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탈북어민 북송 사건의 재구성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엽기적인 살인마들' vs '파렴치한 인권 탄압.' 2019년 발생한 탈북어민 북송사건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고 있어, 해당 사건은 정치권 최대 화두로 부각된 상태다. 2020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함께 '진실규명' 시도가 이어지며, 전임 정권을 향한 사정의 칼날도 매서워질 태세다.
해당 사건의 핵심은 3가지로 요약된다. △북한 선원들의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있었는지 △선원들을 '흉악 범죄자'로 판단한 근거가 합당한지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북송'을 하는 게 적절한 지다. 여야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사건 당일 행적을 재구성하고 쟁점을 짚어봤다.
2년8개월 전 '그날'…나포부터 북송까지 '속전속결'
사건은 2019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송된 20대 북한 남성 2명은 북한과 러시아 해역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던 인물들로, 그해 8월15일 북한 김책항에서 선장 포함 북측 주민 19명이 승선한 17톤 규모 목선에 올랐다. 그러던 10월 말 선장의 가혹 행위에 불만을 품고 다른 선원 A씨와 공모해 선장을 살해했으며 증거 인멸을 위해 동료 15명을 더 살해했다는 게 이전 정부 측 설명이다. 시신과 흉기는 모두 바다에 유기했다.
이후 이들은 북한 자강도로 도망가려 했으며, 자금 마련을 위해 김책항에 들렀다가 살인에 가담한 A씨가 체포됐다. 나머지 2명은 이를 보고 어선을 타고 달아났으며, 북방한계선(NLL) 인근을 넘나들다가 우리 군에 포착됐다. 이틀간 도주를 이어가다 2019년 11월2일 최종 나포됐다. 이전 정부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나포될 때 "멋있게 죽자"고 말하며 웃는 등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들은 나포 당시에는 귀순 의사를 밝히지 않았으나, 검거된 이후 서면으로 보호를 요청하며 사실상 귀순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전 정부는 이를 정상적인 귀순 의사로 보지 않았다. 도피 행적과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북송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해 11월7일 이들 선원은 북한으로 추방됐고 이튿날 이들이 타고 온 선박도 북한에 인계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이 쏘아올린 '진상규명' 바람
사건이 발생한 2019년에는 이들의 북송이 '타당하다'는 데 이견이 없는 분위기였다. 현 여권 인사인 이혜훈 당시 국회정보위원회 위원장은 관련 보고를 듣고 "영화 《황해》가 생각난다. 이런 사람들이 귀순해 우리 국민 속에 섞인다면 너무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도 "이런 흉측한 놈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받아서야 되겠느냐"고 밝혔다.
2년8개월 만에 이 사건이 다시 점화된 계기는 무엇일까. 시작은 2020년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이전 정부의 '월북' 판단을 현 정부가 뒤집으면서였다. 국민의힘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일찌감치 문재인 정부의 '월북 공작'으로 규정하고, 탈북 어민 북송 사건까지 진상 규명을 예고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21일 "북송시킨 것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다시 들여다볼지) 검토 중"이라고 사실상 힘을 보탰다.
여기에 통일부도 지난 11일 "탈북 어민의 북송은 분명하게 잘못된 것"이란 입장을 밝히며 논란에 불을 댕겼다. 3년 만에 입장을 180도 선회한 것이다. 이례적으로 북송 당시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사진엔 어민들이 북측으로 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담겼다. 이후 여권을 중심으로 이들이 '진짜 흉악범이 맞는지', '귀순에 진정성이 없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평행선 달리는 與野…사정 칼날은 文정부 정면 겨냥
핵심 쟁점 중 하나는 탈북 어민 2명이 '실제 귀순을 원했는지' 여부다. 귀순 의사를 명확히 밝혔는데도 강제 북송했다면 인권 탄압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야권에선 이들이 자강도로 도망가려 하던 중 나포된 것이고 이틀이나 우리 군과 대치하다 붙잡혔다는 점에서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권은 이들이 북송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는 점을 들어 "귀순 의사가 없었다는 전임 정부의 설명을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국민의힘은 "흉악범이면서 귀순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은 모순"이란 입장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흉악범이라면 북한에 돌아가면 고문에 총살당할 것을 뻔히 아는데 한국에 남고 싶지 누가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겠나"라며 "흉악범이라면 귀순에 100% 진정성이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처럼 여권 일각에선 북송된 어민 2명이 실제 '흉악범'이 맞는지 여부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또 흉악범이 맞는다 할지라도 일단 대한민국 법정에 세웠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중범죄를 저지르고 내려온 북한 주민 23명은 이미 남한에 정착해 있는 상태다. 흉악범이라는 이유로 북송된 선원 2명과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이들의 범죄 사실을 확실시하고 "흉악범을 탈북민으로 받아들일 순 없다"고 주장했다. 윤건영 민주당은 같은 방송에서 "이들의 범죄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진술이 유일한데, 대한민국 법정에 세웠을 경우 진술을 번복할 수 있어 처벌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라며 "국민 세금으로 16명을 죽인 엽기 살인마를 보호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해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와 특검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검찰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국가정보원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전임 정부를 향한 사정정국을 본격적으로 주도할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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