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국가부도로 저소득 개도국에 제공한 中 차관 '시험대'
기사내용 요약
라자팍사 가문 20년 통치기간 중국 中 대규모 사업 진행
"스리랑카 부도 중국 일대일로 참여 때문"이라는 지적도
[서울=뉴시스] 문예성 기자 = 스리랑카 국가부도 사태로 저소득 개발도상국에 차관을 제공한 중국의 금융제공자 역할이 시험대에 오른 것으로 평가했다.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리랑카 이외 중국에서 돈을 빌린 많은 개도국들이 신용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가장 큰 차관 제공국인 중국은 서구식 구제 방식을 더디게 받아들인다"면서 이 같이 전했다.
스리랑카는 지난 4월 12일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지원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대외 부채 상환을 유예한다며 ‘일시적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고, 5월 19일 채무 불이행에 공식 돌입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대통령궁에서 도망친 뒤 사임을 선언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은 13일 몰디브로 도피했고, 국가비상사태가 선언됐다.
스리랑카 부도사태를 두고 중국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참여가 스리랑카를 채무함정에 빠뜨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구상을 추진하면서 인도 주변 남아시아 항구 등을 잇달아 개발하는 이른바 '진주목걸이' 전략을 펼치며 스리랑카를 공략했다.
이 가운데 라자팍사 가문은 약 20년 가까이 스리랑카에서 집권했다.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통치했으며 동생 고타바야가 2019년부터 대통령 직을 맡아왔다. 이들이 통치하는 기간 스리랑카에서는 중국이 투자하는 대규모 사업이 진행됐다.
WSJ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초기 스리랑카 외환보유고가 엄청난 부채로 줄어들기 시작하고 일부 스리랑카 관리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스리랑카 정부는 긴축정책 고통이 수반되는 IMF 구제금융 대신 세계 최대채권국인 중국의 유혹적인 제안을 받아들였다.
2020~2021년 중국은행은 30억달러(약 4조원)의 새로운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지만, 스리랑카는 결국 국가 부도 상황에 빠지게 됐다.
알리 사브리 전 재무장관은 "우리는 적어도 12개월 이전 IMF로 갔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 4월 하순 당시 사브리 장관이 이끄는 대표단을 미국으로 보내 IMF와 협상을 벌인 바 있다.
지난 60여년 간 국가의 부채 구조조정은 '파리그룹'이 핵심역할을 해왔다. 1956년 출범한 파리클럽은 미국 등 22개 채권국이 모여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개도국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연맹체다. 파리클럽은 지금까지 5830억 달러(약 765조원) 이상의 국가 부채를 구조 조정했다.
문제는 세계 최대급 채권국이 된 중국이 파리클럽의 회원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이 저소득 국가 대상으로 제공한 차관은 파리클럽 전체 회원국이 제공한 것보다 더 많다.
결과적으로 개도국의 채무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파리클럽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중국 정부는 채무 구조조정과 관련해 서구의 일반적인 통념을 무시하고, '비정통적인(unorthodox)' 접근방식을 취한다.
중국은 재정위기가 심화되는 개도국의 가장 중요한 채권자로 어떻게 역할을 할 지에 대해 지금까지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심지어 때때로 구조 조정 노력을 좌절시키기도 했다.
그간 중국은 아프리카, 아시아 및 라틴아메리카 등 지역에서 인프라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조건으로 차관을 제공했고, 관련 대출 조건을 공개하지 않았다.
WSJ는 "코로나19 영향, 금리 인상, 달러 강세 등 금융시장 불안으로 중국에 많은 채무를 가진 국가들이 부도 위기가 고조되면서 중국 대출 관행의 변화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스리랑카에만 약 117억 달러(약 15조원)의 프로젝트 인프라 대출을 제공했고, 최근 일반 신용 한도 내에서 30억 달러의 부채를 추가했다.
이자 비용이 증가하고 극심한 적자를 지속함에 따라 스리랑카는 중국의 높은 금리를 지불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만 했다.
전 투자장관이자 현 야당 정치인인 카비르 하심은 "정부가 거의 수익을 내지 못한 프로젝트에 돈을 빌렸기 때문에 중국 차관을 갚는 것을 돕기 위해 국제 채권시장에 의존해야 했다"면서 "이는 악순환과 같았다"고 지적했다.
중국 입장에서 스리랑카에 제공한 차관 규모가 크지 않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전망이지만, 스리랑카 혼란은 단기적으로 중국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울러 이 같은 위기는 스리랑카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코로나19 발생 후 2년여가 지나면서 신흥국의 재무상황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데 이중 일부는 중국에 많은 차관을 빌린 국가들이다.
최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신흥국과 개도국에 채무 재조정을 서두르지 않을 경우, 스리랑카 사태가 다른 개발도상국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sophis73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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