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리후보 '비백인'이 절반..인종적 다양성 '눈길'

박병수 2022. 7. 1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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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캐머론 전 총리 인재 영입 계기
영국 보수당 대표 겸 총리후보 1차 경선을 통과한 6인. 왼쪽 위부터 리즈 트러스 외교부장관, 리시 수낙 전 재무부장관, 페니 모돈트 국제통상부 부장관, 왼쪽 아래부터 톰 투겐하트 하원 외교위원장, 수엘라 브레이버만 법무부장관, 케미 바데노크 전 평등담당 부장관. AFP 연합뉴스

“총리 후보에 페니, 리즈, 톰만 있는 게 아니다. 리시, 수엘라, 케미도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후임을 뽑기 위해 열리고 있는 보수당 대표 경선에 아시아 및 아프리카계 출신이 두각을 나타내 눈길을 끈다.

등록 후보 8명 중 절반인 4명이 아시아와 아프리카계이다. 유력한 선두 후보로 꼽히는 리시 수낙 전 재무부 장관은 인도계 혈통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 펀자브 출신인 조부모가 동아프리카로 이주했으며, 아버지는 케냐에서, 어머니는 탄자니아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1960년대 영국으로 이주해 정착했다.

수엘라 브레이버만 법무부 장관도 인도 출신이다. 부모는 모두 인도 출신으로 1960년대 각각 케냐와 모리셔스에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인도 고아 출신이며 어머니는 타밀족이다. 케미 바데노크 전 평등 장관은 부모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출신이다. 어린 시절 한때 나이지리아의 수도 나이로비와 미국에서 살았다. 나딤 자하위 재무부 장관은 쿠르드족 출신으로 바그다드에서 살다 6살 때 당시 사담 후세인 정권의 압제를 피해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영국으로 이주했다.

이들 중 수낙과 브레이버만, 바데노크 등 3명은 1차 경선을 통과해 6명이 겨루는 2차 경선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백인과 비백인이 3:3으로 대결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런 모습은 영국의 인구 구성이 백인 87%, 아시아계 6%, 흑인 3%라는 사실에 비추면 더욱 주목된다.

영국 보수당 대표 선거에서 이번처럼 인종적 다양성이 부각된 것은 처음이다. 존슨 총리가 당선됐던 2019년 당대표 겸 총리 선거에서도 10명의 후보 가운데 백인이 9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중도 우파인 보수당의 이런 다양성은 전통적으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중시해온 중도 좌파인 야당 노동당보다도 앞서 나가는 모양새다.

이런 변화가 영국이 진정 ‘탈인종주의 사회’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이번 인종적 다양성이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거의 20년에 걸친 인재영입과 발탁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전했다.

이런 변화를 이끈 이는 보수당 부흥을 선도한 데이비드 캐머론 전 총리(2010~2015년 재임)이다. 그는 2005년 39살의 젊은 나이로 보수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변화를 위해 보수당의 얼굴을 바꾸겠다”고 포부를 밝힌 뒤 비 백인 인재영입에 적극 나섰다. 당시만 해도 백인이 아닌 보수당 의원은 두 명뿐이었고 2001년엔 한 명도 없었다.

런던의 퀸 메리 대학의 팀 베일은 “캐머런은 이민 1세대와 2세대들이 소규모 기업을 운영하며 높은 세율에 저항감을 갖고 있다고 판단해 이들을 보수당의 텃밭으로 삼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캐머론은 지역 당조직에 젊고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갖춘 인재들을 적극 발굴해 국회의원 후보로 내세우도록 독려했다. 이번 선거에 나선 수낙이나 바데노크 등은 이때 의회에 진출한 이들이다. 이런 흐름은 보리스 존슨 총리 시절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영국의 <데일리 데일리 텔레그래프> 칼럼니스트 타냐 골드는 이에 대해 보수당의 이런 인종 다양성이 “이들 인종적 소수자가 통상 좌익 성향일 것이라고 생각해온 좌파들에게는 혼란과 당혹감을 줄 것”이라고 적었다.

물론 사회적 소수자가 진보성향 정당에 우호적인 풍토 자체가 바뀐 건 아니다.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총선에서 흑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64%는 노동당에 투표했고 보수당에 투표한 이는 20%에 그쳤으며, 12%는 자유민주당에 표를 던졌다.

여성과 관련해서도 보수당이 선도적인 태도를 보여준 것은 특기할 만하다. 첫 여성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나 두번째 여성 총리였던 테레사 메이 모두 보수당 출신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2차 경선에 진출한 6명 중 4명이 여성이어서, 세번째 여성 총리가 나올 가능성도 열려있다. 반면 노동당은 여성 총리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이번 2차 경선에 오른 나머지 백인 후보 3명은 페니 모돈트 국제통상부 부장관, 리즈 트러스 외교부 장관, 톰 투겐하트 하원 외교위원장이다.

보수당의 총리후보자 선출은 소속 의원들의 거듭된 경선에서 최하위 득표자를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최종 후보 2명을 가린 뒤 이들을 대상으로 16만 당원이 표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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