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大 반도체과 학생수 늘리자"..지방대엔 어떤 당근 줄까
[편집자주] 규제개혁을 지상과제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두달이 지났다. 시장에 대못처럼 박혀 혁신과 성장을 가로막아온 '덩어리 규제'들을 현 정부는 과연 뽑아낼 수 있을까. 기업이 요구하는 핵심 규제개혁 과제들이 뭔지, 현실적으로 개선이 가능한지 살펴본다.
"인재 양성에 국가의 미래가 달렸는데 웬 규제 타령입니까. (중략) 교육부가 개혁 대상이 될 수도 있어요. " (윤석열 대통령, 6월7일 국무회의)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장상윤 교육부 차관을 질타하며 한 말은 관가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규제개혁에 대해선 더 이상 비(非)경제부처의 반대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 당시 윤 대통령은 장 차관이 수도권 규제로 반도체 관련 학과의 증원이 어렵다고 말하자 크게 화를 내며 거세게 질책했다. 과거 대부분의 정부가 규제개혁을 부르짖고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번 정부는 다를 것이란 기대가 높은 이유다.
정부는 강력한 규제개혁 드라이브를 위해 이달 중 민관합동 경제 규제혁신 TF(태스크포스)를 발족할 계획이다. 경제 분야 규제개혁의 총괄·조정을 위한 협의체인 TF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민간 전문가가 공동 팀장을 맡아 이끈다. TF 내에는 △총괄반 △현장애로 해소반 △환경규제반 △보건·의료 규제반 △신산업 규제반 △입지 규제반이 설치돼 각 분야의 규제를 발굴하고 개선을 추진한다.
14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부처와 교육부는 다음주쯤 반도체 인력 양성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 활성화 종합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윤 대통령도 직접 언급한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에 대한 규제가 해소될지 여부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선호하는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기 어려운 건 '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이다. 이 법이 규율하는 '인구집중유발시설' 중에는 대학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서울 등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선 대학의 신설 또는 학생 증원이 불가능하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미국의 서부 명문 스탠포드대 컴퓨터공학과 정원이 2008년 141명에서 2020년 745명으로 늘어나는 동안 서울대는 같은 기간 55명에서 70명으로 느는데 그쳤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이 IT(정보기술) 분야의 핵심인재 양성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여소야대의 국회 지형상 법률 개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시행령 개정이란 우회로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수도권정비계획법 7조2항은 '국민경제의 발전과 공공복리의 증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학교의 신설 또는 증설을 허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수도권정비계획법 소관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나서야 한다.
이미 줄인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활용해 증원에 나서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수도권 대학들은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대학구조개혁 정책에 따라 정원을 감축해왔다. 법이 정한 정원 총량을 그대로 두고도 대학들이 자체 감축한 정원을 활용해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활용할 수 있는 정원 규모는 8000명 정도다.
수도권이란 입지의 문제가 해결돼도 모든 대학에 적용되는 규제도 넘어야 한다. 대표적인 게 '대학설립·운영 규정'에 따른 이른바 4대 요건(교사, 교지, 교원, 수익용기본재산)이다. 대학들은 이 4대 요건에 맞춰 대학을 운영해야 하는데, 학생 증원시 주된 제약이 교원 확보다.
정부가 지난 6월에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 첨단분야의 현장 전문가가 교원이 될 수 있도록 교원자격과 교원확보율 기준을 개선한다는 계획을 담은 건 반도체 관련 학과 등의 교원 확보 문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가장 큰 변수는 지방대의 반발이다. 정부가 지방대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어떤 '당근'을 제시할지가 최대 관건이다. 지방대에 대한 보상책으로는 국립대법 제정, 지역고등교육위원회 신설 등이 거론된다.
경제계는 수도권 공장총량제 규제 완화도 요구하고 있다. 공장총량제는 수도권 과밀화 방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공장 건축면적의 총량을 설정해 이를 넘길 경우 신·증축을 제한하는 제도다. 기업들은 이 제도가 경제 논리에 따른 자유로운 공장 부지 선택을 침해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목표에도 기여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토균형발전이란 가치와 충돌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불보듯 뻔해 추진이 쉽지 않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려가야 하지만 이 역시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대표적인 규제로 '발전설비와 주택·도로 간 과도한 이격거리'를 꼽는다. 현재 정부 차원의 규제는 별도로 없지만 각 지방자치단체가 조례 등을 통해 이격거리를 설정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설비에 대해 산업부가 지난 2017년 이격거리를 설정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음에도 올해 1월 기준 226개 기초지자체 중 이격거리를 설정한 곳이 128개에 달했다.
경제계는 경쟁당국의 과도한 규제도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집단 총수의 친족 범위 축소가 대표적이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그룹 총수가 공정거래위원회에 대기업집단 지정자료를 제출할 때 친족 현황도 포함해야 하는데, 자칫 교류가 없는 친족의 자료를 누락했다가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친족 범위 축소에 나서기로 했다. 아울러 정부는 공정거래법을 포함한 각종 경제법률에 규정된 과도한 형벌 규정을 없애기 위해 최근 범부처 TF를 출범했다. 정부는 개선안을 마련해 신속하게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는 목표지만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 통과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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