아드보카타 연구소의 무르타자 자페르지 소장은 "스리랑카가 공공 서비스에 자금을 대기 위해 시작한 막대한 차입 열풍은 스리랑카 경제에 대한 일련의 타격과 동시에 일어났다"고 말했다.
막대한 적자에 직면한 라자팍사는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세금을 삭감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역효과를 낳았고 정부 세입에도 타격을 입혔다.
그 후 신용평가사들은 스리랑카를 디폴트 수준에 가까운 수준으로 강등시켰다. 이는 스리랑카가 해외 시장에 접근할 수 없게 된 것을 의미한다. 결국 스리랑카는 정부 부채를 갚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사용하면서 연료와 기타 필수품의 수입에도 영향을 미쳐 가격을 급등시켰다.
한때 라자팍사를 사랑했던 국민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거나 차량에 연료를 공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연료를 얻기 위해서는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종종 경찰이나 군대와 충돌하기도 한다. 슈퍼마켓 진열대는 텅 비었고, 의약품은 위험할 정도로 공급이 부족해지고 있다.
결국 수개월 동안 분노해온 스리랑카 국민들은 고타바야와 마힌다 두 형제가 경제를 잘못 운영했다고 비난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당초 시위는 평화적으로 시작됐지만 지난 5월 폭력적으로 변하면서 마힌다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러나 그의 결정은 좌절감을 가라앉히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의 동생은 대통령으로서 권력을 유지했다.
몇 주 동안 고타바야는 일가가 무너지는 것을 내키지 않는 듯 계속 매달렸다. 그러나 한때 브로커들을 접대하던 호화로운 그의 집은 반짝이는 수영장에서 더위를 피하고 넓은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국민들에 의해 점령되었기 때문에 그는 궁극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그나라야 선임연구원이 지적했듯이, 그 이미지는 한 시대의 종말과 딱 맞았다고 CNN은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j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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