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대형사건 감사하면 승진"..'전 정권 비위 발굴' 신호?
내부 평가 시스템 개편..전 정부 겨냥 분석
감사원이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큰 감사를 수행하면 승진에서 유리하도록 내부 평가 시스템을 개편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월성 원전 감사를 주도한 뒤 좌천됐던 유병호 사무총장 취임 후 감사원이 이전 정부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나선 가운데 내부에 ‘큰 사건에 집중하라’는 신호를 준 것이다. 유 사무총장은 최근 내부 회의에서 강력한 감찰도 시사했다.
감사원은 14일 보도자료를 내고 “국가와 국민이 요구하는 핵심 감사 과제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감사 운영 시스템을 개편했다”며 “여러 국정 현안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중요감사에 조직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유인체계를 구축했다. 복잡한 계산식의 점수제에서 S·A·B·C·D 등 5개 등급제로 평가 시스템을 바꿨다. 내부 평가 결과는 승진, 전문보직 관리 등에 활용한다. 감사원은 “기존의 내부업무 평가방식은 너무 복잡하고 평가지표가 세분화돼 있어 평가결과가 실제 개인의 업무능력을 반영하는지 신뢰할 수 없었다”며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고 국가·국민 관점에서 중요한 감사사항일수록 높은 등급을 부여해 평가결과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높였다”고 밝혔다.
그간 1급 간부 이상의 결재를 받던 디지털 증거 수집, 금융거래정보 제출 요구 등 현장 자료수집과 조사 권한 일부를 현장 감사책임자인 국·과장에게 위임했다. 대신 현장 책임자가 그 지휘 책임을 진다. 디지털 증거 수집 시 ‘2회 이상 서면요구를 거부할 때’ 등 상세기준이 열거된 규정은 필요성·보충성·관련성 등 대원칙에 따라 운영하도록 정비했다. 감사원은 “규정이 지나치게 세부화되고 일률적으로 적용하게 돼 있어 이행이 지체되거나 자료 삭제 등 회피에 악용될 소지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번 감사업무 쇄신안은 지난달 15일 유 사무총장 취임 후 약 한 달 만에 발표된 것이다. 그는 사무총장 취임 직후부터 “대형사건에 집중하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부임해 당시 진행 중이던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 감사를 주도하던 유 사무총장은 올해 1월 비감사 부서인 감사연구원장에 임용됐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감사원 2인자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전방위 감사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형사건 처리에 높은 평가를 하도록 개편한 것을 두고 이전 정부 고위 공직자 비위를 찾아내라는 메시지를 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과잉감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전날 감사원을 항의방문해 “감사원이 정부·여당의 전임 정부 인사 찍어내기에 행동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자잘한 것은 기관 자체 감사기구에서 처리하게 하고, 감사원은 큰 사건 위주로 하자는 것은 유 사무총장이 과거부터 말해오던 지론”이라고 밝혔다.
유 사무총장은 지난 4일 국장급 이상이 참석한 확대간부회의에서 “그간 감사원 내 여러 악폐에 대한 진상 규명을 시리즈로 해나갈 것이니 놀라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강도 감찰이 장기간 이어질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유 사무총장은 “해야 하는 일인데도 안 하는 것이 제일 나쁘다”며 “심한 경우 형사벌로 처리할 것”이라고도 했다. 유 사무총장은 앞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봐주기 감사’를 했다는 의혹으로 감사원 공공기관감사국 간부 및 일선 감사관 등 5명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유 사무총장은 회의에서 “향후 인사에서 감사교육원 공간을 빌려 (국·과장이) 재충전과 성찰을 하도록 할 것”이라며 “성찰한 순서대로 복귀시킬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 사무총장 지시에 따라 감사원은 국·과장 100여 명 중 최대 30명을 재교육할 방침이다. 사실상 퇴직을 압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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