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대통령 몰디브로 '도망'
성난 민심에 못 이겨 사임을 선언했던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사진)이 13일(현지시간) 군용기를 이용해 몰디브로 피신했다. 다음주 의회에서 차기 대통령 선출이 예정돼 있지만, 존재감이 뚜렷한 차기 대선 주자의 부재로 스리랑카의 정세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AP통신은 고타바야 대통령이 이날 오전 3시쯤 몰디브 수도 말레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고타바야 대통령은 몰디브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고타바야 대통령이 사임 전 해외 탈출을 감행한 것은 헌법상 면책특권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BBC는 그가 스리랑카 헌법상 대통령은 기소 등 형사책임이 면제된다는 점을 이용해 새 정권의 체포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피신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고타바야 대통령이 국내에서 자리를 비우면서 라닐 위크레마싱헤 총리는 이날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대통령이 사임 의사를 밝혔음에도 스리랑카 정계는 극도의 혼란 상태다. 여당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밀고 있는 인물이자 대통령 권한대행인 위크레마싱헤 총리는 지난 9일 정부 주요 건물을 점령한 반정부 시위대가 그의 사저에 불을 지를 정도로 대통령만큼이나 인기가 없다. 앞서 대통령과 함께 사임하겠다던 위크레마싱헤 총리는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총리직을 내려놓지 않겠다며 말을 번복했다. 이에 분노한 군중이 이날 다시 총리 집무실 앞에 모여들면서 스리랑카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언했으며 일부 지역에 통행금지를 선포했다.
차기 대통령 주자로 지목되는 이들의 존재감도 흐릿하다. 헌법 전문가들은 총리가 임시 대통령직을 맡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그 뒤를 이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현 국회의장은 라자팍사 가문과 같은 배를 탄 것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제1야당 국민의힘연합의 지도자인 사지트 프레다마사에 대한 지지도 역시 빈약한 편이다. BBC는 반정부 시위대 중에서도 지도자로 꼽힐 인물이 없으며, 스리랑카 사회 전반에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높은 상태라고 전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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