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르포] 달아난 대통령, 말 바꾼 총리..폭발한 시민들
시위대 막던 경찰, 시위대에 길 열어줘..집무실 점령한 시민들은 승리 선언
(콜롬보=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국가 부도를 선언하고 대통령이 사퇴 의사를 밝힌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는 13일(현지시간) 아침부터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날 새벽 공항 인근 공군 기지에 피신 중이던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이 군용기를 타고 인근 몰디브로 도피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의 공휴일인 보름절인 이날, 대통령 도주 소식을 들은 스리랑카 시민들은 아침 일찍부터 대통령 집무동으로 모였다. 이곳은 지난 9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이후 시위대가 점거한 곳이다.
시위장을 찾은 아시다씨는 "군이 우리를 배신했다"고 했다.
폭발한 시민들, 총리 집무실로 몰려…경찰 최루탄 쏘며 충돌
화가 잔뜩 나 있던 시민들은 또 다른 보도가 나오자 결국 폭발했다.
지난 9일 고타바야 대통령과 함께 사의를 표했던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가 사의를 번복하고 정국이 안정될 때까지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고타바야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다.
당초 스리랑카 정계는 대통령 유고 시 권력 승계 2순위인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스리랑카 국회의장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추대한 뒤 오는 20일 국회에서 새로운 대통령과 총리를 뽑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여당을 중심으로 권력 승계 1순위인 위크레메싱게 총리를 대통령에 추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날 고타바야 대통령은 해외로 도피하면서 위크레메싱게 총리를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지명했다.
흥분한 시민들은 스리랑카 국기를 몸에 두르고 정권 퇴진을 외치며 콜롬보 시내에 있는 총리 집무실과 관저까지 행진했다.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대통령 권한을 발동해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콜롬보 일부 지역에는 이동 제한 명령을 내렸다.
경찰은 총리 집무실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몰려드는 시위대를 막아섰다. 또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물대포를 쐈고 여기저기에서 부상자가 나왔다.
시민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최루탄을 뒤집어쓴 시민들은 물과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며 다시 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고, 일부는 담을 넘어 총리 집무실 앞마당으로 진입했다.
경찰, 시위대에 문 열어줘…총리 집무실 점거한 시민들
시위가 점점 격화하고 더 많은 사람이 모이자 결국 경찰도 물러서며 시위대에 집무실을 내줬다. 물론 총리는 이곳에 있지 않은 상태였다.
스리랑카 경찰은 지난 9일 대규모 시위 때도 시위대를 막아섰지만, 시위가 격화하자 길을 내준 바 있다.
총리 집무실을 점령한 시위대는 집무실 마당과 건물을 장악했다. 일부는 집무실 건물 옥상과 창가, 담장 위에 올라가 국기를 흔들며 승리를 선언했고 폭죽을 쏘기도 했다. 시위대를 막던 무장한 경찰들은 한쪽에서 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대학생 히마샤 씨는 "오늘은 혁명의 날"이라며 "우리가 승리했다"고 외쳤다.
직장인 샤스크 씨는 "경찰도 시민들과 같은 마음이어서 집무실을 열어준 것"이라며 시민들이 승리했다고 했다.
하지만 총리도 없는 집무실을 점거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통령과 총리가 어디 있는지 몰라 일단 이곳에 모인 것 같다"며 "정치인들이 있는 국회로 가고 싶지만 차가 없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스리랑카의 국회는 콜롬보 외곽의 행정수도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에 있다. 일부 시민들은 국회 앞에서도 시위를 이어갔지만,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막아냈다. 스리랑카 국영 TV인 루파바히니 방송국에도 시위대가 들이닥쳤고, 방송국은 생방송 송출을 중단한 뒤 녹화 프로그램으로 대체했다.
어느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시위대는 다시 대통령 집무실로 이동했다. 대통령 집무실로 집결한 이들은 이곳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고타바야 대통령과 위크레메싱게 총리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사이 위크레메싱게 대통령 대행은 성명을 통해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시민들이 국가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찰의 지원을 확대할 것을 요청한다"며 국회 안팎의 보안을 강화했다.
그는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하면서도 시위대를 '파시스트'로 규정한 뒤 "일부 정당들이 그들과 손을 잡았다"고 비난했다.
데일리미러 등 현지 언론은 이날 오전 몰디브에 도착한 고타바야 대통령이 싱가포르로 이동해 망명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몰디브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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