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정국 혼란에 커지는 중국 책임론
스리랑카가 1948년 독립 이래 최악의 경제 위기에 빠지면서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이 국가 부도의 원인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세계 경제에 위기가 찾아오면서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은 다른 개발도상국도 심각한 외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4일(현지시간) 스리랑카가 21세기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지면서 비슷한 상황이 다른 개발도상국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이들 국가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주고 부채 조정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국가 채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60년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국에 대한 지원은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한국 등 ‘파리클럽(채권국 비공식 그룹)’이 주도해 왔지만, 최근 이 역할을 중국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의 일환으로 개발도상국에 대규모의 개발 자금 대출을 제공하면서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현재 파리클럽의 모든 회원국을 합친 것보다 중국이 저소득 국가에 빌려준 자금 규모가 더 크다.
스리랑카는 중국의 일대일로 주요 협력국 중 하나로, 중국이 쳐 놓은 ‘부채의 함정’에 빠진 대표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여 년간 스리랑카 정계를 장악했던 라자팍사 가문은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이들이 통치하는 동안 스리랑카에서는 중국이 투자하는 각종 대형 인프라 사업이 추진됐다. 예컨대 스리랑카는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차관을 도입해 지난 2010년 함반토타 항구를 건설했다. 하지만 실적 부진으로 적자가 쌓이면서 지난 2017년엔 항만 지분 일부를 중국 국영기업에 매각하고 99년 기한으로 항만 운영권까지 넘겼다. 도로나 공항 등 다른 인프라 사업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중국으로부터 2억달러를 대출받아 건설한 마탈라 라자팍사 국제공항은 한때 전기요금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이용객이 적었고, 2011 크리켓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지은 크리켓 경기장은 그 후로 국제경기를 개최한 횟수가 손에 꼽힐 정도다.
이를 두고 중국이 애초에 ‘빚 독촉 외교’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개발도상국들에 채무 상환 능력을 벗어날 정도로 자금을 지원한 뒤 이들 국가를 빚에 허덕이게 해 중국 정부의 압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스리랑카의 채무 조정 요청엔 주저하면서 추가 자금 대출은 고려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른 개발도상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 2020년 잠비아가 디폴트 위기에 처했을 때 중국은 잠비아가 인프라 사업 지원금 이자를 상환할 수 있도록 돈을 추가로 빌려줬다. 하지만 정작 잠비아 채권국 위원회에 참가하는 데에는 몇 달이나 걸리는 등 채무 해결 과정을 지체시키면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잠비아의 총 대외 공적채무 173억달러(약 22조원) 중 3분의 1 이상이 중국에 진 빚이다.
중국은 스리랑카의 국가 부도 사태의 원인이 일대일로 사업때문이란 지적이 나오자 반박에 나섰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12일 사설에서 “스리랑카 정부의 대외부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다”면서 “중국이 스리랑카 부채 문제의 원인이라는 이야기는 완전 거짓”이라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스리랑카의 국영기업·중앙은행 등이 보유한 채무까지 고려한다면 중국이 스리랑카 대외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를 넘는다고 지적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1949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이 개발도상국에 제공한 대출과 보조금 가운데 절반 이상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에 보고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윌리엄 앤 메리 대학교의 ‘에이드데이터’ 연구소 자료를 인용해 “다른 국가 대출(차관)과 비교한다면 중국은 ‘계약 존재의 사실’까지 숨기는 등 이례적인 수준의 기밀을 요구한다”고 전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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